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양육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던 증조부의 말씀

이 시대의 부모님들께는 사회의 관심이 더욱 필요합니다.

by jionechoi


외증조부는 전라남도 고흥에 사셨다. 이쯤 되면 고흥에는 유자와 석류, 무화과 그리고 포도 같은 다양한 과일들이 열렸다. 그 과일들을 제게 주실 때만큼 기억 속에 외증조부는 그렇게 다양한 제철 과일처럼 아직, 지금도 고흥을 닮아 있다.


전남 고흥의 동강면에 위치한 외할머니의 집의 전경이다.


내가 외할아버지를 요즘 들어 자주 떠올리는 이유가 있다. 바로 아기에게 과일을 주게 되면서부터이다. 수도권에 살던 우리 형제가 하늘에서 본 별처럼 반짝이는 싱싱한 과일을 만난 건 어머니의 고향에서부터였다. 그리고 과일을 물고 할아버지께 자주 안겼던 기억은 '라테 파파'를 지향하는 나의 성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외가 댁에 국민학교(?) 방학 시절에 빠지지 않고 들렀었다. 여름이면 다양한 채소와 과일의 색깔을, 겨울이면 정말 하얀색뿐인 총천연색의 자연을 그래서 만날 수 있었다. 지난 글에서 아기에게 제철을 선물하고픈 마음의 시작이 증조부의 오래전 선물에서 기인했음도 함께 고백한다.



어떻게 아셨을까? 산타클로스보다 더 자세히 외할아버지는 형제의 면면을 속속들이 알고 계셨다. '무엇을 잘했는지 잘 못했는지(?)...' 방학 전 성적표가 엉망일 때면, 고사리 손에 들린 방학의 하루 시간 계획표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면 고구마를 캐고 마늘을 뽑게 하셨다. 그러시고는


"이렇게 일하는 것보다 공부가 쉽지?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제."


하며 살아있는 가르침을 주셨다.


고흥의 특산물인 마늘, 마늘 말고도 키위, 유자, 모과 등 다양한 특산물이 난다.

요리사였고 요리사들을 가르치게 된 것이 그때 기억의 연장선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외 증조부모들은 내어 주시는 것에 한정이 없었다. 최근 외할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밑반찬들은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두 손자가 기억하는 그때의 유년시절의 밥상은 너무나도 풍성했다. 남도의 한상을 선물하기 위해 그 힘든 농사일을 하시며 손주가 찾아 올 방학만을 다양한 식재료를 선물하려 어른들께서 손꼽아 기다리셨을까?




코로나가 말썽을 부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서너 달 전의 어느 날, 뉴스에 할머니의 논밭에도 코로나가 찾아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거동이 불편하실 할머니의 소쿠리에도 드디어 위기가 찾아왔다. 부부는 이 고을에 확진자가 생겼음을 들었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다.



"아따 오랜만이어라. 아기 잘 크제?"


"네 할머니. 잘 지내시죠? 뉴스 보고 걱정이 돼서요..."



아기의 증조모이자 필자의 할머니께서는 괜찮다며 말씀하면서도 바로 앞에 위치한 '할머니들의 공동 식당'이자 '유일한 만남의 광장'이 닫혀 있음을 걱정하시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회관은 집성촌인 할머니의 '유일한 낙'이셨기 때문이었다.


외할머니께서 양파밭을 일구시는 모습

아기 엄마와 나는 할머니께 드릴 주전부리들을 검색했다. 할머니에게 '대형마트'와 '오일장의 외출'은 더군다나 이때는 먼 고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택배를 보냈고 할머니께 얼마가 지나 전화가 오셨다.



"아이고. 뭐 한다고 이런 거를 이리 많이도 보냈데. 아가 키우기 바쁠 텐데 잉."


"아니요 할머니. 나눠 드시라고 넉넉히 보냈어요."



통화가 끝나고 난 뒤 아기의 모습을 전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영상통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기의 모습에서 다양한 이유로(?) 증조모의 용안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아기를 보는 표정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맞다. 저 표정과 표현은 내게 보인 모습이었다.'



비로소 외증조부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직하고 한결같던 그의 우사의 소처럼 선하시고 부드러운 사랑을 주셨던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공부를 한답시고 고3 시절, 위암으로 떠나가셨던 증조부를 면회조차 하지 못했던 아픈 손가락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가. 절대 오지 말아라. 오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해서 좋은 사람 되야제."


