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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Sep 10. 2023

완벽한 신이 되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인간, 의사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그래서 의사는 완벽해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의사들이 그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유는 모순되게도 완전무결한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의사 자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의사인 나도 할 수 있는 인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함이, 또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실수가 내가 맡은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더 잘 알기에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완벽해지고자 한다.


지난주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2년 전에 수술하시고 항암치료 후 완치되어 경과 관찰하시는 분인데 복부팽만이 심해서 오셨어요. 장폐색이 의심이 되는데 와서 보셔야 할거 같습니다."

응급실로 내려가서 확인해 보니 복부팽만이 심하고 시행한 CT 상에도 좁아진 부위가 보였다. 아마도 수술 후에 생긴 유착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어르신, 장이 좁아진 부분이 보이는데 그 부분에서 장 내용물이 안 내려가니까 장도 붓고 토하고 하신 거 같아요. 일단 장이 손상된 거나한 소견은 없어서 응급수술 하는 거보다는 입원해서 금식하고 장이 저절로 호전될 때까지 기다려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안되면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일반적으로 장폐색이 있는 환자들의 경우 필요한 경우 응급수술을 시행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금식하면서  저절로 호전되기를 기다려보는 보존적 치료를 우선 시행하여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판단은 전적으로 외과의사의 판단으로 결정이 된다. 그렇게 환자 분은 입원했고 며칠간 금식하고 걸으면서 좁아진 부분이 호전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장폐색이 있는 부분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르신, 응급실에서 말씀드린 거처럼 수술을 해야 할 거 같아요. 가급적 수술 안 하고 호전되는지 보려 했는데 잘 안되네요."

그렇게 수술을 시행했고 수술장에서 확인해 보니 유착으로 장이 좁아진 부분이 있어 소장 절제를 시행하고 수술을 종료하였다.


 우선 장폐색환자들이 병원에 오시기 되면 가장 먼저 활력징후를 측정하고 언제부터 복통이 있었는지, 가스는 평상시 잘 나오기는 했는지, 이전에는 이런 증상이 있었던 적이 있는지, 수술력이 있는지, 통증의 양상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여쭤보게 된다. 그리고 기본적인 영상검사를 시행하게 되고 필요시 CT를 시행한다.  활력징후가 정상이고 영상검사 상에서도 장 손상이나 장 천공 등 응급수술을 시행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하면 먼저 금식하고 호전되기까지 기다려보는 보존적 치료를 우선 시행할 수 있다. 물론 치료를 위한 판단을 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영상검사에서는 별다른 증거가 없기는 하지만 활력징후나 신체 검진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그 반대도의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영상검사에서는 장 손상 의심소견이 보이나 활력징후나 신체검진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진료를 보는 의사의 경험에 따라 보존적 치료를 우선 시행하여 볼 수도 있고 응급수술을 결정할 수도 있다. 반드시 보존적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원칙은 아니지만 응급수술을 결정하는 것은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부담일 수 있다. 가급적이면 수술을 하더라도 응급수술보다는 가능하다면 준비를 해서 정규수술로 진행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판단이 다행히 응급수술을 시행할 적절한 타이밍이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을 알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그럼 그런 타이밍을 맞추지 못할 바에는  보존적 치료 시행보다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기준은 반드시 환자에게 어느 결정이 환자에게 더 이득이 될 것인가를 따져 물어야 한다.  보존적 치료를 결정하면 병동에 입원해서도 의료진은 환자의 활력징후나 신체 징후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한다. 왜냐하면 응급수술할 상황이 언제든 생길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최근에 장폐색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가 수술을 시행하지 않고 보존적 치료를 결정해서 경과를 보다 결국 응급수술을 해서 장을 절제했으나 수술을 하게 된 환자가 제기한 소송으로 금고형을 선고받는 일이 있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기사를 읽고 든 생각은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이었다. 이 소식을 신문 기사에서 접하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폐색 환자는 외과에서 흔하디 흔한 환자 중에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환자를 처치하는 것이 일정 부분 잘 정리되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에서 정리한 것처럼 순차적으로 장폐색 치료 진행을 했는데  보존적 치료의 결과가 응급수술로 이어졌고 합병증이 생겼다는 이유로 의사의 판단이 문제가 있으니 사법적 판단으로 징역형을 내렸다는 것이다.  물론 재판과정에서 그런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알 수는 없지만 외과의사가 일반적으로 판단을 내려도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할 수 있고 심지어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는 신호를 외과의사들에게 준 것이다. 의사에게 이런 사법적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신호를 주면 진료에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 방어 진료라고 하는 것은 의사는 본인에게 불이익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검사를 시행할 수도 있고 앞서 이야기했던 의학적 판단의 기준이 환자의 이득이 아니라 의사 본인의 불이익이 생기지 않는 방향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에게도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명백히 잘못된 의학적 판단까지도 면죄부를 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학적인 판단에 대한 사법적 결정을 할 때는 신중함에 신중함을 기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바람이 있다. 이런 판결의 결과로 앞으로 외과를 전공하려 했던 수련의들은 본인에게도 언제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러면 외과 지원하겠다는 전공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단순히 외과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재 필수 진료과를 지원하려는 모든 수련의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본인에도 언제나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의 치료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하지만 의사는 완벽한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이다. 실수를 하기도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인간말이다. 하지만  그 실수를 고치며 더 나아지고자 하는 것도 인간으로서 의사이다. 의사는 완벽해지고 노력하고 단련한다. 그래야 나의 의학적 판단이 환자에게 더 이득이 될 수 있는 판단과 치료를 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수술받은 적 있는 장폐색이 있는 환자란다. 이제 내려가서 환자를 봐야 한다. 과연 이 환자에게는 어떤 치료를 해야 할까? 응급수술? 보존적 치료? 어떤 치료가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될는지... 어쨌든 환자를 보고 나의 의학적 판단에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완벽한 신이 되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인간, 나는 외과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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