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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랩 Jan 10. 2024

난임병원을 가게 되었다

(2023. 여름에 작성한 글)




4월부터, 내가 가진 병가와 휴가를 탈탈 털어 일을 쉬고 있다.

진급도 했고라는 좋은 핑계에 더해, 몸이 그리고 마음이 많이 지쳤으니 이제 내려놓고 좀 나를 돌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렇다면 푹 쉬기만 해야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나는 주어진 ‘시간’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스케줄 근무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벽돌 깨듯이 해나가기 시작했다.

오키로(오키로북스 서점, 성장을 파는 서점이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온라인 유료 워크숍을 진행한다)에서 진행하는 워크숍, 한창을 참여하지 못했던 밑미의 융플리, 친구들 만나기, 공연과 전시 예약해서 가기 등등 (승무원으로 일하면 사전예약이 쉽지 않다. 내가 쉬는 날을 바로 직전의 달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특히 공연 예매가 참 어렵다. 남는 자리가 아직 있고, 공연날에 쉬면 ‘운명’이라 생각하며 기쁘게 간다. 일하는 동안 나에겐 늘 ‘돈’보다는 ‘시간’이 소중했다.)

거기에 더해 ‘시간’이 생겼으니 해보기로 한 나의 프로젝트 중 하나는 ‘난임 병원 가기’이다.



듣기로 자주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컨디션 관리도 중요해서 ‘비행’을 하면서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들어왔기 때문에 지금이다! 하는 생각에서였다.


“시간 있을 때 검사라도 받아보자.”라는 맘으로 가벼운 마음인 척했지만, 이번엔 인공 수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모든 게 딱 맞는 적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난 1년 간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기는 염증 때문에 산부인과를 갈 때마다 초음파를 보며 임신의 확률이 높은 날을 받아 노력을 하기도 했었는데, 계속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겪는 생리는 불쾌함과 더불어 나의 생산성을 꽤나 떨어트리는 동시에, 이제는 속상함과 절망감을 같이 주는 이벤트가 된 지 오래다.



검사 결과 우리 부부는 둘 다 정상이었고, 안도했다.

그래서 병원까지 왔으니 금방 잘 될 줄만 알았다.



애초에 나는 아이를 가지고 낳아 양육하는 것에 대한 자신도 없었고, 늘 망설이던 쪽이었는데,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내가 시간과 돈을 투여하고 이것에 집중하기 시작하니까 점점 불어나서는 이내 집착하게 되었다.



“되겠지?” 에서 “안 되다니”가 되어버리니 기분도 같이 날뛰었다.

당연히 될 거라는 희망과 기대로 가득 찬 나날을 보내다가 결과가 아니라고 하니 느끼는 절망이 너무 컸다.



그리고 그런 절망이 찾아올 때마다 복잡한 공포가 나를 덮쳤다.

“와…. 나 안 되면 이 상태로 다시 비행 가야 해?”



말릴 새도 없이 이런 생각이 들면 아직 오지도 않은 아이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내가 정말 일이 하기 싫어서 아이를 원하는 건지 아이를 갖고 싶은 맘이 먼저인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너 이런 맘가짐으로 비행보다 힘들 그 육아를 감당할 수는 있겠니’하는 마음이 동시에 덮쳤다.




우리 부부는 딱 세 번의 시도만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시험관 수술이 아닌 인공 수정만 해보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 한 번의 자연 임신 시도(병원의 권유로 처음은 자연 임신 시도만 했다), 2번의 인공 수정이 모두 실패하고 약속한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았다.



“나 그냥 시험관 해볼래.”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인공 수정도 어차피 배에 주사도 자주 맞고, 확률은 자연 임신이랑 비슷하더라라는 말들만 더 크게 와닿고 처음에 단호했던 ‘내 몸’이 더 중요해라는 내 마음 가짐은  자꾸만 커져가는 집착에 비해 채도가 많이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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