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만은 다개국어 능력자
승무원이라면 응당 외국 손님과 원활히 소통하고 유창한 영어 실력과 그 외에 추가적으로 일본어와 중국어 정도는 할 줄 아는 능력자라고 생각하거나, 기대되어진다.
나도 그런 나의 모습을 기대하며 전 세계를 누비는 멋진 능력자의 모습을 꿈꾸며 입사했다.
실제로 교육을 마치고 처음 비행기에 탔을 때 나는 교육원에서 배운 (머리가 깨질 뻔한 ) 중국어 문장이 이렇게 유용할 줄은 몰랐다.
중국인 손님 90%의 중국 우환 비행, 영어도 한국어도 통하지 않아 돼지고기를 안내하기 위해 돼지코를 해 보였다는 전설의 이야기가 절대 농담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진짜 닭고기를 설명하려고 손을 정수리에 대고 닭벼슬을 표현해야 할 판인 소통 불가의 답답한 상황.
신입의 열정으로 [찌로우-]를 외워가지 않았다면 정말 카트 앞에서 우스꽝스럽게 닭을 흉내 내거나, 메모패드에 닭을 그려 보였어야 할 상황이었다.
내가 상상한 승무원과는 너무 갭이 큰 모습.
그런 식으로 승무원은 절대 통하지 않는 만일의 경우를 위한 간단한 중국어 일어 단어를 숙지하고 있고, 때로는 그런 모습이 아주 유능해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남을 흉내 내거나 따라 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 그런지,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은 뛰어나지 않은데 외국인을 따라 발음하는 것만은 꽤 좋아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곧잘 잘하는 척을 해대곤 했다.
훈련생 때도 중국어 말하기 테스트를 할 때, “탑승권 보여주시겠습니까?”를 아주 완벽한 억양으로 말해서 호랑이 선생님이셨던 강사님께 “오 , 중국어 배운 적 있어요?”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다음 테스트로 “오늘 식사는 죽과 오믈렛이 있습니다. 한 번 말해보세요”를 말할 때,
“워 쓔 쩌우, 지단! “이라고 자신감에 차 발음을 굴려 말했다가
“하하하하, 그건 저는 죽과 오믈렛입니다 라는 뜻이에요 ㅎㅎ 속을 뻔했네, 발음이 좋아서..”
라고 강사님을 웃게 만들었다.
한 순간에 죽과 오믈렛이 된 훈련생은 본인의 한계를 깨닫고 문장보다는 정확한 발음으로 단어만 말하며 소통하는 승무원이 되었다.
수준이 이 정도이니,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전할 수는 있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럴 땐 “팅 부통- “이라는 무적의 방패가 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실컷 중국어 잘하는 척 멋진 발음으로 메뉴를 소개하고, 내가 모르는 말로 물어오는 승객에겐 “팅부통!!” 해버리는, 내 멋대로 승무원.
정말 내 멋대로인 것은 손님이 실컷 무얼 물었는데 도저히 소통이 안되어 “팅부통- “으로 일관하다가 손님이 내리실 때 “피아오량~”이라고 예쁘다는 말을 하신 것은 또 찰떡같이 알아듣고 “쎼쎼~”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니, 정말 내 맘대로 듣기 좋은 말은 듣고 듣기 싫은 말은 거르는 뒤죽박죽이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뒤죽박죽이어도 생존을 위해! 이 정도 소통이 되는 단어 숙지는 꼭 필요하다!
요새는 동남아 손님들, 미국이나 유럽 손님들, 중국, 일본 손님들이 간단한 한국어를 쓰고 이해하는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뻔히 한국 비행기를 탔음에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쓰는 외국인도 있었고, 태국 여행을 갔다가 환승하는 우리 비행기를 타서인지(우리 국적기를 이용하는 미국, 유럽 승객들은 동남아 여행을 위한 환승 편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꽤 많다) 합장을 하며 태국식 인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요새는 “비빔밥”을 달라고 또박또박 말하거나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를 말하는 경우도 꽤 많고 아예 한국어로 말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서툰 발음으로 우리말을 써주는 것은 또, 신기하게도 엄청난 힘이 있다.
내가 너무나도 작은 것에 고속 충전되는 파워 긍정러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거운 짐을 복도에 세워두고 올려달라고 뻔뻔히 요구하는 외국 승객에게 너무 무거워서 같이 들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힘겹게 짐을 서너 개 올리고 나서 한숨을 돌리는데 “갬쑵니다!!!” 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면 그 발음이 귀엽고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이 듣기 좋아서 그냥 웃음이 새 나온다.
‘에잇 봐줬다….’라는 심경이 된다.
내가 그들이 어렵게 구사해 낸 한국어에 맘이 녹는 것처럼, 해외에 도착해서 그 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의 언어로 인사를 하며 내리면 곧잘 그 말을 똑같이 따라 해보곤 한다.
“땡큐, 굿바이~” 만 계속하다가도 “메씨-“ “그라치에” “아리가또고자이마스” 같이 그들의 말을 따라 전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더 환한 미소로 내리고, 나를 더 좋게 기억해 주니까 그것 역시 생존 외국어의 일부이다!
내 일터에서는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만큼 큰 성과가 없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도 있다.
모스크바에서 단체로 시끌시끌했던 러시아 손님들이 단체로 내리던 날.
“땡큐 굿바이~” “스파시바~”를 따라 하다가,
(하기 시에는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말이 꼬이거나 무아지경에 빠지곤 한다…
퇴근 직전이어서 더 그런지도!)
“땡큐 씨바~” …………….
건너편에 있던 팀원 언니도 듣고 나도 말해놓고 당황해서 그다음부터는 웃음이 터져서 수습이 안 됐다.
기분 좋게 내리는 러시아인들은 영문을 모를 테지만, 나는…. 그리고 함께 있던 언니는 떙큐 씨바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힘들어도 그들의 “캠쌔합니다” “갬숩니다!” 가 마법의 급속 충전기가 되는 것처럼
어설픈 나의 “메르씨” “코쿤카” “아리가또고자이마스” “땡큐 씨바” 아니 “스파시바”도
그들에게 예쁜 기억, 짧은 기쁨으로 기억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