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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Apr 12. 2022

"차의 시간을 걷다: 동아시아 차문화 연대기" 서평

다담잡설(茶談雜說):차마시다떠오른별별 생각

"차의 시간을 걷다: 동아시아 차문화 연대기." 김세리, 조미라 지음. 열린세상.


가끔 큰 서점에 들르면 차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본다. 취미 섹션에 차와, 커피, 맥주 관련 서적이 모여 있는 곳을 훑어보며 새로 나온 책을 꺼내 보고 마음에 들면 사모으고 있다. 이번에 서점에 들렀다가 취미 섹션이 아닌 역사 섹션에서 우연히 차 관련 좋은 책을 발견하여 독자들과 서평을 나누고 싶다.


진정한 문명인은 음료를 만드는 사람이다.


김세리, 조미라가 지은 "차의 시간을 걷다." 동아시아 지역의 차문화의 역사를 흥미로운 사실과 사진을 곁들여서 시대별로 정리하였다. 차의 시대를 "조리 방법"에 따라 크게 셋으로 나눴는데 첫째 차를 약처럼 달여 마시던 고전의 시대, 둘째 가루차를 거품내서 마시던 낭만의 시대, 셋째 잎 차를 우려서 마시던 실용의 시대이다. 고전, 낭만, 실용이란 시대 명명이 멋지다.


고전의 시대는 중국 당나라까지로 차의 약성에 주목하여 찻잎을 푹 달여서 먹는 자다법(煮茶法)으로 조리를 하던 시대이다. 그런데 차만 넣고 끓인 게 아니라 귤, 생강, 계피 등 여러 향신료를 함께 넣고 조리를 했다. "차가 처음부터 좋은 향기를 가진 맛있는 음료는 아니었기 때문에" 향신료와 다른 부재료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책 속에 소개된 당나라 시대 법문사 지하궁전 유적에서 발굴된 화려한 차도구 사진을 보면서 자다법으로 끓여낸 차탕의 맛을 상상해 보았다. 솔직히 맛은 별로였을 것으로... 차 속 카페인의 약성 효과를 기대하는 그야말로 약이었을 것이다. 금과 은으로 치장한 차도구는 실용성보다는 왕족, 귀족들의 권세 과시용에 불과했을 것이라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차를 오랫동안 마시면 생각이 깊어진다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 화타


낭만의 시대는 주로 송나라 시대에 해당하는데 떡차를 가루 내어 다완에 넣고 차선으로 휘저어 거품을 내어 마시는 점다법(點茶法)을 주로 사용하던 시대이다. 차뿐만 아니라 차를 담는 찻사발에도 예술성을 추구하여 "차 본연의 색, 향, 미와 차를 담는 그릇의 예술세계를 즐기던, " 낭만이 넘치던 시절로 묘사하였다. 저자들이 "동아시아인에게 있어서 가장 자유롭고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했던 시기"로 평가하는 송나라 시절 찻집의 생생한 풍경 그림을 보면서 오늘날 찻집 풍경이 겹쳐서 보였다. 송나라 시절 찻집에는 남녀노소 빈부격차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출입이 자유로웠다 하는데 이후 유교가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은 명과 조선시대를 거치며 여성들의 자유로운 외출이 불가능해졌고 "여성들이 다시 찻집 테이블에 앉기 위해서는 수백 년을 기다려야 했다"니 모든 이에게 공평한 차 한잔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낭만의 시대에는 "투다"라고 누가 가장 아름답고 맛 좋은 차를 만들어내는지 겨루는 시합이 유행했다고 한다. 직접 차와 물, 다기를 골라서 우려내는데 투다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첫째 좋은 차를 고르는 감식 능력, 둘째 물에 대해 깊은 이해, 셋째 차도구를 고르는 심미안, 넷째 차 우리는 방법의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고 옛 문헌이 적고 있다. 오늘날 맛있는 차를 우리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큰 차이가 없다.


요즘에는 주로 녹차를 가지고 말차를 만드는데 낭만의 시대에는 주로 백차를 가지고 말차를 만들었다 한다. 백차를 갈아서 만든 말차는 한 번도 맛본 적이 없어서 기회가 되면 찾아서 시음해보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낭만 시대에는 차맛과 다기뿐만 아니라 다식에도 신경을 쏟았다고 한다. 송나라 개봉에서 유행하던 다식 설명에는 군침이 절로 돌았는데 오늘날 팥빙수와 유사한 "설포두이수"는 단팥이나 단녹두에 눈꽃얼음을 올린 여름 다식이었다고 한다.


낭만의 시대에는 다기도 큰 발전을 이루었는데, 차 관련 모든 산업이 발전하는 매력적인 시대였다. 다완에 담는 말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백자보다는 청자, 흑자가 발전했다는 게 저자들의 해석이다. 송, 원나라 자기보다 훨씬 멋들어진, 눈부신 고려청자 작품이 쏟아진 것도 이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도자기 기술의 발전은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정 부분 빚지고 있다는 저자들의 해석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차 본연의 색, 향, 미와 차를 담는 그릇의 예술세계를 즐기던 낭만의 시대


명나라를 세운 태조 주원장이 떡차를 금지하면서 잎차의 시대, 곧 실용의 시대가 열렸다. 주원장은 떡차를 가공하는데 농민들의 노고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떡차 제조를 금지하고 잎차를 마시도록 하였다. 찻잎을 다관 또는 개완에 넣고 뜨거운 물을 넣어 간단히 우려 마시는 포다법(泡茶法)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제다법에도 변화가 생겨서 찻잎을 오랫동안 찌는 대신에 열을 가한 솥에서 찻잎을 덖어서 산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덖음 제다법을 도입하면서 각지에서 재료의 개성을 살린 가공 방식을 시도하게 되고 명차의 탄생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과거 고전과 낭만 시대에는 찻잎과 향신료를 섞어서 쪄서 떡차로 가공하였으나 고급 향신료 사용을 금지하면서 차 자체의 맛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역사책이다. 어려운 한자 표현을 가급적 오늘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썼고 차와 관련한 흥미로운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다. 옛날 그 시절에도 차가 귀하고 비싸지니 감나무나 감람나무 잎을 섞어서 속여 팔기도 했다거나, 다기에 자주 보이는 당초문(식물의 가지나 덩굴 문양)이 사실은 인물화를 금지하는 이슬람권에 도자기를 수출하기 위해 채택했던 문양이라는 등 소소한 정보들이 책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있다. 여기에 더해 차를 즐기던 옛 선인들의 풍류 가득한 문장을 음미하는 것은 덤이다.  



역사책임에도 연대표와 옛 지명을 담은 지도가 없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차문화의 역사에 중요한 사건을 국가 또는 지역별로 정리한 연대표가 있으면 독자들이 좀 더 입체적으로 차문화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같은 맥락에서 차와 도자기의 교역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흐름도를 담은 지도가 있다면 좋았겠다. 중국 외에 신라, 고려, 조선, 일본의 차문화 역사도 다루고 있으나 그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저자들은 "진정한 문명인은 음료를 만드는 사람이다. 차는 의약품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품으로, 그리고 다시 한 단계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한잔의 음료가 된다"라고 하였다. 당신에게 위안을 주는 차 한잔에 역사 한 스푼을 더해 보심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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