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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Nov 22. 2023

검도와 나

지질한 위로와 지질한 나

대련 연습을 시작하면서 ‘물러서지 않기’, ‘상대가 공격하면 나도 하기’ 두 가지 수칙을 기억해야 했는데, 사실 나는 이미 여러 번 물러섰다. 호구 착용이 자율이라면 입지 않기, 힘들어서 쉬어도 된다면 (그만큼 힘들지 않음에도) 그만하기. 상대와 마주하면서 점점 작아지는 내 형체가 사라지지 않도록 멈춰야 했다. 정확히는 그런 상황을 피해야 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한 발 뒤에 머물렀던 시간을 통해 얼마간의 위안을 얻었다. 나 혼자 헤매는 게 아니라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위로로 내 마음을 달래는 한편, 지칠 법도 한데 끈기 있게 도전하는 이들을 보고 감명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물러선 다음에야 “그래, 어차피 초보인데 못하는 게 당연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한껏 쪼그라든 나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매순간 지질한 나를 인정하는 게 검도 수련이라면 받아들여야지. 휴.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 한 3주는 걸린 것 같다. 그리고 이 마음은 그리 무겁지 않아서 어느 순간 손바닥 뒤집듯, 금세 변할 수도 있다. 몇 주간의 고민 끝에 우선 호구는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승급심사와 반성

이번 심사 내용은 빠른머리 nnn회. 심사 내용이 고지됐을 때부터 벼락치기에 돌입했다. 연습을 할수록 일정한 속도와 올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운동을 마친 뒤에 하는 빠른머리는 20회만 해도 힘들었다. 설상가상 죽도 쥐는 힘을 바르게 쓰지 못해 손가락 염증이 재발한 터라, 심사를 잘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다만 '어차피 1번만 성공하면 되니까'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부상 방지 차원에서 손가락 테이핑을 하면서 의지를 다졌다. 다행히 목표 횟수는 달성했지만 그리 개운하진 않았다. 연습이라면 몰라도 심사 때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숫자를 놓치지 않고 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최선을 다하지 않은 기분이라 뒷맛이 썼다. 꾀 부리지 말고 잘허자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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