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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Apr 30. 2024

슬러쉬 사먹는 어른아이

소비에도 나이가 있습니까

“요즘 애들은 500원짜리 슬러쉬가 아니라 3500원짜리 망고사고를 먹는 걸까”

“...좀 낮추면 1800원짜리 식후땡망고.”     


핫플레이스 카페에 웨이팅을 걸어놓고 망고사고 하나를 나눠 떠먹었다.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날씨가 여름이랜다. 옆골목 고망고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줄을 서있길래, 똥꼬랑 인기 있다는 망고사고를 사 와서는 카페 1층 솥밥집 웨이팅 좌석 끝자락에 몰래 앉아 기다렸다. 다행히도 솥밥집이 브레이크타임이라 아무도 없었다.

망고 건더기 몇 조각과 작고 투명한 펄들이 가득 동동 떠다니는 망고사고는 화채라는 느낌도 아니고 샤베트처럼 시원한 얼음 조각들의 향연도 아니었다. 그저 달다구리하고 씹을 맛이 가득한 가벼운 디저트 음료를 감질맛나게 떠먹는거 같았다.


간만에 똥꼬, 띵띵이, 이렇게 셋이서 모이게 된 날이었는데 하필 생일 주인공인 띵띵이가 한참 지각이다.

분위기 죽이는 카페를 찾아놨었지만 애매해서 더운 길을 걷다가 그나마 근처인 다른 핫플 카페로 들어섰다. 그렇게 큰 메리트가 느껴지는 것도, 시그니처 메뉴가 다양한 것도 아니었는데 모르겠다, 하며 웨이팅을 걸어놓고 내려왔다. 사람이 터질 듯이 많았다. 맛집을 줄 서는 문화가 점차 생겼을 때, 이제는 테이블링 어플이 따로 생겼고, 하다 못해 동네 카페들도 일일이 전화를 받아서 차례가 됐다고 하면 들어갈 수 있었다. 단지 차 마시며 떠들고 사진 좀 찍으려고. 요즘은 그만큼이나 그런 사소한 유흥에 대한 대가의 단가도 비싸진 추세다.


어차피 덥고 목도 마른 김에, 고망고를 하나 사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식후땡망고나 망고쥬스만 먹어봤는데 똥꼬는 자꾸만 망고사고를 먹어봐야 한다고 강력어필을 했다. 목이 마르다고 했더니 카페 가면 음료를 마실 테니 망고사고를 먹잰다.

똥꼬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능하다. 그렇다고 이 친구의 지나가는 말들이 전부 신빙성 있는 건 아니었다. 의식의 흐름으로 대화의 70프로는 장난과 농담, 상황극이었다.

야야, ‘요즘’ mz~라면 이거 먹어봐야 한다.

어, 이거 먹으면 나 ‘요즘’ mz라고 할 수 있는 거냐? 


그렇게 몇 입 떠먹다가 금방 입이 텁텁해졌다. 개인적으로 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끽해야 버블티를 가끔 사먹는 편이긴 했지만, 코코팜이나 모구모구나 음료로는 딱히 자주 먹는 편은 아니었다. 버블티도 맛있지만 밀크티를 좋아하는 게 컸지, 버블이 지나치게 많으면 씹느라 귀찮았다. 점차 씹는 게 피곤해지며 숟가락을 내버려 뒀는데, 똥꼬도 괜찮네라는 말만 하더니 솔직한 심정을 내뱉었다.


우리는 이럴 때 슬러쉬였어. 심지어 여기 시장이야.

그 말에 나도 동의하며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가 그려졌다. 그러게. 길가면 팔던 게 컵볶이에 색소슬러쉬에 피카츄 돈까스에...

