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클릭
겐트에 머무른 지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일요일이 돌아왔고 로마가톨릭 안식일의 뿌리깊은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일상엔 여백이 깃들었다. 6일간의 노동에 종지부를 찍고 불운을 방지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날. 과연 일요일만큼은 불행이 비켜갈까?
애진과 시오엔은 일요일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교회당에 나가 목사의 설교를 듣고 찬송가를 불렀다고 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비스킷에 버터를 듬뿍 발라 초콜릿 스프링클을 잔뜩 묻혀 먹었다고. 비스킷과 버터와 초콜릿 스프링클이 뒤범벅된 유년의 기억이 유구하고 찬란한 로마 가톨릭에 대한 그들의 단상이다. 성년이 된 애진과 시오엔은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휴식이 깃든 일요일의 전통만큼은 지키려 했다. 애진의 부엌은 분주함 대신 여백이 감돌았다. 한 주 동안 차곡차곡 쌓인 '일용할 양식'이 한꺼번에 식탁 위로 오른 것이다.
그중 백미는 단연 '프렌치토스트'였다. 매일 아침마다 한 두 조각씩 꺼내먹던 빵 조각은 어느새 딱딱해졌고, 애진은 돌덩이처럼 굳은 빵을 계란물에 흠뻑 적셔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말로만 듣던 프렌치토스트의 효용성을 일상에서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시나몬 파우더를 듬뿍 뿌린 따끈한 프렌치토스트 위로 겉이 굳어가는 치즈와 초리조 따위를 얹으면 그 또한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우리는 그렇게 일요일의 만찬으로 배를 채우고 곳간을 비워냈다.
겐트에서 어느덧 두 번째 일요일을 맞이한 우리에게도 사소한 전통이 생겼다. 중심가로 이어진 운하를 따라 시가지로 향하는 것. 초행길엔 신기루처럼 아득하기만 하던 첨탑이 이젠 그럭저럭 익숙하다.
중심가 초입엔 겐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얼핏 보아도 균형 잡힌 대칭 구조가 유럽의 중세를 규정하는 건축 양식임을 위풍당당하게 드러낸다. 10-12세기 사이의 유럽을 함축하는 '로마네스크'와 13세기 이후의 '고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성 니콜라스 성당'이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가 생각의 역사를 뒤흔들며 자연으로 회귀하기 이전, 유럽이란 세계는 오직 '신'이 존재할 뿐이었다. 유럽인들은 로마 가톨릭이 빚은 땅을 딛고 천국에 닿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르네상스, 종교 전쟁, 프랑스혁명 등의 역사적 사건들은 꽤 견고해 보였던 유럽을 서서히 조각내고 있었다. 위기를 감지한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작가 노발리스는 [기독교 혹은 유럽, 1799]이란 글에서 신앙으로 똘똘 뭉쳐 있던 하나의 유럽이 재림하길 기원했다. 짧고 강렬했던 낭만주의의 종말은 노발리스의 예언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속화했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가 성행하며 유럽은 신의 보살핌으로부터 더욱 멀어져 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기독교로 통합되었던 과거의 유럽을 '황금시대'로 삼고 '거짓된 길'과 '진실된 길'을 역설했다. 전자는 '유럽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후자는 '민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혁명과 전쟁으로 근대화의 물결이 파도치던 유럽이 기독교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의 유럽을 열망하던 노발리스의 예언은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구심점은 신앙이 아니라 재화였다. 1994년 EU가 출범한 것이다. 얼마 안 가 그조차 아성이 무너지고 말았다. 2020년 영국이 유럽 연합을 탈퇴함에 따라 유럽 지형도에 변화가 닥칠 것으로 예측한다. 다만 아무도 미래를 쉽사래 점치지 못한다. 오직 불확정성의 원리의 확실성에 기대어 보이지 않는 미래를 희미하게 내다볼 뿐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화창한 일요일, 겐트의 유서 깊은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예배당이 아닌 책 박람회장으로 단장을 마친 뒤다.
파이프 오르간이 울리지 않는 성당 내부는 거룩한 성가 대신 한가로이 휴일을 즐기는 시민들의 백색 소음으로 가득하다. 성당 안의 파이프 오르간은 아리스티드 카바예 콜이 만든 것이다. 프랑스 출신의 오르간 제작자 아리스티드 카바예 콜(Aristide Cavaille-Coll, 1811-1899)은 시민 혁명과 더불어 정체되어 있던 오르간 음악의 부흥을 이끈 인물이다.
유럽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벨기에 또한 기독교적인 삶의 방식과 정서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더 이상 신을 찬양하지 않는다. 2020년대, 벨기에 국민 중 일요일 예배 참석자는 5% 미만에 그친다고 한다. 과반수가 넘는 국민이 여전히 기독교인임을 자처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무신론자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가치관이 뚜렷하게 차이나는 대목이다.
비단 벨기에뿐 아니라 유럽 최대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의 경우 20대 무신론자 비율이 64% 에 이른다. 영국과 스웨덴은 70%에 육박한다. 유럽인들이 더 이상 기독교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로 대중문화의 발달, 전통 가족관의 해체, 과학 기술의 진보, 종교에 대한 회외감 등을 꼽는다. 유럽 사회의 탈 종교화 현상은 점점 가속화되어가고 있으며 기독교는 결국 문화와 관습으로 남을 것으로 내다 본다. 오랜 세월 유럽 사회를 하나의 구심점으로 이끌어온 기독교가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 이를테면 신라와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의 문화화가 한국 사회 전반에 이루어졌듯 유럽의 기독교 또한 종교가 아닌 문화로 잔존할 것이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우리는 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을 관람하고 3D 프린터로 출력한 불상 기념품을 기꺼이 구매해 집안을 장식한다. 일련의 행위에는 어떤 종교적 의미도 없다. 문화로 역사와 종교를 향유하는 것이다.
유럽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겐트의 니콜라스 대성당은 구시대의 유물만은 아니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시민들과 호흡하며 불확실한 내일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는 오래된 미래에 가까웠다. 훗날, 니콜라스 대성당을 다시 찾았을 때 무엇이 눈길을 끌고 있을까? 파이프 오르간을 본뜬 모양의 오르골? 오르간 소리가 실제로 나는 미니어처? 만약 미니어처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그럴듯하다면 나는 주머니를 만지작 거릴 것만 같다.
일요일마다 대성당 부근의 광장에 나와 비눗방울을 날리던 아저씨는 훗날에도 여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