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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콜로지스트 Mar 29. 2024

제1장 어떤, 일하는 엄마의 아이

7. 아버님은 무슨 차를 타십니까.


1) 학원이 키워주는 영재성?

즐거운 한 해를 보내고 5학년이 되었다.

++이는 연산보다는 창의 수학에 관심과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고, 5학년이 되자마자 학기 초에  교육지원청에서 선발하는 수학 영재원 시험을 보겠다고 신청했다 했다. 하고 싶은 건 해야지. 뭘 도울까 알아보다 보니 이미 영재원 시험을 위해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당시 영재교육원 시험을 준비해 주는 유명한 학원들이 있었는데 말할 것도 없이 일반 보습학원보다 고가였고, 나는 영재원 시험대비 학원이 있다는 것에 현타가 오기도 했었다. 영재는 만들어지는 것이구나.  


이해 안 되는  추가사항 하나 더. 우리 집 선비님은 아들 영재원 시험준비를 본인이 시켜보겠다며 도서관에서 영재교육책 9권을 빌려왔다. 그의 뒷목 잡게 만드는 판단과 선택에 할 말을 잃었지만.. 그 책들을 읽다 보면 '제대로 알게 되겠지' 싶어 암말 않고 기다려주었다. 뭐... 다시 도서관에 반납하고 아무 말 안 하는 것으로 보아 그게 아닌 건 알았겠다 싶었다.


++이는 괜찮다고 했다. 그냥 가서 시험 보고 안되면 말겠다고. 괜찮은 선택이다 싶었다. ++이는 1,2차 시험 통과하고 최종 합격했고, 6학년때는 40명 중 20명만 올라가는 진급 시험에도 합격했다. 물론 그때도 학원을 따로 다니지는 않았다. 다만 미적분을 활용하는 다른 동급생들에게 놀라서 약간 기죽어하던 때가 있었을 뿐.


2) 운영위원과 은회색 모닝

당시 교장선생님은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셨다. 아마도 진취적이고 야망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 작고 조용한 이 학교를 이웃한 경쟁적인 학교들과 견주어 밀리지 않는 명문학교로 만들어 보고 싶으셨던 것 같다. 운영위원장인 학부모와 거의 매일 학교 근처 카페에서, 음식점에서 학교에 대한 발전방안을 논의하시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운영위원장님도 매우 적극적이고 위풍당당한 분으로, 그런 교장의 에너지를 잘 반영해 줄 수 있던 분이셨다. 교장선생님은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맞이해 주시고, 종종 차 문도 열어주시며 라이딩 온 부모들과 적극적으로 인사하셨다.  

     

갑자기 운영위원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교 운영위원으로 입후보해달란 부탁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라 고사했다. 시간도, 재정도, 학교에 대한 이해도도 없던 일하는 엄마가 운영위원이라니. 이미 학급 회장인 아들 덕에 학부모회 구성원이었으나 시간이 없어 모임에 나가지 못해 부담스러웠는데, 녹색어머니를 도와 연 2회 아침 교통지도도 벅찬 사람인데.. 운영위원이라니... 너무 낯설고 어려웠다. 그래서 감사한 제안이나 다른 분이 하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내 역할은 아닌 것 같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운영위원장이 회사로 찾아왔다. 함께 식사를 하며 나에게 교장선생님께서 ++이 엄마를 삼고초려해서라도 모셔오라셨다”는 것. 그냥 부담 갖지 말고 교장선생님 하고자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찬성을 해달라는 것. 1회 참석이면 되고, 그것도 어렵다면 서면으로도 가능하다는 것, 어려운 부탁은 안 갈 테니 그저 멤버십에만 있어달라는 것.      


