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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듬 Feb 05. 2024

영화 '웡카', 쓴 맛 0.1%, 단 맛 99.9%

씁쓸한 세상을 지운 한도 초과의 달콤함.


 영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달콤한 세상을 기대한다면, 참으로 적절한 영화가 아닐까. 최근 우후죽순 쏟아진 씁쓸한 영화들의 끝 맛에 찝찝함을 느꼈다면 이 영화는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단순히 달콤하기만 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입에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겠다. 


영화 '웡카' 스틸컷


 웡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화제의 중심(부정이든 긍정이든)에 섰다. 같은 책을 원작으로 하는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공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예고편과 배우진에 기대감을 한껏 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뮤지컬 영화에 목이 말랐던 나 또한 이 영화의 개봉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영화가 개봉된 후 예상과는 다른 기괴함과 어두움은 쏙 뺀 동화 같은 스토리에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하거나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기대만큼 실망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그러나 내겐 현실을 기만하는 웡카만의 낙관이 그저 사랑스럽게 보였다. 너무 쓰거나 짠 것만 먹다 보면, 가끔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달콤한 게 먹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어릴 적 지녔던 순수한 마음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 지듯이. 이 영화는 그런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게 느껴지는 당돌한 낙관성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 천진함이 유치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유치함이라는 말조차도 통하지 않는 동심의 세계에서 그것은 자연스러운 풋풋함이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각적인 달콤함에 휩싸여 비현실적인 요소들은 생각하지 않고 싶어 진다. 웡카는 자신의 초콜릿을 닮은 환상을 끝없이 펼쳐낸다. 이가 썩을 것 같이 화려하고 달콤한 세계,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다. 그 순간 나는 웡카의 무구함에 설득당하며 날 것 그대로의 설렘을 느낀다. 악역은 단면적이며 우스꽝스러울 뿐이고, 주인공들의 비극은 지나치게 비참하게 그려지지 않는 가볍고 유쾌하고 초콜릿처럼 달기만 한 세상. 카카오 99% 같은 건 개나 줘버린 단순한 단 맛이 혀를 아리게 만든다. 


티모시에겐 자주색 코트와 밤색 모자가 몹시 잘 어울린다. 정말 아름다운 웡카다.


 웡카는 직관적인 환상이 필요할 때 꺼내 먹고 싶은 꿈결 같은 영화다. 동심의 초콜릿에 씁쓸한 맛은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무효한 법. 과도한 단 맛은 세상과 불협화음을 낼지언정 영화 안에서만큼은 안정적이고 조화롭다. 


 물론 나이를 먹을수록 높은 당도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건강해야 하는 것도 알고, 세상의 쓰고 복잡한 맛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원초적으로는 달콤함에 가장 쉽게 매혹된다. 거친 세상에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끌리는 것처럼. 웡카는 그렇게 끈적하고 달콤한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휴 그랜트를 지나치게 닮은 움파룸파와, 미스터 빈의 주인공 로완 앳킨슨을 지나치게 닮은 부패 사제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감상 포인트다. (왜냐하면 진짜니까.) 그들의 반가운 얼굴을 뒤로한 능청스러운 연기는 강렬한 대표작들을 잊게 만들 만큼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든다. 


 동화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아트웍과 캐릭터들은 고유의 분위기를 한층 돋워준다. 웡카 속 윌리는 기괴한 괴짜 아저씨보다는 기대고 싶을 만큼 순수한 열망을 가진, 바보 같을 정도로 다정하고 낙관적인 브라더에 가깝다. 그는 존재 자체로 환상적인 초콜릿 같은 사람이다.


 세상에 지친 사람들이 귀 기울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 추잡한 곳이라는 당연한 이야기보다, 그래도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며 내게 좋은 것만을 보여주려는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게 우리가 웡카의 판타지와 초콜릿에 현혹되는 이유다. 


 이 달콤함은 쓴 맛에 질린 사람들에게는 희망으로, 쓴 맛만 찾는 사람들에게는 불쾌한 허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마음속 한편에 묻어둔 동심을 다시 꺼내둔 채로 감상할 때,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기꺼이 단순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현실 속 달콤 백화점이 파는 부패한 환상에 질렸다면 영화 속 웡카의 초콜릿을 한 번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는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친절히 자신의 초콜릿을 맛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단돈 1 소버린만 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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