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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Aug 17. 2019

위아더나잇 2집 [아, 이 어지러움] 리뷰

'어지러움'으로 묶인 개인 인생 속 보편적 감정


위아더나잇 2집 [아, 이 어지러움]

2019


★★★★



이 앨범을 들어보려 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보컬 함병선의 글이었다. 가사가 써지지 않아 고민스러웠던 그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했던 말, 문자로 주고받은 대화를 훑어봤다. 그 말과 텍스트 안에 함병선 그 자신이 존재했다. 마냥 행복하진 않아도 가끔 즐거운 삶.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의 속도가 두렵고, 꿈과 사랑에 고민하고, 지독하게 외로웠던 지난날들. [아, 이 어지러움]은 그 어지럽고 복잡한 날들을 지나오며 쌓여온 수많은 단상, 지극히 개인적인 인생 속에서 얻어지지만 많은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정서와 생각의 집합체이다.


사운드적으로는 기존의 위아더나잇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나긋하게 힘을 빼고 노래하는 함병선의 진심 어린 목소리, 그리고 따뜻한 느낌을 강화하는 신시사이저를 주된 특징으로 삼아 전체적 틀을 잡았다. 여기에 각 트랙별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첨가, 변형하여 꾸며내 앨범을 더욱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들었다.


첫 트랙 '카메라를 챙겨'는 카메라의 셔터음을 자연스럽게 삽입하며 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내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Bunker'는 정말 벙커 안에 있는 듯 공간감 가득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여기에 오로지 둘 만이 존재하는 소박하고 예쁜 사랑에 대한 가사를 담아내며 벅찬 감정을 극대화한다. 'SF'는 제목 그대로 SF스러운 사운드 구성으로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짧은 러닝타임을 가졌지만, 읊조리는 듯한 보컬, 불안하게 쪼개지는 비트, 정말 단순한 코드, 매연을 들이마신 듯한 헛기침 소리 등을 통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악몽이라도'는 따스한 느낌으로만 흘러갈 줄 알았던 앨범에 약간의 반전과 다양함을 더해주는 트랙이다.


제일 따뜻한 사운드들이 연달아 나타나는 후반부는 이 앨범의 백미다.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로 차분하게 흘러가며 자신의 성장에 관해 이야기하는 듯한 '멀미'는 갑자기 울렁이는 듯한 일렉 사운드의 삽입으로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정서를 내비친다. 많은 것을 경험하며 굳건해진 듯해도 여전히 확신이 없는 어지러운 정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트랙이다. 뽀득뽀득, 눈길을 밟는 소리와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시작을 여는 '눈이 오는 날'은 겨울 눈길을 혼자 걸으며 누구나 느낄만한 정서를 이야기한다.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나도 모르게 미소짓게 되고, 사랑에 대한 감상에 젖게 된다. 마지막 트랙 '운동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아련함에 젖는 곡으로, 풋풋하고 생기 있는 동시에 노스탤지어적인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아, 이 어지러움]은 한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수많은 단상을 모아놓은 일종의 추억 회상이나 일기의 역할을 해낸다.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생겨난 개인의 정서를 담담히 털어놓고, 이를 '어지럽다'라는 하나의 형용사로 묶어낸다. 이 어지러움은 누구나 공유할만한 보편성을 띄고, 이 보편성은 멋진 사운드를 만나 공감의 음악으로 훌륭하게 포장되었다. 위아더나잇의 강점이자 아이덴티티가 이번 정규앨범에서도 여전히, 혹은 강화되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단연코 올해 등장한 신스 / 일렉 앨범 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앨범, [아, 이 어지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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