삼고초려라는 말까지 들어야 할 정도로 내가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긴 했다. 그렇지만 내가 굳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도 있었다. 그러다 로컬의 심리학자들이 학교에 자녀가 다니지 않아도 전문가로서 운영위원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 그런 전문성을 지닌 학부모가 있다면 응당 좋은 의견과 자문으로 역할을 하는 게 맞다는 남편의 설득으로 운영위원이 되기로 결정했다.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첫날 안건들은 기억이 잘 안 났지만 어떤 학부모에 대해 교장이  긍정도 부정도 아닌 팩트 중심의 언급을 했다. 앞뒤 내용을 알리 없던 나는 밖에서 따로 모임 중이던 친한 엄마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아무 필터링 없이, 그냥 질문을 했었다. oo엄마는 왜 운영위원회의에서 언급이 된 건지. 내 질문도 팩트 중심이었고, 엄마들이 아는 만큼 전달해 준 이야기도 팩트 중심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운영위원장으로부터 말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았었다. 누구지? 뭐지?  겨우 그 정도 일로 입단속을 받고 보니 참으로 회의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득이하게 참여하게 된 학교 일에서 뭐 대단한 기밀도 아니고 그 정도 일로 ‘주의’를 받았다는 게 상당히 불쾌했다.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비밀유지서약을 한 것도 아니지만, 복기하자니 상식선에서 나도 선을 넘을 수 있었겠단 생각이 들어 ‘조심’ 하란 말에 주의하겠단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를 환영하겠다고 그 다음번 모임에서는 일식집에 자리를 잡아 식사를 함께했다. 교장, 교감, 교무부장, 운영위원장, 위원장의 좌청룡 우백호까지...  낯설고 어려운 대상들 아닌가. 그러나 나를 환영한다는 자리라 거절도 어려워 참석했다. 식사에 반주를 더하던 교장이 한 어머니의 벤츠 차량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나에게 질문했다. “++이 아버님은 무슨 차를 타십니까?”       


안다. 이 교장님께서 차종으로 아이들을 기억하곤 했다는 것. 핸디캡이나 베네핏을 주려 그런 질문을 하신 게 아니란 것도 안다. 왜냐, 타고 다니는 차 종류로 운영위원을 선별한 것이 아니란 걸 내가 더 잘 아니까. 차종을 알면 ++이 아빠에게 인사하려고 하신 질문이란 것도 잘 안다.


당시 남편의 차는 은회색 모닝. 경차를 타는 자기 나름의 철학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외제차를 탈 형편이 되는데 굳이 경차를 타는 대단한 소신은 아니었어서 뭐 남다른 설명이 가능한 상태도 아니었다. 부끄러울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뭐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질 내용도 아니었는데 막상 그 모임에서,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남편이 타는 차종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니 대답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네 은색 모닝입니다.” 나보다 교장이 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고, ++이 아버님이 참 검소하신가 봅니다. 허허허.왜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는지 몰랐는데, 그럴 이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지금껏 이 장면이 생생한 이유는 아마도 나 역시 무언가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었기 때문일까. “, 남편은 목회자입니다. 학교 근처에 있는 **대 출신이고요. 본인의 소신도 있지만 소득을 고려해서 경차를 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본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앞, 바로 건너편 자리로 이동해 온 교장선생님은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제야 ++이의 영재원합격 비결이 나왔군요. 학원도 안 다닌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아이가 영재원을 합격했는가 했더니 엄마, 아빠가 열심히 기도를 하셨네. 하하하. 정말 기도밖에 없네요”  이어서 본인이 어떤 열심히 교회를 다니셨는지, 지금은 왜 교회를 떠났는지, 자녀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자기 고백이 이어졌다.


++이 3학년 담임선생님이 본인과 매우 인연이 깊은 분이신데 나를 운영위원으로 추천하셨다는 이야기, 우리 학교 애들 많이 들어갔으면 해서 번거롭지만 학교에 교육지원청 수학영재원을 유치했는데 그 결과가 속상했단 이야기, 아침마다 은회색 모닝을 보면 ++아버님인지 확인하고 인사드리시겠단 이야기까지 다른 분들이 한마디도 거들 수 없는 주제의 이야기를 건네셨다. 모닝을 타는 아빠, 일하는 엄마의 아들 ++이는 그렇게 교장선생님이 주목하는 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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