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클릭
벨기에를 대표하는 음식은? 초콜릿, 맥주, 감자튀김, 홍합찜, 와플 등등. 브뤼셀, 브뤼허 같은 관광지에 들르면 중심가를 빼곡히 수놓은 상점에서 이들로 심심치 않게 배를 채울 수 있다. 그렇다면 벨기에 사람들의 일상 식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불고기와 비빔밥을 매일 밥상에 올리지 않듯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벨기에 가정식을 들여다보기 전에 벨기에라는 나라를 살짝 훑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벨기에는 고유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국경을 맞댄 인접국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니까 남부는 프랑스어, 북부는 네덜란드어, 동부는 독일어를 쓴다(독일어를 쓰는 지역은 1% 미만이다). 언어가 생활과 문화, 나아가 정신까지도 지배한다는 명제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 민족이라면, 세종이 얼마나 큰 업적을 남겼는지 여기서 잠깐 칭송의 시간을 가져도 좋다. 말하자면 벨기에라는 나라는 하나의 국가로 수렴되는 구심점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 현재까지도 북부의 플랑드르와 남부의 왈로니아 사이에는 분리 독립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살짝 들여다보는 건 여기까지. 역사를 파고들자면 얘기가 길어질 테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보자. 전형적인 벨기에 가정식은 어떤 모습일까? 아니, 우리는 플랑드르 지역 중에서도 가장 찬란한 번영을 누렸던 겐트에 머무르고 있으니 '플랑드르 가정식'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앞서 말했듯 이곳 사람들은 네덜란드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문화와 생활 전반에 네덜란드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플랑드르의 드넓은 저지대 평야는 감자 따위의 구황 작물을 수확하는 데 안성맞춤이었고 휴경지 방목으로 축산이 성행할 수 있었다.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는 가공육 보존에 적합했고 플랑드르 사람들은 구황 작물과 소시지를 비축해 겨울을 났다. 과거부터 줄곧 감자와 소시지를 먹어왔다는 이야기. 감히 비유하자면, 소시지와 감자를 곁들인 한 접시는 한식의 탕반과 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Bio-Planet>에서 사 온 소시지와 감자를 꺼냈다. 신경성 위염으로 며칠째 채소 위주의 식사만 이어가던 내게 마치 수렵채집인에 빙의한 원초적 식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애진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소시지에 감자를 곁들인 한 접시가 이곳의 전형적인 저녁 식사라 했다.
애진은 저녁을 준비할 때면, 항상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감자칩에 초리조를 곁들여 먹곤 했다.
버터에 볶은 파슬리와 커민, 양파는 감자의 풍미를 돋우고 소시지는 센 불에서 겉이 타들어 갈 만큼 과감히 굽는다. 뒤뜰에서 갓 따온 유월의 푸성귀는 성큼성큼 휘저은 홀스래디시 드레싱에 버무린다.
머스터드를 끼얹은 소시지 한 조각에 부드러운 알감자 한 입, 입안이 텁텁할 즈음 상큼한 푸성귀로 목을 축이고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 플랑드르를 음미한다. 저지대의 풍요가 밀려온다. 스마클릭, Smakelijk !
스마클릭, Smakelijk _ '잘 먹겠습니다'라는 뜻의 네덜란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