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죽지않는돌고래 Jul 26. 2021

사이코패스의 어머니와 어린이집 원장의 관록

새벽의육아잡담록:피는 같지만 심장은 다르다

1.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이다. 좀 더 정밀히 하면 내면의 어둠에 대해서 그렇다. 안타깝게도 나는 평생을 나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정말이지 볼 꼴, 못 볼 꼴 다 봤습니다).  


무튼, 대부분의 인간이 자신의 어둠을 잘 안다는 말은 스스로의 내밀한 짜침에 정통하다는 뜻으로 자식이 짜치는 행동 발현 시, 아아앗, 흐음칫,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나 닮았나…?’


<국민 대통합을 위한 짤막상식: “짜치다”는 말은 저희 지방에서 주로 쓰는 사투리로(저, 부산 쏴나이), 행동이나 생각, 결과물이 모자랄 때 주로 쓰입니다. 허나 모자라거나 떨어진다는 평가 혹은 행위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지요. 즉, “내밀한 짜침”이란 표현을 스스로에게 적용할 경우, “내밀한 열등감”에 좀 더 영혼을 실어 넣은 “열등감+자괴감”의 느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예) 내가 얼굴은 직이는데 공부가 쪼메 짜친다 아이가(내가 얼굴은 잘생겼다고 자부하는데 공부는 좀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후우우우우.)> 


2.

하루의 어린이집에선 상반기, 하반기 한 번씩 담임 선생님과 길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 아이 없이, 한두 시간 커피를 마시며 수다 떠는 시간이다. 이때 이따금 "놀이터"도 나온다(놀이터는 원장의 닉네임입니다. 놀이터가 뭐야... 유치하게... 아, "돌고래"인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가). 당시 나와 아내가 고민했던 문제 중 하나는 하루가 “혼자만 놀려고 한다”는 게다. 물론, 만 3세(그러니까 태어나서 3년 이상), 만 4세 초기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협력성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협력은 고도로 사회화된 종일 수록 더 잘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장점이지요. 몇 안 되는...) 함께 놀이를 한다는 개념이 약하다. 문제는 하루가 유독, 무지막지하게 그렇다는 것이며 이 글을 쓰는 현재인 지금도(태어난 지 3년 4개월 차) 그렇다는 게다. 


어린이집에 한 명씩 존재하는, 딱히 어울릴 생각도 없고 어울리더라도 어른하고만 주구장창 놀려는 아이, 즉, 어린이집에 가면 샘을 지치게 할 것만 같아 미움받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과 동시에 친구들에게 소외될 것이라 예상되는 게 내 자식, 하루의 모습이다.   


3.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외향적인 인간을 연기하는 내향적인 인간이다. 동의하진 않는다. 다만 나를 동료 혹은 편집자로 접했던 악질, 아, 아니, 기자 및 필진 다수가 오랜 기간 내게 엿을 먹이며, 아, 아니, 나와 연을 맺으며 내린 평이기에 걍 받아들인다. 


'몇 년 보고 인싸인 줄 알았는데 10년 보니 아싸로군!'


, 같은 느낌 되겠다. 인싸를 연기하는 아싸라니… 넨장, 최악이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좋지만 절대시간의 한계치가 명확하며, 4명 이상 모이면 면역력이 저하되고 신체에 중금속이 초당 400g씩 축적되는 느낌이 드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종류이지 않을까 한다. 


문제는 하루가 나의 이런 내밀한 짜침을 적극 발현, 무한 반복하고 있다는 게다. 사람이 4명 이상 모이면 표정이 얼고, 표정이 얼면 마음이 언다. 1초라도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태어난 지 6개월 차부터 20개월 차까지 다닌 문화센터에서도 마지막까지 적응하지 못한 아이다(1/3은 가기 싫어했고, 1/3은 아파서 못 갔으며, 1/3은 프로그램 따위 무시, 구석으로 엄마를 끌고 가 따로 놀았습니다. 그런데 왜 가느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거슨 육아를 안 해본 이들의 말씀! 집에서 24시간 애랑 붙어있어 봐…).  


당시 문화센터에서 하루의 기본자세. 내 자식이지만 정말 비협력적, 비사회적이다...  

이쯤 되면, 내 안의 내가 말을 건다.  


'너네 아들, 너처럼, 아, 아니, 왕따 될 수도…!' 


4.

이런 걱정은 나에게, 당시 담임인 동백과 원장인 놀이터에게 내밀한 짜침을 실토하게 만든다. 내가 그랬고 그런 인간임을. 실제로 평생 인간관계가 좁고 얕음을(좁으면 깊을 것 같다는 건 오산입니다). 어라, 근데 이런 내면의 짜침 고백 이후, 놀이터가 의외의 말을 했다. 요약하면,


‘… 뭔 개솔? 하루는 다른 사람인데?’  