인공색소가 잔뜩 들어간 슬러쉬가 기계에서 떨어질 때까지 종일 돌아가고 있었다. 마시면 사실 얼음 덩어리라 마신다고 갈증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흔히 ‘짤짤이’만 주머니에 있던 어린 시절 우리는 그것부터 마시고 봤다. 500원짜리 컵사이즈로 슬러쉬도, 떡볶이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추억을 되새기고 있는 우리 앞으로 딱 그 시절만한 초등학생들이 꺄르르 지나가며 각자 한 손에 망고사고나 식후땡망고를 들고는 지나갔다.

말없이 입에 머금은 펄을 씹던 똥꼬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요즘 애들은 500원짜리 슬러쉬가 아니라 3500원짜리 망고사고를 먹는 걸까.”

“...좀 낮추면 1800원짜리 식후땡망고.”


그만큼 물가가 오른 거겠지? 그렇지만 요즘엔 길거리에 슬러쉬가 보이질 않는다. 미디어가 발달하며 인플루언서나 연예인, 유튜버들이 즐기는 거리들을 당연한 듯이 초등학생들도 그 문화를 따라한다. 옷도 그렇게 입고, 화장을 하고, 맛있는 디저트를 찾으러 다니며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고 릴스를 찍는다.

우리 딴에는 용돈이 부족해서 고등학생 때도 카페는 단순하게만 갔다. 내가 핫플을 찾아다니는 건 대학생이 되고부터였다. 그래도 여전히 돈은 부족해서 그렇게 자주는 못 즐겼다. 게 중에도 가성비가 있는 곳 위주로 다녔다. 우리는 아직도 또래끼리 모이면 퀄리티가 좋은 무한리필을 찾곤 했다.


그렇게 발아래에 내려둔 딸기케이크가 녹아가지 않으려나, 걱정이 되자 또 다른 심정이 이어서 떠올랐다. 


사실 약속 전날 밤에 그래도 띵띵이 생일인데 케이크라도 준비해서 초를 불어줘야 생일 맛이 나지 않을까, 하며 약속장소를 향하며 들를 수 있는 케이크 맛집들을 이것저것 알아봤다. 예전부터 유명해서 궁금했었는데, 마침 최근에 분점이 집 근처에 생겨서 예약을 하려다 생각보다 가격이 강력했다. 미니케이크인데도 3만6천원.

어...혹시 이런 걸 주면 부담이 되려나? 그건 아닌가? 그런데 내가 시중에 이걸 살 돈은 되나? 당장에 밥도 안 사먹는다고 아끼면서 이렇게 돈을 써도 되나? 근데 지금 내가 이런 이유로 쓰고 싶은 건 맞잖아. 이런 날을 위해 아껴둔거 아니야?


혼자 쓸데없는 고민을 이것저것 하다가 다른 곳에 집중이 쏠려서 이것저것 하다 결국 케이크를 못 정하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마포대교까지 러닝을 하는데, 그날따라 지쳤다. 전날 저녁에 체육공원에 가 트랙을 뛰었었는데 아침에 눈 뜨자마자 또 하려니 지쳤나보다. 결국 걷고 뛰다가를 반복하는데 날도 덥고 그늘도 없어서 더 일찍 지쳤다. 한동안 여름 아침에 바깥 운동은 힘들겠구나.


위치를 확인해보고 급한대로 어제 본 그 케이크 가게를 집에 찾았다. 가게가 정말 유명한지 카페 고객 전용 주차장만 따로 있었다.

망고 케이크와 딸기 케이크만 디피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매장에 직접 오니 예약을 안 해도 재고가 있으면 살 수 있었다. 어차피 사려던건 정해져 있었는데 눈앞에서 작은 크기에 3만6천원을 보니 1분 정도 가만히 쳐다보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보는 냉장고 안의 딸기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런데도 조금 머뭇댔다. 그래도 가장 시그니처인 딸기케이크가 딱 이번 주, 오늘까지만 판매한대서 미련 없게 샀다. 결제하고 옆에 있는 초를 구경하는데 이왕이면 더 귀엽게 하자, 3천원짜리 초도 띵띵이를 닮은 걸로 추가로 샀다. 총 3만9천원.


