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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마안 Jun 05. 2021

나고야에서 만난 보스토니안들의 열정과 위대한 컬렉션

돈 빼고 다 모으는 컬렉터 - 전시 도록 세 번째 이야기

나고야 보스턴 미술관 폐관 전 마지막 기획 전시

<Great Collections : Masterpiece from the Museum of Fine Art> 展 (2018)


2018년 4월, 나고야를 포함한 일본 중부지방을 1주간 머물며 여행한 적이 있다. 근교 여행지를 잠깐 투어하는 일정 이외에 3-4일 정도를 나고야 시내에서 머물렀는데 하루 정도를 종일 할애해 미술관과 박물관, 심지어 백화점 고층의 갤러리까지 엄청난 강행군을 펼친 후 장렬히 뻗었던 기억이 난다.


나고야 보스턴 미술관, 폐관 전 마지막 전시를 여행 중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당일 전시 준비로 문을 닫았던 나고야 시립미술관을 포함해 거의 4-5개의 박물관과 전시관(심지어 과학관)까지... 거의 엑스포를 다니는 수준으로 나고야 시내를 누볐다. 정말 뭐라도 하나 보겠다는 열정이 과한 탓에 몸도 마음도 지치는 날이었지만,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던 나고야 보스턴 미술관의 <Great Collections : Masterpiece from the Museum of Fine Art> 展 은 도록으로 기념하고 싶을 만큼 뜻밖의 좋은 시간이었다.



나고야에서 만나는 보스턴 미술관 그리고 컬렉션


보스턴 미술관은 현대 미술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3대 미술관에 들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세게 각지를 돌며 진귀한 컬렉션을 기증한 지역 출신 컬렉터들을 하이라이트 하며, 지역 유지들과 자생한 미술관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고야에 보스턴 미술관이 생긴 것은 세계 유명 미술관들이 해외 분관을 차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치다. 아부다비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이나 혹은 구겐하임 미술관 분점 같은 개념이다. 미술관 측에서는 넘쳐나는 소장품을 관리하고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랜드 라이선스 계약을 통한 수익창출이 주로 취하고자 하는 것들이고, 상대적으로 문화적 기반이 취약한 도시들이 이러한 유명 미술관의 분관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보스턴 미술관의 분관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에 언급하겠지만 보스턴 미술관과 일본 미술의 긴밀한 연결고리가 있는 점도 분관이 일본에 위치한 상징성을 부여하는 듯하다.

나고야 보스턴 미술관 홈페이지, 폐관을 카운트다운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갔던 2018년 4월은 나고야 보스턴 미술관 폐관을 불과 3개월 정도 앞둔 시점. 결국 나는 나고야 혹은 아시아에서 보스턴 컬렉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운 좋게 마주한 셈이고, 그 마지막 기획 전시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도록을 무조건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나고야 보스터 미술관에서 사온 이것 저것

도록을 무조건 사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름 아닌 바로 실내에서 작품 촬영이 어려운 경우다. 최근에는 관람객을 통한 자발적인 전시 홍보 차원으로 플래시 없이 사진 촬영을 많이 허용해 주기도 하지만 미세한 온도와 습도까지 관리받는 마스터피스를 전시하는 경우는 보통 촬영이 제한되어 있다. 설령 사진을 남기더라도 해외까지 나와 전시를 본 만큼 도록을 사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지만, 도록을 어쩔 수 없이 사야 한다는 일종의 자기 확신을 갖게 하는 가장 분명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회고전의 성격인 만큼, 전시 타이틀부터 상징성 차원에서 평소보다는 힘이 많이 실린 느낌이었다. 전시의 주요 작품이 보통 전시 포스터나 도록 등의 키 비주얼을 차지하는데, 우리에게도 친숙한 반 고흐의 포스트맨을 전면에 내걸었다. 마치 아이돌 그룹의 센터 격인 셈! 물론 진짜 마스터피스까지 물 건너 넘어오진 않았겠지만 실제로 반 고흐의 어거스틴 부인, 모네의 수란 시리즈 등 인상주의의 대표급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이외에도 고대부터 근대까지 보스턴 컬렉션을 콤팩트 하게 볼 수 있는 좋은 전시였다.