…!


5.

흔히 부모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위에서 내가 저지른 생각이다. 내 경험과 삶에 빗대어 각을 재고 앉았다. 내가 키웠고, 내가 많이 봤고, 무엇보다 내 유전자를 받았으니 그럴 거라는 착각이다. 특히 짜치는 부분에 관해선 더욱 그렇다.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내 자식이 나처럼 머리가 나쁘거나 변태면 어쩌지…?’ 하고 홀로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실수를 좀 더 유식하게 풀어보자. 학계에서 가장 오래된 맞짱 중 하나는 본성 vs양육, 즉, 타고나는가, 학습하는가, 이다. 현재 이 주제는 ‘이분법으로 어느 쪽이 크다고 쉬이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무엇보다 쌍방향성이 강하다’는 쪽으로 대략 정리되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대 교수이자 신경과학자인 제임스 팰런은 살인자들의 뇌를 연구했는데, 이들은 MAOA라는 유전자의 활성도가 정상분포를 벗어난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돌연변이가 된 MAOA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모두 살인자가 되는 건 아니다. 이론적으로 이 유전자가 나쁜 쪽으로 발현되기 위해선, 사춘기 전에 굉장히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야 한다. 심한 폭력을 목격하거나 입체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 등의 일 말이다. 해서 이 학자는 세계의 수많은 전쟁터나 분쟁 지역에서 자라난 소년, 소녀들이 세대를 거쳐갈수록, 그런 유전자는 집중되고(그런 엄청난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여자들은 당연히 엄청나게 터프한 남자를 선택하겠지요) 우리는 엄청난 화약고를 안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그러니 평화가 짱! 당신은 당장 "평화 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를 주문해야 합니다). 


이런 강연을 하고 다니던 중, 제임스 팰런의 어머니가 말한다. 


‘요즘 네가 사이코패스 살인자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들었다. 네가 평범한 가정에서 왔다는 듯이 얘기한다더구나?’


제임스 팰런 교수와 집안의 비밀을 말해준 그의 어머니

으응? 제임스 팰런은 그제야 알게 된다. 부계 혈통의 자기 집안에 살인범들이 줄줄이 있고 자기 뇌를 스캔해봤더니 극도로 공감능력이 결여된, 즉, 사이코패스의 뇌라는 사실을 말이다. 본성이나 유전자의 힘만이 인간을 압도한다면 그는 사이코패스 살인자가 되었겠지만 앞서 말했듯, 그는 캘리포니아 교수이자 신경과학자이다. 


그의 저서 첫 장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나의 어두운 본성을 오래전에 깨달았음에도 나를 잘 자라도록 보살펴준 나의 부모, 제니 헨리와 존 헨리에게”


즉, 본성과 양육, 어느 쪽이 압도하는 일은 없다. 


6. 

좀 더 들어가 보자. 인간이 평생 동안 인식한 것과 그에 대한 인식체계가 결국 나 자신이다. 이 인식체계는 성인이 되면 워낙 단단해서 확증편향을 불러일으키기 일쑤인데 나는 그런 내 인식의 확증편향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 세상 안에는 당연히 나의 아이도 있고 그렇게 바라보기에 더없이 좋은 대상이기도 하다. 


내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즉, 무언가 더 쌓지 않으면 점점 확증편향으로 쏠리게 되고 이는 세상을 아주 협소한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당연하다. 걍, 가지고 있는 것에 안주하며 살아가니까. 즉, 가지고 있는 생각과 지식에 안주하며 살아가니까.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이런 의미다. 


피지컬로 비유해보자.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지 않으면 그냥 태어난 그대로였다가 점차 약해져 죽는다. 운동을 하면? 보다 나은 피지컬을 가지고 더 혹독한 운동도 할 수 있을 게다. 정신도 마찬가지라, 계속 공부하고 생각을 집어넣으면 우리는 자기 객관화라는 훌륭한 무기를 가지게 되며 이는 나를 확증편향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세상을 좀 더 제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해서 놀이터의 말을 만난 이후, 그 생각을 훔치고 싶어 다시, 물었다. ‘언제부터 아이를 부모와 분리해 다른 사람이란 관점으로 생각했고 그 생각의 계기는 무엇이냐’,라고. 그 생각을 훔쳐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고, 이는 더 나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말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육아 초보 아빠가, 공동육아교사 10년 차인 놀이터의 생각을(여전히 이름은 유치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나름 정밀하게 옮기면 다음과 같다.   


7.