들고 집으로 돌아가며 손이 묵직했다. 이걸 아주 안전하게 띵띵이한테, 오늘 하루 무사히 축하의 의미로 품에 안겨주고 싶다. 이걸 실수로 쓰러뜨리는 상상도 그려지니 햄스터가 해바라기씨를 두손으로 가지런히 들 듯 소중히 들고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갔다.     


똥꼬가 그 슬러쉬 얘기를 대뜸 꺼냈을 때 나는 전날밤부터 머뭇대며 오늘 아침 케이크를 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언제쯤 이런 화려한 케이크도 아무 생각 없이 거뜬히 살 수 있을까. 아직까지 무한리필이나 가성비를 따지긴 해도, 나는 평상시에 또래들보단 조금 더 나이차가 있는 연상들이랑 자주 만나는 편이었다. 사람들마다 본인에게 맞는 상대가 있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연상이었고, 그것도 세네살이 아닌 대여섯살 이상이 나한테는 딱 맞는 조합으로 좋았다. 남들은 많이 차이난다고 뭐라할 순 있지만 나한테 일반적인게 일반적인 기준이지 뭐.

말 나온 김에 제발 나이차가 난다고 연상이 이걸 해줘야 한다느니, 연하가 이래야 한다느니,

심지어는 뭐 연상인 남자를 만나면 언니들이 버린 데는 이유가 있는 사람이라서 거른다느니 이런 일반화들로 중얼대지 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본인한테 일반화를 하지 굳이 다른 사람한테까지 일반화라며 삿대질을 하냐는 거다. 친구에 나이가 어딨고, 친구들끼리 친구한다는데 왜 주변에서 나이로 뭐라하는지들.

9살 10살 많은 친한 언니들은 항상 내 눈엔 챙겨주고 싶은 동생 같았다.


아무튼

그런데 그러다 보면 언니 오빠들은 그래도 나보다 흔쾌히 가게를 들어간다. 나보다 훨씬 가게를 고르는 폭도 넓다. 목이 마르면 커피도 단숨에 사 마시고, 심심하면 스포츠도 즐기러 가고, 끝나고 배가 고프면 늦게까지 하는 가게를 가서 밥도 다 같이 먹는다.


사실 볼링의 경우 노래방보다 가격이 있는데 잘 칠 줄도 모르니 단순히 즉석으로 가기엔 내가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싶어 잘 안 간다. 친구들 사이에선 볼링이 정말 끌릴 때가 아니면 가지 않았고, 일정이 끝날 때쯤 배가 고프면 참거나 집에 가서 있는 걸로 대충 각자 배를 채우고 말았다. 아직까지 친구들이랑은 무한리필 떡볶이집, 가끔은 고깃집도 찾아가는데,

하루는 언니오빠들이랑 노는데 볼링내기로 진 팀이 저녁을 사기로 했었다. 갑자기 볼링을 치러 가자고 할때에도 갑자기? 싶었지만 가던 볼링장 락커에 개인볼링공이 있어서, 라며 언니의 차로 다같이 향하니 집에 일찍 가기도 뭐하고 즐거운 텐션을 유지하고 싶어 군말 않고 향했다.

내딴엔 이미 개인볼링공까지 둘 정도로 취미를 즐기는게 어른의 경지인가, 싶었다. 내 기억으론 전남친도 그랬다고 했다. 자주 가질 않아도 그렇게 내 자리를 맡아두는 정도의 여유를 즐기는게 더 큰 어른인가?

