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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듬 Oct 31. 2023

유튜브를 지웠다


수년 , 유튜브 프리미엄을 정기결제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뮤직도 이용할  있고, 점점 길어지는 지긋지긋한 유튜브 광고까지 무료로 제거할  있다기에 빠르게 구독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알면서도 돈을 내면 본전을 뽑고 싶은  사람 심리니까.



그렇게 나는 유튜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물론 유튜브는 나 하나쯤 떼도 상관없겠지만.) 다양한 어플들 중에서도 유튜브를 지우는 건 정말 어려웠다. 시간제한을 설정해 놓고 앱을 잠가도 변하는 건 없었다. 1분 연장이 10분이 됐고, 10분 연장이 하루가 됐다. 핸드폰에서 앱을 지우고 난 뒤에는 유튜브가 설치돼 있는 무거운 아이패드를 손에 쥐고 사방팔방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화면 너머의 세상처럼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다. 좋아하는 하천길의 풍경, 날아가는 새, 반짝이는 강물까지 모든 게 프레임 안에 갇힌 듯 보였다. 풍경에 젖어들지 못한 채 멍한 정신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결단을 내릴 때였다. 그렇게 아이패드에 설치된 마지막 유튜브까지 지웠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이렇게나 쉽게 넓은 세상을 체험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간접적인 경험만으로 만족하게 되어 굳이 직접 경험하고 싶지 않게 된다면 어떨까. 시작도 해보지 못한다면 그 일이 내게 맞는지 아닌지 생각해 볼 기회조차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유튜브 내에선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고, 양방향의 소통도 필요 없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된다. 편집적인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여론에 따라 판단을 의탁하게 된다. 건전한 토론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온갖 욕설과 비난이 필터링 없이 난무한다. 불쾌한 언어들을 여과 없이 뇌 속에 받아들이다 보면 그런 표현들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들이 갖고 싶어 지고, 더 화려한 인생을 쫓게 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누리고 싶어 진다. 몰랐던 때보다 괴로운 이유는 내게 필요한지 아닌지 판단하기도 전에 일단 보기 좋은 것들이 시야 안에 가득 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정보의 과잉, TMI 시대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


유튜브는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도 중독적이다. 나는 여전히 내 구독 목록에 있는 사람들의 근황과 새로운 뉴스가 궁금하다.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문득 떠오를 때면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유튜브가 없을 때도 잘만 살았는데, 이미 인생의 절반을 유튜브가 잡아먹은듯한 느낌이 든다.


책을 봐도 재미가 없고, 그림을 그려도, 글을 써도 그저 그렇다. 이제는 더 자극적인 것들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런 욕구는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영상을 봐도 뭔가 채워지지 않은 듯 텅 비어있다. 시간은 시간대로 뺏기고 삶은 피폐해져가기만 한다. 그렇게나 많은 영상을 봤는데 잡지식 말고는 남은 것도 없다. 쉽게 얻은 정보는 그만큼 쉽게 휘발되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청소하는 영상을 보면서 자극받아 청소를 시작하기도 했고, 동기부여 콘텐츠를 보면서 힘을 얻고 실제로 행동에 옮긴 적도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긍정적인 영향은 잠깐이고, 그렇게 방심하는 찰나 중독에 휩쓸려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제력에 의존한다는 건 인생을 배팅한 도박이나 다름없다.


유튜브를 지운 뒤 마땅히 켤 앱이 없어지자 아이패드에도 흥미가 떨어졌다. 조금만 지루해져도 무의식적으로 유튜브를 찾으며 할 일도 못한 채 낭비하는 시간이 줄었다. 꽤나 무료해졌지만 덕분에 독서나 글쓰기, 운동 같은 일에서 고통 어린 기쁨을 찾을 수 있었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쾌락만 좇으면 오히려 괴롭고, 고통을 가해야만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오래도록 지루함을 즐기며 견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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