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각박한 도심 속에서 돌고 도는 굴레는 같은 삶이 반복되는 지루한 루틴과 닮아있다. 매일같이 찌뿌둥한 아침을 맞이하며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도착한 뒤에 착하지 않은 내가 착한 척을 하며 웃는 가면을 쓴다. 벌어먹고 사는 일에 치이다 보니 퇴근 후 취미 생활은 늘 작심삼일이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약속 잡는 횟수가 점점 줄어든다. 어쩌다 주말에 나들이라도 가려다 치면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기다리고 치이고 비싸고. 너도나도 주말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나왔겠지만 지나가는 사람끼리 부딪히는 어깨에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너그러움은 매우 인색할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인도에 피는 꽃에 눈이 가고, 도로변에 줄지어 심은 푸른 나무를 감상하는 일이 잦아졌다. 간혹 구름이 얼마나 예쁘게 떴나,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했다. 오늘 올려다본 하늘은 왠지 '푸르다'란 표현에 그치고 싶지 않다. 지금 하늘의 색깔은 손가락 말고 손바닥으로 쓱쓱 파스텔 가루를 문질러 구름과 하늘의 경계를 뭉개 놓은 듯하다.
이처럼 자연과 가까이 닿아갈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나이 든 것이라고.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괜스레 감성에 젖어 물먹은 솜뭉치처럼 축 늘어져 있는 것. 흔히 볼 수 있는 벤치가 왜 여기에 놓이게 되었는지. 지나가다 만난 벤치가 얼마나 반가운지. 별것 아닌 것들에 별 의미 부여를 한다면 '듦'이 시작된 것이다.
도시 생활에 지치고 힘듦
현재 직업이 맞지 않아 힘듦
닭장 같은 집이 싫어서 힘듦
개인 공간이 없어서 힘듦
조용한 곳에서 쉬지 못해 힘듦
인간관계가 힘듦
초미세먼지 때문에 힘듦
도심에서 살고 있는 청춘, 대다수가 느끼는 여러 힘듦 중에 두세 가지만 뽑아도 시골을 갈망하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시골에 가면 적은 돈으로도 넓은 집을 구할 수 있고, 사람 간에 부딪히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빠르게 돌아가는 도심과는 달리 여유를 찾을 수 있겠다, 이 정도? 더 이상 들어갈 힘이 없는데 자꾸 들어가니까 힘들어지겠다.
의식주조차 '돈'이 있어야 가능한 시대이다. 그놈의 '돈'이 뭔지, 고작 잠만 자는 집을 얻기 위해 취직을 하고 커피를 참아가며 통장관리를 한다. 때론 휴식이 필요하니 적금을 만들어 여행 경비를 모은다. '돈'이 기준이 된다면, 도시에 사는 청춘들이 시골을 찾는 이유도 꽤 간단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시골에선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적은'돈이 필요하다는 것. 도시에서 누리지 못하는 것을 시골에서 누릴 수 있다는 것. 나 또한 다르지 않은 사람이기에 '돈'에서 벗어나 '누릴 것'을 찾고 있다는 것.
똑똑해질 만큼 똑똑해져 버린 수많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것조차 '가성비'를 따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누릴 수 있는 시골을 찾고 있는 것이고. 하지만 막연하게 시골에 가서 예쁜 주택에 살고, 작은 텃밭을 꾸리고, 자급자족을 하며 깨끗한 공기를 마실 생각을 한다. 실제로 시골살이를 누리는 사람들은 '돈'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면서 말이다.
재고 따지는 것도 많겠다. 시골은 시골이지만 편의시설, 의료시설, 체육시설 등이 있어야 하고 도시와 근접하지만 집값이 저렴한 그런 곳(예를 들면 경기도). 그런데 그런 곳조차 값이 오르는 바람에, 나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가지 못한 채 도시에 묶인 신세가 됐다.
궁금해서 찾아본 양평 전원주택 40평 매매 가격. 경의 중앙선 지평역 기준으로 저렴해봐야 1억 5천만 원에 살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컨디션도 아닌데 말이다. 서울에선 5평 남짓한 신축 원룸을 전세가로 구할 수 있는 돈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양평의 전원주택이 살기엔 더 좋다.
현재 양평 전원주택 매매 가격만 봤을 때, 정말 시골 살이는 '돈'이 많아야 가능한 것이 되겠다. 더한 문제는 수중에 1억 5천만 원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시골에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인데, 서울로 출퇴근한다 하더라도 벌이를 위한 투자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의식주조차 '돈'이 있어야 하는 이 시대에 맨몸으로 시골을 가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 되겠다.
그래서 나는 간헐적 시골 살이를 통해 찾아보려고 한다. 도시와 시골, 그 어느 중간을 찾을 수 있는 방법과 내가 꿈꾸는 시골 살이가 무모한 도전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