하필 게임이 끝나니 늦은 시간이라 하는 가게도 삼겹살집이었는데, 볼링을 1년에 한두번 꼴로 쳐보던 나는 당연히 졌다. 별 생각없이 배고파서 먹긴 했지만 한점 한점 먹다가 오늘 이 저녁을 사면 며칠간 뭘 해먹을까, 며칠은 약속을 못 나가려나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팀이었던 김부각 오빠가 우리 둘이서 사야하는 걸 자기가 사겠다고 말을 해주는데 놀란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이었다. 그래도 다섯 살이나 많은 오빠니까 저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놀라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에도 잠시, 다른 팀이었던 지안 언니가 조용히 계산을 하고 와서는 코 묻은 돈을 어떻게 받겠냐며 본인이 결제한 이유를 단순명료하게 정의했다. 지안 언니의 말에 한 방 더 먹었다. 세상에, 나는 쩔쩔매는 생각을 하던게 코 묻은 돈 수준이라니. 물론 지안 언니는 부각오빠보다도 조금 더 연상이었다. 그치만 내 눈에는 그저 소녀감성 낭낭한 예쁘장하면서도 우아한 언니였다. 언니는 낮에 같이 영화를 볼 때도 팝콘 대신 먹고싶은 카페 음료를 종류별로 한잔씩, 혼자 총 두 잔을 손에 들고 관람했다. 이런 사소한 소비활동이 부러웠다.

     

그렇다고 내가 소비를 안하는 축은 아니었다. 나만의 기준점이 있을뿐. 갖고싶은게 생기거나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것에는 돈을 어김없이 썼다. 대신 그만큼 다른 나의 사소한 소비는 최대한 줄였다. 간식을 사 먹질 않고 밥을 덜 먹고 생필품을 아끼고 조금 더 발로 뛰어다니는 식.

단지 명품 같은 건 아는 게 덜해서 사고 싶다는 욕심이 아직까진 덜한 수준일거다.

가끔 좋아하는 브랜드, 또는 그런 모델이 나타나면 평소보다 단가가 올라가도 어떻게든 사내는 성격이긴 했다.

     

아직까지 기분이 좋으려고, 단순히 좋아서 하는 소비들에 이렇게 흔들리는 나 자신이 가끔은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건 누구나 당연한 건데,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쓴다는 건 어떤 걸까?

난 항상 큰 소비를 거뜬히 해낼 때에도 엄청난 의미부여와 가치를 덧입히는데 말이다.

금수저 집안에서 소비란 개념을 정말 크게 갖고 자라지 않은 사람은 자낳괴 라는 코드를 이해하기는 할까. 말 그대로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그사세(그들만이 사는 세계)란...     

어찌보면 아이들이 망고사고를 사 먹는 건 그저 슬러쉬라는걸 모르고 자란 환경 때문일텐데.

나는 그 아이들이 슬러쉬 존재를 알았으면 하는 걸까. 아니면 똑같이 천원이 전재산이지만 500원짜리 슬러쉬와 컵볶이를 사 먹는 내 어린 시절에 빗대어 보며

니들이 그런 행복이 오래 갈 거 같니, 곧 나처럼 각박한 어른이 될걸....같은 실없는 생각이 여기까지나 온 걸까.


확실한 건 예전보다 훨씬 더 돈 벌 궁리를 한다는 거다.

1년 전만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돈을 차차 벌고 싶었는데. 점점 생겨나는 적금에 주택청약에 건강보험에 월세에 현실이 드리우니, 그래도 내 눈앞에서는 단란하게 잘 살아가는 친한 언니 오빠들이 다 그 과정을 이미 겪었다고 생각하니 존경이 한아름 더 커질 뿐이다.


지나가던 초등학생들도 단순히 유행하고 맛있다는 망고사고를 사 먹었던 것 뿐이겠지.

어디까지나 우린 다 똑같은데 어디서 자꾸 스스로가 상대적 박탈감을 억지로 갖고 오는 건지 모르겠다.


3만6천원짜리 딸기케이크가 정말 환상적으로 맛있다는 걸 알게되도 여전히 저렴한 맛의 매력을 잊지는 못해.

그러니까 혹여 내가 흔쾌히 소비를 하는 날이 오더라도 굶주렸던 시절을 잊지 않고 늘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 됐고 얘기하다보니 피카츄 돈까스랑 떡꼬치가 너무 먹고 싶은데 요즘은 진짜 어디서 먹을 수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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