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은 환자에게 맞는 적절한 시점을 잘 찾아서 해야 한다. 그 시점을 결정하는 것, 그것이 수술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그래서 외과의사로서 수술을 결정할 때 신중할 수밖에 없고 상황에 따라서는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다.
'이 수술을 과연 이 환자에게 지금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기다린다면 얼마의 시간을 기다려 볼까? 환자의 상태가 수술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결정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많은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연세가 지긋하신 환자 분이 대장암으로 인한 장폐색으로 급하게 암을 절제하고 장루를 만드는 수술을 하셨다. 환자분의 전신상태가 좋지 않아 항암치료는 하지 않기로 하고 주기적으로 검사하면서 경과 관찰 하였다. 다행히 재발 없이 잘 지내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절개 탈장이 생겼고 이어서 장루 주위 탈장이 같이 동반되었다. 절개탈장이나 장루 주위 탈장이 점점 커지면서 어르신이 불편해하셨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전신마취 후 교정 수술을 시행하여야 한다. 하지만 환자분은 외래로 내원하실 때 항상 거동이 불편하신 상태로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로 들어오셨고 항상 숨을 가빠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수술을 주저했고 망설였다.
"어르신 불편하신 건 알지만 지금 상태에서 수술하고 나면 수술 후에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이 걱정이 되네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볼게요."
수술은 환자가 수술 후 잃는 것보다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때 고려해야 한다고 배웠고 나 역시도 그런 기준에 맞추어 결정을 하고 있다. 그래서 외래에 오실 때마다 매번 같은 말씀을 드렸었다. 그렇게 시간 흘렀고 뜻하지 않게 폐전이가 발생을 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치료 방향에 대해서 상의하였고 항암은 완강히 거부하셨다. 다행히 폐의 한 부분에만 생겨 수술이 가능한 상태였다.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흉부외과에 입원하셨고 수술 전날 연락이 왔다. 폐절제 수술을 시행하면서 탈장 교정도 같이 하면 안 되겠냐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의 생각은 폐 절제술만으로도 충분히 큰 수술이고 탈장 교정을 위해 수술을 한다는 것은 수술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와 더불어 수술 부위가 두 군데가 됨에 따라 통증도 더 커지고 그에 따라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성이 더 커진다라고 판단했다. 내 생각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하였다. 환자와 보호자는 어차피 전신마취 후에 같이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셨겠지만 위험부담이 큰 수술이 될 수 있었다. 주저하고 망설였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환자 분은 폐절제 수술은 잘 끝났다. 수술 후에도 잘 회복하셨고 별문제 없이 퇴원하셨다. 퇴원하시기 전에 회진을 갔을 때에도 환자 분은 탈장 수술을 못한 것에 대해 약간의 미련을 내 비치셨다. 생각보다 너무 잘 회복하셔서 동시에 수술을 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하였지만 이내 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고쳐 생각하였다.
환자 분은 암 재발 없으나 탈장은 여전히 불편해하시면 외래로 내원하셨다. 그러다 어느 날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환자 분이 배가 아프다고 내원하셨고 CT를 찍었는데 탈장 부위로 소장이 좁아진 부분이 보인다고 했다. 입원하여 우선은 금식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2주가 지나도록 장마비가 풀릴 기미가 없었다. 남은 방법은 결국 수술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어르신, 장마비가 풀리지 않아서 이제는 수술을 해야 할 거 같아요. 어차피 개복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번에 탈장 수술도 다 같이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환자와 보호자는 그 방법 밖에 없다면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진행하겠다고 하셨다. 차근히 수술 준비를 해서 진행했다. 수술장에서 살펴보니 탈장이 있는 부위로 소장이 유착이 발생하였고 그 부분으로 소장이 좁아져 있었다. 소장을 절제하고 탈장이 있는 부분을 해결하고 수술을 종료하였다. 역시나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환자 분은 잘 회복하셨고 수술 후 2주 정도만에 합병증 없이 퇴원하셨다. 퇴원하고 내원한 첫 외래에서 환자 분이 한 마디 하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수술할걸 그랬어요. 수술이 잘 돼서 배도 더 안 튀어나고 다 좋아요."
"입원 기간이 길어져서 많이 힘드셨죠. 걱정 많이 했는데 정말 다행으로 잘 회복하셨어요."
나의 주저함과 망설임이 환자 분을 더 힘들게 했던 건 아니었는지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수술을 고려했었다면 하는 후회도 약간 들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과의사에게도 가정은 없다. 이미 지난 일이고 환자에게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말이다.
환자를 진료하는 순간순간 생각하고 내가 가진 경험치를 보태어 판단하고 결정한다. 결정을 한 이유도 명확해야 한다.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럴 거 같아서 내리는 결정은 없다. 그 판단과 결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그 판단과 결정이 항상 옳지 않을 수도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판단과 결정으로 인해 환자에게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면 다행이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에 찾아오는 미안함과 죄송함은 나에게 큰 중압감을 안겨준다.
외과의사에게 주저함과 망설임은 간혹 자신 없음으로 비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중요한 것은 주저함과 망설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확한 근거가 있느냐는 점이다. 그런 근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신중함이 중요한 것이다. 주저함과 망설임이 있어 더 신중할 수 있고 환자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주저함과 망설임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그런 신중함이 환자에게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