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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Apr 04. 2019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리뷰

그냥 랩음악이 하고 싶었다는 청년의 나비효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1992




출처 : 한국뉴스투데이

 

 <특종 TV연예>에 그들이 등장해 '난 알아요'를 선보이던 1992년 4월 11일, 그 날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뀐 날이 되었다. 다음 날, 전국의 10대들은 모두 그들에 대한 이야기로 정신이 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에는 기존 가요계에 알려진 댄스, 랩 음악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움과 멋이 있었다.


 기존 한국 가요계의 주류는 트로트와 발라드였다. 물론 기존에도 댄스 음악은 분명히 존재했다. 박남정, 김완선, 나미와 같은 멋진 가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기존 성인가요 공식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다. 이 때문에 당시 대중음악의 주요 수요층은 30-40대에 편중되어 있었다. 기존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고, 쉽게 질렸던 10-20대들은 한국 대중가요에서 찾지 못하는 신선함을, Michael Jackson의 전 세계적 성공 덕분에 들어오기 시작한 영미권의 팝 음악으로 달랬다. 보이 그룹 New Kids On The Block이 10대들의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으며 내한까지 오던 때였다. 이미 국내 가요계는 서구의 대중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완전히 된 상태였다.


 기존의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서양의 음악 장르를 끌고 와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부르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문화적 욕구불만 상태에 놓였던 10-20대를 제대로 폭발시켰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은 힙합, 뉴잭스윙, 테크노, 발라드와 같은 여러 가지 장르를 뒤섞고, 랩 파트를 주류로 얹어 놓았다. 덕분에 1집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디스코그래피 전체를 통틀어 보았을 때 가장 다양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장르적으로 편중이 심했던 당시 대중 음악계에 갑자기 툭 떨어진 1집의 파장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강렬했다. 대중 뿐만 아니라, 음악업계 종사자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시 랩이라는 장르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홍서범이 '김삿갓'으로 랩 음악을 처음 선보이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랩의 겉껍데기에 가까웠고, 대중도 그저 홍서범이 또 특이한 거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신해철이나 김완선처럼 나름 새롭고 신선한 시도가 잦은 뮤지션들도 랩의 영역에 도전했지만, 본격적인 수준까지 올리진 못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랩 음악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출처 : 서태지 아카이브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의 강점은 랩을 주류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그치지 않는다. 강렬한 리듬 파트가 두드러지던 당시 힙합 트렌드와는 달리, 다양한 장르 속에 랩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는 점은 이 앨범을 더욱 신선하게 만들었다. 또한 <특종 TV연예> 출연 당시 가장 유명한 혹평이었던 하광훈 평론가의 '멜로디 라인이 조금 약한 것 같다'는 말과는 달리, 훅 파트의 멜로디가 인상적인 트랙들이 많다. 재지한 브라스 사운드가 인상적인 발라드 '너와 함께한 시간속에서', 아련한 분위기의 뉴잭스윙 트랙 '이밤이 깊어가지만', 강렬한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귀에 쉽게 꽂히는 훅이 인상적인 '내 모든것' 등은 서태지라는 아티스트의 다양한 음악적 색채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반도를 발칵 뒤집어놓은 희대의 명곡이자 1집 타이틀곡 '난 알아요'를 둘러싼 표절 의혹은 다소 아쉽고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 앨범의 어두운 이면이다. 전문가들은 Milli Vanilli의 'Girl You Know It's True'와 '난 알아요' 간의 유사성을 주장했고, 이 의견을 접한 많은 사람이 두 곡의 비슷한 면을 부정하지 않았다. 서태지가 확실하게 입을 열지 않은 지금까지도 이는 그저 의혹으로 남아있지만, 현재 음악평론계에선 '서태지가 일부러 베낀 건 아닐지라도, 여러 정황상 Milli Vanilli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은 분명함'을 정설로 두고 있다.


 하지만 트로트와 발라드만이 주류이던 국내 음악 시장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은 물론이고, 현재 K-POP으로 불리는 국내 아이돌 붐의 시작점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1집은 음악계에도, 방송계에도, 그리고 한국 문화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센세이션했다는 것은 변함없고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자 역사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들의 문화적 충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 1집은 그야말로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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