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인정해 주기
3월 31일, 진급이 확정됐다.
첫 진급이 16년도였으니 꽤 오랜만에 맞는 진급이다.
첫 진급은 욕심도 냈었고, 단번에 된 것이어서 ‘좋은 게 좋은 거다. 나는 할 만큼 했다’라는 생각이 컸다.
이번 진급은 글쎄.
처음으로 진급 가능 연도가 됐을 때엔 전혀 진급에 욕심이 없었다.
그때의 회사 분위기도 한 번 더 진급을 하면 바로 팀 관리자가 되는 상황이었고, 관리자라니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첫 진급이 오기까지 노력하고 아픈 것도 참아내면서 제대로 못 쉬고 버텼던 것들을 보상받듯이, 아프면 쉬고 맘의 짐도 내려놓으며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던 때였다.
그 당시엔 진급 시험이 있었는데 다른 부서에 관한 지식도 범위에 포함됐다. 오픈북으로 봐야 하는 그 시험을 위해서는 꼭 수기로 오픈 북 자료를 준비했어야 했는데, 아무 욕심은 없는데 차마 빈 손으로 갈 수 없어서 억지로 유튜브를 보며 울며 겨자 먹기로 오픈북용 ‘손 노동’을 했던 기억이다.
그 뒤로는 비효율 끝판왕인 진급시험 제도는 사라졌고, 문제의 코로나가 찾아왔다.
코로나의 여파로 1년간 아무도 진급시키지 않는 초유의 상태가 벌어졌다.
욕심껏 일 년을 준비한 이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을 테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 일 년이 또 밀리면 다들 속상하겠네.”라는 식의 남 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부터는 노력한 동기들, 후배들, 선배들이 진급 명단에서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기쁘게 축하하고 여전히 남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후배나 동기들이 진급을 하고 일을 하는 것을 보니 슬슬 욕심도 나고 걱정도 됐다.
‘하, 내가 한창 비즈니스 석 서비스할 때 입사한 사람인데 나보다 먼저 진급했네?’
‘저 사람은 뭘 어떻게 잘하길래 저렇게 빨리 진급했을까?’
‘인스타에서 보면 동기들 맨날 잘만 놀러 다니고, 그냥 즐기면서 다니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진급을 했네? 뭘 따로 준비한 걸까?’
사람의 심보라는 것이 참. 얄궂다.
내 진급엔 욕심이 없었지만 남의 진급엔 관심이 갔고 궁금했다. 그들은 뭐가 다른 건지.
‘나는 그럼 만년 이 직급으로 일 해야 하는 건가? 후배들 밑에서?’
‘나보다 늦게 들어온 후배도 어느새 저렇게 하는데, 나는 너무 발전이 없는 건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살피며 나와의 차이를 가늠해 보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들과 나를 비교해 보는 맘을 가졌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일에 늘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덤벙댄다. 꼼꼼하지 못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고, 나 역시 스스로를 평가할 때 “꼼꼼하지 못하고 대충대충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승무원 일은 ‘센스 있고, 꼼꼼하고, 손이 빠른’ 사람이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나는 뭔가 모르게 늘 어설펐고 쉽게 졸았으며 허둥댔다.
연차가 쌓이면서 많이 익숙해지고 나아지는 면이 있긴 했지만, 간혹 발생하는 실수들 앞에서 나는 또 작아졌고 ‘에이, 내가 뭐 그렇지.’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드물게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날에도 “아, 아니에요. 저 일 못 해요.”라고 누가 들을 새라 그 칭찬을 덮기 바빴다.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과도 “어떻게 하면 일을 좀 잘할 수 있을까. 난 늘 좀 자신이 없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네가 뭘 못 해”라고 반문해도, “아냐.. 나 잘 못 해 진짜. 실수 맨날 하고.. 일이 안 늘어. “라고 아니라는 사람에게도 굳이 못 한다며 내가 내 얼굴에 침 뱉기에 열을 올렸다.
사회생활에서도 늘, 나는 작아졌다.
지금은 그래도 나아졌지만 선천적으로 내향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처음 만나는 팀장님들의 평가로 업무 성과가 결정되는 나에게 ’ 일 잘하는 척, 싹싹한 척, 먼저 다가가는 것‘은 너무 큰 과제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친해진 팀원이나 동료들 앞에선 실수도 없고 잘만 일을 하는데, 관리자가 와서 일을 같이 돕거나 나를 쳐다보고 있으면 바로 얼어버려 허둥대고 뭘 놓치고 평소 하는 것에 반도 못 보여주는 날이 많았다.
그게 쌓여서 평가는 늘 보통 혹은 기대 이하 수준이었고, 그에 스트레스받고 또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더 나를 깎아내렸다.
“내가 무슨 진급이야. 그냥 남한테 폐만 끼치지 말고 지금처럼 내 할 일이나 잘하자.”
“돈 벌려고 하는 일에 욕심내서 뭐 해.”
맘이 힘들고 지친 날엔 일기를 쓰거나 비행 복기를 하면서 내 감정을 돌아보기도 했다.
글을 들여다보면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은데, 나는 늘 자꾸 솟아나는 욕심을 두더지게임하듯이 툭툭 집어넣기 바빴다.
“들어가! 욕심내지 마!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할라!! “
그래서일까?
진급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보고 너무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더 여기저기 자랑했다.
“축하해 줘. 나 진급했어!!”라고.
마구마구 티 내고 싶었다. 나 인정받았다고.
나 내 생각만큼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라고.
그 인정이 많이 고팠었나 보다.
진급 자체가 기쁜 것보다, 이제 내가 나를 미리 미워하고 못한다고 겁먹어가며 방어하기보다 ’그래도 회사가 진급을 시켰으니 인정받은 거지 뭐‘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맘이 후련했다.
금방이라도 ’ 가면증후군‘에 걸려서 내가 도대체 어떻게 진급된 거냐고 남들이 흉볼까 뒤로 숨고 싶은 맘이 들 것 같지만 자꾸 맘을 다잡고 있다.
‘자신이 바라는 최고의 모습이 되려면 자신의 믿음들을 끊임없이 편집하고, 자기 정체성을 수정하고 확장해야만 한다’
요즘 읽고 있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제임스 클리어 지음)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동안 내가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내 정체성을 ’ 덜렁대고, 실수하고, 겁먹기 바쁜 일 못 하는 애‘로 정하고 나를 괴롭혔다면 이제는 ’ 회사가 인정해 준 일 잘하는 사람‘으로 바꿔볼 기회다.
지금 또 이 작업을 제대로 안 하고 하던 대로 습관처럼 내 정체성을 못난 틀에 가둔다면 나는 또 일 할 때마다 주춤하고 괴롭겠지?
일이 서툴고 미숙한 시기에 들었던 꾸중과 윽박지름에 너무 오래 갇혀있었던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이 정체성에서 벗어나 새롭게 내 정체성을 재정비할 기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도 나를 인정해 주었는데, 내가 나를 인정 못해선 안되지.
나는 일을 사랑하고, 잘하고 또 즐기는 사람이다.
올 해부터는 그렇게 살아가봐야지.
그동안 수고하고 애 많이 썼다.
누구보다도 애쓰고 고생하는 나 자신을 잘 알면서도 그런 내가 다칠까 나 스스로를 너무 미워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 인정에 목말라하지 말고, 그저 내가 나를 다독이고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면서 좀 더 가벼운 맘으로 일 해야지.
그게 진급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내가 나를 인정해 주고 감싸줘야지.
다른 이의 인정보다 나 자신의 인정으로 더 밝게 빛나도록.
반짝반짝 윤이 나게, 나를 잘 살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