증조부는 항상 '아가'라고 나를 불렀다. 이는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기까지 지속된 우직한 할아버지를 닮은 호칭이었다. 가끔 어머님의 유년시절과 나의 지금을 비교하며 말씀을 해 주시고는 하셨다. 그중에 기억이 아직까지 또렷한 것이 있다. 고흥에서 자주 먹던 제철의 과일의 맛처럼.


"아가. 네 엄마가 어렸을 때는 온 동네방네에 젖이 모자라 구하러들 댕겼써잉."


"막둥이는 옆집 ㅇㅇ댁이 다 키웠지라."



5남매를 비로소 벼를 닮은 마음으로 길러내신 증조부의 말씀이 왜 그리 잊히지 않는지를 모르겠다. 어느 날 방학에 내려갔을 때 이 동네에서 새로 기르는 품종이라며 내어 주시던 참다래만큼 생소한 단어여서 그랬을까?



이 시기에 아기를 기르면서 '앓는 소리' 하고 유달스러운 나의 일상을 레시피'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이 시기에 자라나는 아기들에게 사회가 관심을 갖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를 비로소 말하고 싶어서다.



"아기가 나면 집안은 물론 마을이 뒤집힌단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 생명이라는 것이. 아가라는 것이."


"아기는 부모가 기르는 게 아니다. 아가는 마을 전체가 기르는 거란다."



연재 중에 부정적인 댓글을 마주하면서도 외증조부가 하신 말씀들에서 힘을 얻고 있음을. 그리고 그래서 다시 한번 이 시대 부모님들께 감사와 응원 그리고 존경과 위안 너머의 격려를 드릴 수 있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한마을인 사회인 나라가 아기를 키우는 가정에 조금 더 집중하고 배려하는 시각으로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이 시기에 아기를 기르는 가정에 사회가 관심과 배려를 가져 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다양한 이유로 아기의 양육과 육아는 어렵다. 이제는 아가(?)의 장난감 통에 '역대급 무더위'라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까지 찾아왔다. 하루 종일 아기에게 에어컨을 틀어 주는 것은 다양한 이유로 전문가들이 아기들에게는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다 하다 이 시대의 아기들은 '기후 스트레스'까지 겪어야 하는 것이다



이 시국에도 내가 먹었던 '다양한 과일들 만큼 다채로운 맛' 같은 사랑의 방법으로 이 시대의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를 이겨 내고 계실 아기들의 부모님들과 모든 세상의 증조부 모의 건강과 안녕을 무릎 꿇고 하느님께 진심으로 기도한다.


사랑하는 외할아버지께서 잠들어 계시는 곳, 부디 굽어보시며 좋은 곳에서 좋은 이들과 함께이기만을 부족한 손자는 기도한다.



사랑하는 외증조부를 떠올릴 때면 기억나는 한 마디를 언급한 모두에게 바치며 글을 마친다.



'아가. 착하제...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건강하게만 자라라. 많이 먹어야 하제. 많이 커라.'



(직접 찍은 고흥의 사진들을 전합니다. 고흥에서 나는 제철의 과일 들과 다양한 곡식들과 과일들만큼 다양한 지혜로 이 시기를 현명하게 이겨 내고 계시는 모든 아기 엄마와 아빠들께 고흥에 참다래를 닮은 달콤한 응원과 존경, 쓰지만 달콤한 전라남도 순천시 고흥의 동강면의 마늘을 닮은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지난 28세 때 등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열 손가락을 모두 잃게 된 김홍빈 대장은 외증조 부모와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한 고흥군 동강면 오수 마을 출신이다. 1964년 출생으로 어머니와 벗과 가까운 사이다. 세계 최초로 장애인의 신분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이루어낸 전설적인 인물이다. 7월 18일 히말라야 브로트 피크(8047m) 등정에 성공하며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의 기쁜 순간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하산 도중 실종되었다. 글을 쓰며 고 김홍빈 대장의 영면을 함께 기도하는 바이다. 춥고 외로웠지만 마지막 걸음까지도 위대하고 거룩했던 대장님의 소풍을 끝내고 가시는 길에 따뜻한 일출의 사진과 그의 고향의 내음과 풍경을 눈물로 바친다.



이 글은 브런치에서 순산한 글입니다.






이전 03화이 시국에 '육아 일기'를 쓰게 된 진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