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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Sep 23. 2020

우린 지금 경험치를 쌓는 중이다

코로나 19 - 레벨업을 위한 변화 

경험치 쌓기


 내가 어릴 때 유행하던 온라인 RPG 게임들은 대부분 뭐라도 제대로 된 걸 하려면 레벨을 죽어라고 올려야 했다. 게임을 하는 순간을 즐기기는 하지만 경험치 쌓기용 몬스터 퇴치를 지겨워하는 나는 늘 게임을 중도하차했다. 그리고 다른 게임을 찾아다녔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지난한 경험치 쌓기의 과정을 싫어한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는 죽고, 돈도 들고 힘들어야 하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겪어야만 레벨업이 된다. 그것이 삶의 진리요, 게임의 진리다.


흉터

 

 3년 전 가을,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날이 추워지면 찾아오는 헛헛함을 견딜 길이 없어, 무리를 해서 홍콩 여행을 계획해두고 있었다. 물론 혼자 갈 생각이었다. 홍콩 여행은 늘 내 로망이었다.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길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느끼는 헛헛함이 정당화될 거 같았다. 

 그러나, 출발을 일주일 여 앞둔 어느 날 나는 그만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얼굴을 크게 다쳤다. 내가 넘어진 바닥에 하필이면 뾰족한 금속 못 같은 게 있어서 말 그대로 얼굴이 찢겼다. 아프기도 했지만 얼굴을 당당히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진짜 넘어진 건데 얼굴이 멍들고 붓고 눈알에 피까지 고여 누가 봐도 누군가에게 맞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학교를 계속 나가야 해서 난 늘 누구한테 맞았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말을 들어야 했고, 그때마다 넘어졌다고 하면, 그래 네 마음 다 알아, 힘 내!라는 격려를 들어야 했다. 다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만 하다. 

 상처는 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지만 1년이 지나자 대충 가리고 다닐 수 있었고, 지금은 내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타인은 알 수 없을 만큼 흐린 흉터로 남았다. 흉터는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못한다.


코로나 19

  코로나 19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게임과 흉터 이야기를 했다.

 코로나 19는 현재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몸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상처는 아물고 흉터가 될 것이고 아프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약간은 무뎌진 채, 약간은 성장해서 덜 아픈 우리가 되어 또다시 찾아올지 모를 어떤 바이러스에 담대하게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경험치를 쌓는 중이다. 열 살짜리 아이가 밤에 잠에 들 때마다 아파하듯, 레벨업을 위해 지난하게 몬스터를 퇴치하듯, 성장을 위해서는 아플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겪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바꾸는 과정이라서, 아픈 것이다.  

 20대 후반인 나보다 어린 세대들은 이 사회의 관습에 있어서, 나보다는 물이 덜 들었기 때문에 아마 적응이 조금은 더 쉽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나보다 나이 많은 세대가 겪는 코로나 19는 나와 다르게 더 힘들 수 있다.


 코로나 19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얼마나 삶을 바꿔놓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이 바이러스를 겪기 전과 비교했을 때는 인식이 확 바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코인 노래방 업종이 거의 사라지게 될 것이고, 영화의 전반적 관객수가 줄어들고, 그 대신 OTT나 IPTV로 소비되는 콘텐츠의 양이 훨씬 늘어날 것이며 따라서 인력도 그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무분별하고 초저가 경쟁으로 인해 엄청난 레드오션이 되었더 해외 항공, 관광 업계는 완전히 재편되고 고급화/ 비 일반화될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생필품 목록에 마스크가 들어가게 될 것이며 사회 산업 전반에  그것이 가능한 업종에 한하여 비대면이 보편화될 것이다. 

 일련의 변화들은 지금은 잠시 멈춤 상태로 있지만, 코로나 19 이후로도 생겨날지 모를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일정 부분 일어날 수밖에 없을 변화다.

 이 변화 속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던 코인 노래방과, 해외로 떠나던 초저가 여행과, 영화관에서의 자유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덜 슬퍼하려고 한다. 언젠가 찾아올 변화가 다만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을 뿐이라고 생각해야만 코로나 19 속에서도 현재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로의 전환이나 방역에 있어서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변화에 대한 적응이 가장 빨랐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한국 사람이 아마 제일 빠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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