보스턴 미술관 컬렉션의 방대한 스케일 그리고 모험적인 컬렉터 기증자들의 일대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보스턴 미술관은 지역 출신의 컬렉터들이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진귀한 미술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약 100만 점 이상이라고 한다) 도록에 따르면 백과사전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고, 대개 공공 재원으로 미술품을 수집하는 타 미술관과는 반대로 오히려 기증품이 넘쳐나 수장고가 모자랄 정도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전시는 특히 이러한 자립형 미술관의 근간이 된 지역 출신의 컬렉터를 위대한 컬렉터로 하이라이트하고 있다. 실제로 전시 도록에도 마스터피스를 수집했던 주요 컬렉터들의 일대기를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죄다 일본어다 보니 집중해서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사료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유익한 느낌이었다.


시대별로는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에 획을 그었던 중심 줄기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이 줄기 밖에 있던 중국, 일본의 마스터피스까지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점이 보스턴 미술관 컬렉션이 특색을 갖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보스턴 미술관에 방대한 일본 컬렉션을 안겨준 컬렉터들, 일본인이 봤을 때도 위대한 컬렉터로 보여질까?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보스턴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일본 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미술관을 설립한 이후 일찍이 일본 미술의 가치를 관망하고 있었고, 이후 '보스턴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일본 미술 컬렉션을 만들자'라고 의기투합한 보스턴 출신의 컬렉터들이 꿈과 열정으로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 컬렉션을 모두 구입하며, 최고의 일본 컬렉션을 보유하게 된 것. 이와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는 실제로 도록에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일본어가 빼곡하지만 언젠간 읽겠지 하며 그림만 보고 덮었다가 글에 들어갈 현실 고증을 위해 어렵사리 핵심 내용들을 펼쳐 읽어 보게 됐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장식품이 됐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보스턴 미술관의 위대한 컬렉션을 큰 줄기로 살펴보는 것도 유익하고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위대함을 지탱하는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더 큰 감흥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보스턴미술관의 반 고흐 컬렉션 - 이걸 직접 보다니...

특히 전시의 하이라이트였던 반 고흐의 작품 두 점을 한 5분 정도 멍하니 서서 바라본 기억이 여전히 생생히 남아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인적도 많지 않아 주위는 고요했고, 생각에 잠기기 아주 좋은 분위기였다. 좋은 명화 작품을 보면 작품이 주는 위대함에 압도되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데, 이날이 특히 그랬다. 과연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미적 한계는 과연 어디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신은 어디까지 인간의 한계를 허락했을까를 생각할 정도였다.



반 고흐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의 유물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나무가 우거진 깊은 숲을 헤쳐 나오다 보니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에 멍해져서 한참 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위대한 컬렉터라고 소개됐던 도록 속의 많은 인물들 역시 이러한 감동에 빠져 신기루를 쫓듯이 평생의 열정을 바치 아니었을까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열정의 산물을 하필이면 그 시점에 보스턴이 아닌 가까운 나고야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니... 이게 어쩌면 내가 코시국에 유독 여행 앓이를 크게 하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사모님의 자비로운 허락하에 이방인 코스프레를 했던 추억과 오래간만에 잠들어 있던 감정의 세포를 깨워주던 위대한 작품들과 열정 어린 컬렉터의 이야기, 그리고 나고야 보스턴 미술관 마지막 전시의 관람자가 됐던 인증까지... 글을 쓰며 다시 돌아보게 된 이 전시 도록 한 권이 주는 의미가 여러모로 참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도록이 그림책만으로 남지 않도록 도와준 구글 번역 앱이 있는 것도 참으로 감사하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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