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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Oct 30. 2020

늙는 나라

*2019년에 썼던 글입니다


늙는 나라



안티 에이징


 대부분의 인간은 늙지 않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늙는다는 것은 좋지 않은 느낌을 준다. 관절이 안 좋아지고, 키가 작아지고 머리숱이 적어지고 주름살이 늘고 전체적으로 쇠약해진다는 이미지 말이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은 쭉 젊음을 무기로 발전해온 종족이었고, 늙는다는 것은 생명을 가진 인간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이니 아무리 좋아하려고 해도 싫을 수밖에.

 반면 젊음은 항상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 생기 있고 밝고 통통하고 명랑한 느낌을 준다. 젊음을 칭하는 청춘이라는 명사에는 젊음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담겨있다. 사랑은 늘 내리사랑이고 새로운 문화는 젊고 힘이 넘치는 인간으로부터 태어난다.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 상식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를 어쩐다? 이렇게 좋은 젊음은 멸종 위기다. 우리는 다 같이 늙고 있다. 각 개인이 성장기를 마친 이후로는 늙어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 사회 전체가 고령화의 위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저출산 고령화의 전세계 선두로 달려 나가고 있는 한국은 고령화로 유명한 옆나라 일본보다 아이를 안 낳는다. 미래를 보자면, 암담 그 자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직 없다. 마치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증상만을 치료할 뿐 원인을 제거하는 치료는 할 수가 없다. 백신이 없는 저출산 쇼크를 해결할 방법은 너도, 나도 모른다.

 사실은 국가적 위기 상황이지만 우리는 당장 오늘과 내일을 잘 살기에도 벅찬 사람들이므로 이 위기를 체감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어? 얼마 전에 어디 나가보니까 애들 천지던데? 우리 동네에는 애들 많은데?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소수의 아이들이 도시권에 모여 살기 때문에 많아 보이는 것이다. 당장 인구 소멸 지역으로 명명된 지역들은 언뜻 보기에도 한국 지도의 반을 넘어간다. 안티에이징을 위한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다. 두 명이 결혼해 둘 이상을 낳으면 내수는 굴러갈 수 있다. 나도 안다.

 그러나 누군가 나한테 아이를 낳을 거냐고 묻는다면? 나도 안 낳겠다고 답하겠다. 그리고 나의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가임연령대 여성들은 아이가 인생 계획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면 다양한 대답을 들어볼 수 있다. 정말 다양해서 다 옮기지도 못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는 하나다. 결혼할 생각부터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같은 나라와 다르게 한국은 비혼과 출산을 동시에 가져가는 경우가 드물다. 결혼을 하지 않으므로 아이를 안 낳는다. 당연하다.


원인

 1980년대 초반부터, 백말띠라고 불리며 여아 출산을 꺼리던 1990년까지는 끔찍할 정도로 여아 낙태가 횡행했다. 자연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여아들은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해당 나이대 여성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미래는 그때부터 예견되기 시작했다. 

 저출산을 몰고 올 세대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났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과 그 친구들이 입 모아 이야기하듯 세상은 아직도 남성 중심이었다. 열심히 산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살기 힘들었다. 맘충이 되었고 피해의식 속을 산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80년대생까지는 아이를 낳기는 했다.

 9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조건이 또 달랐다. 그들은 잠깐 다시 찾아온 베이비붐 세대로서, 경제 위기 도래 이후 좁아진 취업의 문을 뚫어야 하는 엄청난 경쟁률의 세대였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았다. 학교는 미어 터졌다. 한 학년에 반이 10개가 넘어갔다. 늘 정원을 꽉 채운 반에서 주입식 수업을 들어야 했다. 

 커보니 코딱지 만한 자취방의 월세가 너무 비쌌다. 다닥다닥 붙은 옆방의 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쳤다. 이미 80년대 생이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문을 닫아 둔 경우가 많았기에 문과를 나온 90년대생의 취업률은 곤두박질쳤다. 열심히 살았지만 삶은 고단하고 나아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이 상황에서 무슨 결혼과 출산이란 말인가?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것은 어쩌면 본능이 시킨 일일지도 모른다. 지방과 서울 간의 출산률 차이, 공무원 도시인 세종시와 다른 시도 간의 출산률 차이를 들여다보면 어떤 요소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안정된 직업과 경제력, 살 집이 있는 한 인간은 아이를 낳는다. 삶의 기본 요소를 갖추지 못하는 삶에서 아이는 사치고 낳아도 문제라고 여겨진다.

 결론은 삶이 나아져야 아이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두 요소가 인생에서 필수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아이를 낳아 물려주고 싶을 만큼 좋은 것이 없는 한 우리는 아이를 낳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생각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이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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