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요즘 부쩍 여기저기서 신동사, 신동사 하길래 처음엔 누구 이름인가 했다(해리포터 알못…).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 버전인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줄여서 ‘신동사’의 두 번째 시리즈다. 가히 그 인기와 명성답게 개봉 첫 날 27만명을 동원하면서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섰다.
그런데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는 제쳐두고라도, 아무리 그 대단한 ‘조앤 K. 롤링’ 작가의 작품이라 해도 ‘신동사’를 둘러싼 논란들을 그냥 넘어가기는 좀 찜찜하다. ‘무엇을 볼 지’ 결정하는 것이 개인의 취향이라면, 그 ‘취향’이란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들이 촘촘히 쌓여 만들어진다. 그래서 때때로 그 선택은 지극히 사적이지만 동시에 적극적인 정치적 행위가 되기도 한다. “해리포터는 좋아하지만 ‘신동사’는 안 볼래”가 가능한 이유다.
‘신동사’의 첫 번째 논란은 한국인 배우 수현이 내기니역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된다. 내기니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악당 볼드모트가 기르던 애완용 뱀이다. 이번 영화에서 내기니는 저주받은 피를 이어받아 점점 동물로 변하는 ‘말레딕투스’ 캐릭터로 설정됐다. 그 저주가 여성(엄마)에게서 여성(딸)으로만 이어진다는 점도 그렇지만, 백인 남성의 소유물이 실은 ‘뱀으로 변한 사람’이었고, ‘아시아 여성’이 그 배역을 맡았다는 점은 젠더와 인종의 교차점에서 이중 문제를 드러낸다.
비판이 불거지자 원작자이자 영화 각본을 쓴 조앤 K. 롤링은 트위터를 통해 내기니의 유래를 설명했다. 내기니의 모델이 된 ‘나가(Naga)’는 “인도네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뱀같은 신화적 동물”로 “때때로 반 인간, 반 뱀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의 초점이 단지 내기니역의 캐스팅만이 아니라 극 중 설정과 관계에 있다는 걸 외면한 답변이었다.
또, 한국인 배우 캐스팅을 두고도 “인도네시아는 자바인, 중국인, 베타위인 등 수백 가지의 인종으로 구성돼 있다”고 답한 것은 ‘어차피 다 같은 아시아 아니냐’라는 식의 아시아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로 읽힌다. 그러니 이후 ‘나가’가 사실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인도 신화에 등장한다는 점이 밝혀졌어도 그리 놀랍지 않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전작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백인 위주의 캐스팅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문제다. 동양인 배우를 한 명 캐스팅하는 것으로 ‘인종다양성’이 확보되지는 않을뿐더러, 그 캐릭터 설정은 도리어 인종차별 논란을 낳았다. 다만 내기니역을 맡은 배우 수현은 언론 공식 인터뷰를 통해 “‘내기니’가 단순히 약한 동물이 아니라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는 강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아시아인 배우로서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에는 내기니의 비중이 거의 없어 다음 시리즈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더 두고 보아야 할 듯하다.
한편, 두 번째 논란은 이번 영화에 출연한 배우 에즈라 밀러와 수현의 인터뷰 과정에서 불거졌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언제 처음 읽었느냐는 질문에 수현은 중학생 때 미국에 있는 아버지 친구에게 책을 보내달라고 했다고 답한다. 리포터인 키얼스티 플라는 놀라워하며 “영어로 읽었냐”고 묻고 수현이 그렇다고 답하자 “그 때 영어를 할 수 있었냐”고 재차 되묻는다. 캐릭터의 인종차별 논란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실제 배우에게까지 옮겨간 꼴이다.
물론 키얼스티 플라의 질문은 ‘순수한 호기심’이었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사과문에서도 “나도 노르웨이인으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다”며 “어린 나이에 해리포터를 영어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외국인, 특히 다른 인종에게 영어 구사력을 언급하는 데에는 ‘영어를 못한다’는 전제가 이미 깔려있는 것이기에 설령 나쁜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인종차별이 된다. 그는 “나중에서야 무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사과했지만, ‘무지’를 앞세워 상대에게 ‘무례’할 수 있는 것도 일종의 권력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에서 ‘신동사’ 불매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세 번째 논란은 또 다른 출연 배우 ‘조니 뎁’의 가정폭력 문제다. 지난 2016년 배우 엠버 허드는 조니 뎁과 이혼하면서 그를 가정폭력 혐의로 고소했다(물론 조니 뎁은 부인하고 있다). 이에 팬들을 중심으로 조니 뎁 하차 요구가 일자 조앤 롤링과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두 사람의 프라이버시와 새 출발을 존중해야 한다는 궤변으로 그를 옹호하며 끝내 캐스팅을 고수했다.
이에 반발해 한국 팬들은 영화 개봉일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트위터에서 “#가정폭력범출연 신동사_OUT”라는 ‘해시태그 총공’을 진행하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는 이제 더 이상 소비자들이 대중문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결과로서의 창작물만이 아니라 창작과정의 윤리성도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월에는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가 소속사를 상대로 우익 성향, 여혐 논란이 있는 일본 작사가와의 협업 중지를 요구했고, 결국 해당곡이 제외되는 일도 있었다.
영화 개봉 후 ‘신동사’의 영국 공식 트위터 계정은 런던에서 열린 프리미어 시사회 현장 사진을 업로드하면서 참석한 한 일본 배우의 사진을 수현으로 잘못 소개해 또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이렇게 숱한 논란들에도 아마 ‘신동사’는 끄떡없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자본력을 토대로 상영관을 차지하면서 한동안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킬 확률이 높다. 하지만 시대와 소비자를 외면하고도 끝까지 굳건할 수 있는 ‘문화’란 없는 법이다. 앞으로 ‘신동사’ 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이 얼룩들은 지워지지 않고 남을 테니 말이다.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 영화]
개봉: 2018.11.14
출연: 에디 레드메인, 조니 뎁, 캐서린 워터스턴, 주드 로, 에즈라 밀러, 수현 등
감독: 데이빗 예이츠
제작: 워너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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