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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Aug 18. 2019

라이프 앤 타임 2집 [Age] 리뷰

삶을 그린 음악의 극치


라이프 앤 타임 2집 [Age]

2018


★★★★☆



5월 27일, 라이프 앤 타임이 갑작스러운 무기한 휴식을 선언했다. 전국 투어는 전부 취소되었고, 공연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짧고 굵었던 활동은 막을 내렸다. 멤버 개개인의 사정이라는 말만 있었을 뿐, 정확히 무엇 때문에 그들이 자취를 감추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우린 가장 멋지고 독보적인 색깔을 가진 밴드를 예고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이 가장 처음으로 공개한 곡 '타인의 의지로 움직이는 삶'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마지막이 될 줄 아무도 몰랐던 그들의 마지막 정규앨범, [Age]를 해체 뒤에 더욱 곱씹게 되는 것은 단순히 곡들이 좋아서 뿐만 아니라, [Age]라는 앨범의 콘셉트가 가진 의미가 아련함을 부여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1집 [LAND]가 라이프 앤 타임이라는 이름에서 '라이프'를 상징한다면, [Age]는 '타임'이다. 유년, 소년, 청년, 중년, 노년으로 다섯 파트를 나누어 각 세대를 차례대로 그려내는 콘셉트다. 유년기의 설렘을 표현한 '소풍'으로 시작하는 이 앨범은, 삶에 대한 본격적 성찰과 사색이 시작되는 소년기의 '잠수교'와 타인에 대한 이끌림을 주체하지 못하는 '소년소녀'를 지나, 점점 시니컬 해져가는 청년기를 맞이한다. 희망적 멘트를 거짓말로 치부하는 'exiv98'이나 고독감을 냉소적으로 곱씹는 '어두운 방'. 이를 지나면 어느새 중년기가 되어 '정점'에 선다.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는 '연속극'을 지나면 마침내 노년기가 되어 황혼을 바라보는 '지혜'에 도착하면서 삶의 여정이 마무리된다. 그 누구의 인생에 대입해봐도 어울릴 만한 보편적이고 간단명료한 가사가 모이고 모여 한 개인의 인생을 어렵지 않게 그려낸다.


라이프 앤 타임의 독보적인 강점인 '연주의 쾌감'은 여전하다. 얼핏 들으면 즉흥적인 잼 같지만, 기타, 베이스, 드럼, 이 세 세션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면서 아주 정교한 화합을 이루어낸다. 이러한 완벽하고 강박적인 자유로움이 모든 트랙에 녹아 있고, 각각의 트랙이 가진 콘셉트에 어우러지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도 놀랍다. 이 점은 물론 라이프 앤 타임이 항상 해오던 일이다.


[LAND]도 그러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도시의 풍경을 음악화한 'My Loving City', 바람에 산들거리는 푸른 나무들이 연상되는 평온한 듯 펑키한 'Shakin' Trees'. [LAND]와 비교해보았을 때 [Age]가 더욱 놀라운 결과물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무면 나무, 도시면 도시, 꽃이면 꽃, 이렇게 실루엣이 분명한 소재거리 하나를 놓고 그에 맞는 음악을 만든 전작과는 조금 다르게, 음악화하기엔 이미지가 더욱 다양하고 불분명하며, 자칫 상투적으로 빠질 수 있는 시간과 삶을 소재로 다루는데도 이를 여러모로 완벽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소풍'의 중요한 감정은 처음과 설렘이다. 햇볕 따뜻한 날, 친구들과 함께 아장아장 꽃길을 걷는다. 하늘엔 나비가 날아다니고, 기분 좋은 바람이 솔솔 분다. 그 나잇대에 나서는 소풍에서 느낄 무한한 행복감과 편안함, 따뜻함이 있다. 이에 맞게 세션은 적당히 규칙적이면서도 빠른 비트에 상승과 하강의 구조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기타 리프로 설레는 기분을 연출한다. 과하게 신나지도, 그렇다고 처지지도 않는 적절함을 3분 내내 유지하며 감정의 전달에 집중한다.


마지막 트랙 '지혜'는 온전히 마무리에 걸맞은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지난날들을 전체적으로 회고하고, 황혼을 기다리는 남은 시간을 또 다른 시작이라고 여기는 노년의 정서다. 초반엔 빠른 호흡의 연주가 지배한다. 노랫말이 끝나면, 세션의 볼륨이 줄어들며 이완되는 듯하더니, 다시 세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강렬하게 어우러지고 짧은 기타 리프로 끝을 맺는다. 전체적으로 노년의 연륜, 그리고 제목처럼 지혜로움이 연상되는 구성이다. 이는 인생의 마지막 챕터를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보다는 화려한 피날레의 느낌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콘셉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앨범의 마무리 트랙으로서도 훌륭한 폭발력을 자랑한다.


어쩔 땐 락킹하고, 어쩔 땐 재지하기도 한 장르적 모호함은 중요하지 않다. 라이프 앤 타임이라는 밴드가 가진 특징인 '정교하게 계산된 자유로움'은 이러한 모호함을 그저 하나의 '밴드 음악'으로 연결짓는다. 여기에 '시간'이라는 주제를 가진 순차적 스토리텔링이 얹어진 덕분에 [Age]는 이들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유기성과 집중력을 자랑한다. 한국대중음악상이 이 앨범을 최우수 록 앨범으로 선정하며 말한 것처럼, 새로운 스타일도 자연스럽게 라이프 앤 타임의 음악으로 수렴되게끔 이끈 그들의 노련함이 이 앨범 안에 존재한다.


[Age] 발매 인터뷰에서 라이프 앤 타임의 세 멤버는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무기한 활동 중단 선언 뒤에 그 인터뷰를 보고, 다시 앨범을 들으며 모든 가사를 하나하나 곱씹을 때마다 쌉싸름한 무언가가 몸 안에 번지는 느낌이다. 이 앨범을 발매했을 땐 그들조차 알지 못했을 활동 중단이라는 미래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삶에 정점에 놓인 상태라고 생각할까.


끝이 보이지 않는 고민, 상념, 사색과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 아, 역시 삶이란 건 참 어렵다. 이 깊은 수렁에 빠질 때마다 [Age]는 꽤 괜찮은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추상적인 가사, 그리고 강렬한 연주 안에 나의 삶을 대입하고 반추한다. 어쩌면 라이프 앤 타임 본인들도 이 앨범 안에 자신들의 삶을 끊임없이 비추어보고 있을지도. 그만큼 이 앨범은 깊고, 보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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