‘저도 질문을 받고 생각해봤는데 그냥 점차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어쩌면 필요에 의해 생각을 발전시켜왔을 수도 있구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일하면 아이의 부모와 많은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갖게 되는데 부모와 아이가 딱 붙어 있으면(동일시하는 경향이 깊을수록) 아이의 이야기를 편하게 하기가 불편하더라구요. 


아이가 갖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면 마치 부모 자신에게 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필요 이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분들이 있었죠. 저는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싸워봅시다!’하는 사람은 아니고 게다가 나의 아이도 아닌 입장에서 ‘아, 그렇군요. 당신이 불편하지 않다면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하고 좀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 대화 전에 밑밥을 깔아놓고 상대의 동태를 살피게 됩니다. 돌고래와 이야기할 때도 그런 전략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구요. 


게다가 교사에게 ‘당신은 잘 몰라서 그래요. 그 아이는 나랑 똑 닮아서 그건 그렇고 저건 저렇습니다. 제가 잘 알아요.’라고 하면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가 할 이야기 별로 없겠네요.’가 됩니다.  


그럼 그 부모는 정말 자기의 아이를 잘 아는 걸까, 살펴보면 그닥, 잘 아는 것 같지는 않아요. 부모가 잘 아는 그 아이와 교사가 만나는 아이는 다른 아이인데, 교사가 만나는 아이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좀 시시하지만 어쩔 수 없죠. 


좀 아쉽기는 해요. 내가 만난 아이의 이런 반짝이는 부분을 부모도 같이 알아차리면 좋겠는데, 이미 부모는 다 아는 사람이니까 별로 관심 없어 보이네. 제대로 보려면 궁금해야 하고, 다 아는 건(혹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궁금하지 않잖아요.  


게다가 아이 입장에서도 ‘부모와 같은 나’로 읽히는 건 그닥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있죠. 어쩌면 화를 낼 수도 있구요. ‘내가 당신을 닮았다고? 흥!’ 하고.’ 


8.

놀이터의 말을 만난 이후에도 하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혼자 놀기 좋아하고 사람이 4명 이상 있으면 눈에 띄게 싫어하며, 마음에 드는 어른 한 명과만 시간을 보내려 한다. 다만 부모가 옆에 있지 않을 때의 하루는 내 걱정만큼 소심하고 외톨이가 아니며, 새로운 장소에서 남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뿐, 평균 2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활발하게 뛰어노는 동시에 친구들과 장난을 잘 치며 웃음이 가득한 아이라는 면도 있다는 사실을, 어린이집 선생님의 증언을 통해 안다. 물론, 보다 중요한 건 바뀐 나의 생각이다.  


나는, 나와는 다른 유전자를 반절이나 가지고, 그 반절 덕분에 어느 쪽도 아닌 새로운 조합의 유전자를 가진 다른 인간을, 다른 시대, 다른 환경,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커갈 예정이 100%인 상황에서 만나고 있다. 최소, 태생부터 다르다. 즉, 다른 사람인 게다. 하필 자식으로 태어난 기분 탓에 다른 사람이 아닌 줄 착각한 게다. 이런 다른 사람을, 나와 유사한 사람이라는 암묵적 전제 하에 바라보고 걱정했던 게다. 내가 그랬으니 너도 그렇겠지. 내 자식이니 내가 알지. 100% 경험한 유년시절이라곤, 100% 경험한 삶이라곤, 79억 명 중, 나 하나뿐인데. 


넨장, 걱정의 실체가 사랑이 아니라 오만이었을 줄이야. 


내 아이는 내가 아니다. 


피에 오만하지 말자. 


피는 같지만 심장은 다르다. 


피는 같지만 심장은 다른 아이의 현재


참고

-어린이집 원장 놀이터와의 인터뷰(아무리 생각해도 닉네임은 유치…) 

-심리학도이자 내가 자문이라 더 훌륭한 만화, 닥터 프로스트 작가 이종범과의 잡담

-성격은 엉망진창이지만 나랑 합은 잘 맞는 아내와의 대화   

-제임스 팰런,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김미선 역, 더퀘스트, 2020, 원제 : The Psychopath Inside (2013년)

-제임스 팰런 TED 강연, Exploring the mind of a killer, 2009


방해 

-잘 시간인데 계속 책 읽어달라는 하루(니가 책을 언제 그렇게 좋아했다고)

-책상 위에 있는 너저분하게 던져져 있는 책들 정리해주었더니 양심 어디 갔냐고 되묻는 적반하장 아내  

-마침 이거 쓰는 중에 고장 나서 철제 자로 넣어서 힘껏 돌리니 이상한 소리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이후에 분해해봤다가 버림)

작가의 이전글 아이와 함께 6시간 정도 버스를 타면서 느끼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