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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Aug 02. 2020

B.M.W.에서 BMW로

주차하셨나요?


어디서 밥을 먹든, 옷을 사든, 으레 듣는 말이다. 마트에선 아묻따 영수증을 건네며 주차권을 같이 주기도 한다. 그럼 난 항상 '아, 저 차가 없는데요.'라고 하는 대신, 차는 있지만 오늘만 가져오진 않은 것처럼 말하곤 했다. "아, 괜찮아요."


왜 그랬을까? 기꺼이 무료로 주차를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며, 주차권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봐주는 이 세심함이 차가 없는 시절엔 그렇게도 서러웠다. 자격지심이었다. 차가 없는 걸 알면 점원이 나를 무시할까, 이미 밥을 다 먹고 나가는 중에도 괜한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 차가 생겼다. 결혼을 하며 집을 샀고, 에라 모르겠다-차도 사버렸다. 우스갯소리로 B.M.W(Bus, Metro, Walk)를 탄다고 했는데, 진짜 BMW를 타게 됐다. 가장 큰 동기가 된 건 결혼식 준비였다. 왜 그 모든 드레스샵과 예물샵, 스튜디오는 다 청담에 있는지...


부자동네라 다들 차를 끌고 다녀서인지,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매번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탄 후, 다시 버스로 몇십 분을 더 가야 했다. 게다가 한 번 간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드레스샵만 해도 투어 때 한 번, 촬영 드레스를 고르러 한 번, 그리고 본식 드레스를 고르러 또 한 번, 총 세 번을 가야 했다.


반지는 어떻고. 반지를 맞추러, 완성된 반지를 찾으러, 본식 전 폴리싱을 맡기러, 마지막으로 폴리싱 된 반지를 찾으러, 총 네 번이나 방문해야 했다. "안 되겠다, 차, 사자!

우리도 이제 직장인 6년 찬데,
남들은 이미 다 갖고 있는 거 사버리자!



그렇다면 뭘 살 것인가!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면서도 도통 차에 대한 흥미가 안 생겨 이직을 할 정도로 차의 ㅊ도 몰랐지만, 그런 내게도 눈에 띄는 차가 있었으니... 친구 차를 타고 가다

요즘 저게 이쁘더라, 아우딘가?

하며 손으로 가리킨 것은 바로 BMW의 세단이었다. 독특한 세로 그릴이 예뻐 보였다.


남편(식전이었지만 혼인신고는 마친 상태였다.)은 펠리세이드를 고집했지만 왠지 현차는 싫었다. 확고한 내 의견에 그는 좀 생각해보자고 하더니, 미니를 거쳐 520d를 타고 다니시는 아주버님에게 물어 딜러를 소개받았다. 그 뒤론 일사천리였다.


한 달 후 딜러가 회사로 찾아왔고, 스툴에 앉아 무릎에 놓인 서류에 사인을 했다. 10년 넘은 면허를 장롱에서 꺼내기 위해, 맘 카페에서 찾은 여선생님에게 연수도 받았다. 2시간짜리 운전연수가 두 번 남았을 즈음 차가 도착했고, 일주일 뒤부턴 B.M.W.가 아닌 BMW로 출근을 하게 됐다.



하지만 정작 드레스를 고르고, 반지를 찾으러 갈 땐 여전히 B.M.W.를 타야 했다. 압구정엔 페라리니 람보르기니니 하는 소위 슈퍼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접촉사고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압구정에 엄청 큰 카페가 하나 있는데, 거기선 포르셰니 마세라티니 하는 것도 색과 외양에 따라 일부만 지상에 주차를 해준다고 한다. 나머지는 바로 지하주차장으로 보낸다고 하니, BMW도 마찬가지라고.


길은 또 어찌나 좁은지. 워낙 비싼 땅이라선지 대로변은 턱도 없고 웨딩샵은 대부분 골목에 들어가 있는데, 차 한 대가 지나가면 딱 맞을 그 좁은 도로에 갓길 주차까지 되어있다. 그것만으로도 큰 맘을 먹어야 하는데, 일방통행이 아니라 반대편에서 차가 올 수도 있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발렛비는 또 어떤가. 잠깐 들렀다 가야 하는데도 3천 원씩 내야 하니, 현금도 두둑이 들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원래 차를 사려고 했던 목적은 이루지 못하게 됐지만, 그래도 차가 생겨 좋은 점이 있다. 마트에서 무거운 음료(보통은 맥주나 와인)를 살 때 무게 걱정 않고 한 번에 잔뜩 사서 차에 실어올 수 있고, 고양이들을 병원에 데려갈 때도 애처롭게 우는 소리에 택시 기사 아저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 최근엔 엄두를 못 냈던 캣 페어에도 갔다!



그러던 중 며칠 전에 만난 언니에게 허를 찔렸다.

환경 생각한다고 텀블러 노래를 부르더니
... 차를 사?


맞다. 외면하고 싶었던, 어쩔 수 없다고 자기 합리화하고 싶었던 나의 이중적인 면모였다. 가솔린이든 디젤이든 차에서 나오는 매연은 매 순간 환경을 망치고 있단 걸 알면서도 기름 먹는 차를 산 건.


한번 차를 타게 되면 다신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이제와 차를 포기하라면 할 수 있을까? 일 년도 되지 않은 기간, 우린 벌써 자차로 이동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까운 곳도 지하철 앱이 아닌 네비를 먼저 켜게 되었다. 그렇다면 역시... 다음은 전기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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