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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Jan 12. 2019

09. 롤러브레이드, 플스, 조단운동화그리고 허세


  13세에 본의 아니게 아버지의 야반도주로 인해 편모로 살게 된 엄마는, 공부 욕심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형편이 기운 집에서 자식 셋을 모두 넉넉하게 키우고 교육시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할머니가 책을 사주지 않으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책 사달라고 떼를 쓰고 사줄 때까지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부분을 조금 닮았는지, 나도 책을 좋아했고 다행히 엄마는 책을 사줄 여력이 되셔서 동화책, 위인전, 과학 학습만화, 소설 등 많은 분야의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이렇듯 책을 좋아해 하교 후 집에만 돌아오면 침대에 걸터앉아 분홍 바탕에 초록 스티커가 붙여진 동화 테이프를 듣곤 했다. 그것은 일종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는데, 책을 읽던 테이프를 듣던 둘 중 하나를 꼭 했었다. 약 30분에서 1시간 정도 테이프를 듣고 나면 배가 고파 간식을 먹고 피아노를 치거나 학원으로 직행했는데 그때의 독서습관과 지금의 오디오북과 같은 테이프 북의 효과는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현재 이러한 식으로 발현이 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인데, 그때 글짓기 수업을 3-4명이서 그룹으로 하는 학습지 같은 프로그램이 한창 유행했던 적이 있다. 같은 동네에 살던 3명의 남자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했는데, 매주 책을 읽어오고 그 책에 대해 토론하고 글짓기를 하는 내용의 수업이었다. 어느 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주제가 나왔는데, 아마도 오헨리의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라는 책을 읽은 후 이러한 토론 질문이 나왔던 것 같다. 그때 나에게 제일 소중한 건 가족, 할머니와 엄마인데 그때 남자아이들의 대답이 모두 k2(롤러브레이드), 플레이스테이션, 조단 운동화 등이었다. 그러니까 왠지, 가족 혹은 엄마와 할머니라고 말을 하기엔 내가 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도 질 수 없어 별 생각도 없이 “책”이라고 답했다. 


  수업이 끝난 후, 다음 수업 때 매주 전주에 있던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작성해주며 교사가 학부모에게 교사의 말을 작성해 학생 편에 전달하였는데 그때 담당 선생님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항상 집에 전달하기 전 선생님이 무슨 내용을 썼는지 궁금했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봉투에 담긴 교사의 편지를 꺼내어 읽었는데, 웬걸. 저번 주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이 책이라 답했다는 선생님의 고자질과 함께(?) 나에게 더욱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당부의 말이 쓰여있었던 것이다.      


  그때 선생님의 고자질이라는 배신감과 함께 다른 남자애들은 어떻게 적혀 있나 궁금해서 뺏다시피 읽은 다른 2명의 편지에는 소중한 것의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 아이들의 작문실력 및 토론 능력이 발전하고 있다는 답변과 함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의 간구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끝내 보지 못한 1명 남학생의 편지는 짐작하건대 다른 2명 남자아이와 유사한 내용이지 않을까 짐작했다. 결국, 나만 허세를 부리다가 요주의 인물로 찍힌 것이다. 잠깐 편지를 전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어차피 엄마가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면 알게 될 내용이라 결국 그대로 편지는 엄마에게 전달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편지를 읽은 엄마는 왜 어떻게 엄마보다 책이 중요할 수 있냐는 내용과 그 책을 사주는 건 엄마며, 책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는 물건이며.... 의 잔소리를 들었다.    

  

  지금도 그때 그 선생님을 만난다면 묻고 싶다. 선생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왜 저만 요주의 인물로 만드셨어요. 이제야 말이지만 저 그 글짓기 수업 재미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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