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진 않지만 그럭저럭 만족하는 나에 대한 주저리
약 12년전 언니를 처음봤을때를 기억한다.
언니는 동아리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고 전해지던 존재였고, 어느날 우리 앞에 처음 나타났을땐 유럽과 중남미 아프리카 여행을 막 다녀왔으며 곧 다시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다음번에 언니를 만났을 땐 당시 한국서도 막 붐이일기 시작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인플루언서가 되어있었다.
어린나이에 홀로 여러 대륙을 여행하고 보란듯 좋은 직장에 취업했으나 커리어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직후 해외에서 공부를 시작, 글로벌 기업에 취업 후 해외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 지금도 글과 각종 모임을 통해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 그게 언니였다.
Lockdown 19일째로 무료함의 끝장을 보고있는 나날. 인도와 한국 외에 다른나라의 삶은 어떨까 궁금해서 언니와 전화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 이제 Lockdown 풀리면 남편이랑 같이 바로 한국 들어가려고."
응...???????? 왜......?!!!!!!!!!
언니말로는 10여년 해외에서 살아보니 이제 어디를 가도 거기가 거기인것같고 사람사는데는 사실 어디나 비슷하며, 그 맥락에서 볼때 내 가족, 내 사람들과 지낼수 있고 자국민 보호가 되는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것이다.
뭐랄까. 그냥 충격적이였다. 많은이들에게 해외취업과 도전정신의 뽐뿌를 넣어준 사람이였을텐데... 이제 내 고향이 최고라니!! 마치 20키로 감량 성공후 다이어트프로그램을 통해 화제의 스타가 되었지만, 몇년후 다이어트는 건강에 안좋다며 복세편살이 최고라 말하는 연예인을 보는듯한 그런 느낌이였다(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 얘기를 듣고 어찌나 놀랐던지, 언니와 전화를 끊고 다른 친구와 전화를 해서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부끄럽게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엉엉 울고 말았다. 그리고 약 3일간을 충격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런 난데없는 과민반응의 이유는 무엇일까... 책상앞에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았다.
1. 난 아직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지 못했다. '이사람이다'라는 인상을 줬던사람을 만난지도 오래, 앞으로 만날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2. 이런 회의감때문에 앞으로도 반려자 또는 친구에 의지하지 않는 삶을 지향할 것이다.
3. 앞으로 삶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없다. 누구말로는 결혼은 인생 2막이라던데, 결혼을 안한다는 전제하에 인생 2막이 언제올지도 모른다.
4. 하물며 향후 한국에 돌아가게 되거나 또는 다시 해외생활을 하게되었을 때(이마저도 확실치 않다) 뭘할지 뚜렷하지 않다.
5. 나는 계획을 세울 계획도 없다. 하물며 어떠한 다짐도 하지 않을것이라고 다짐할 수 있다.
나는 어떻게든 되도록 휘둘리며 살아온 삶이였다. 소위 말하는 남들 다 수능공부하니까 같이 공부해서 대학들어가고, 남들 다 취업준비하니까 덩달아 준비해서 취업했고, 회사에선 남들처럼 열심히 일했다. 지금까지의 삶을 성공했다 정의할순 없지만, 딱히 실패하지도 않았다. 다만 나에겐 두가지 불안함이 있었다. 남들이 살아온 루트대로라면 이미 결혼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남들의 기준으로라면 이미 늦었다. 게다가 아직 짝도 없으며, 앞으로 어떻게 만날지에 대한 계획이나 보장도 없다. 또 한가지는 커리어에 대한 계획이 없다. 당장 커리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공부를 더 한다거나, 임원이 될 생각도 없다. 정년까지 최대한 버텨보다가 내 목표이다.
사실은 이렇다. 지금은 Lockdown이라는 재난상황으로 인해 어쩌다보니 집안에만 갇혀 따분하게 느껴질정도의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는 셈이였다. 하지만 조만간 다시 벌어먹고 살기위한 전장으로 뛰어들어 싸워야 한다는걸. 존버와 노예근성으로 일하면서 경력관리다 뭐다 눈코뜰새없이 바쁠거라는걸. 남자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언제할건지 도움도 안되는 관심걱정에 적당히 대꾸하며 사랑찾아 고군분투하고, 솔로일때는 고독에 몸부림치며 장범준 노래나 들으면서 한때 아름다웠던 옛사랑을 추억하며 견뎌내는 시간이 돌아올거라는 씁쓸한현실을 잘 알고있었다. 이런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을 재난위기상황속에 감추어 봉인해놓고 있다가 인생 2,3막을 향해 새출발하려는 누군가가 본의아니게 '콕'하고 찌르니,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나와버린 것이다. 시한부 같은 평화가 끝나버린것 같은 기분이들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언니는 21살에 홀로 전세계를 여행했으며 다시 가겠고 선언했고, 2년쯤 후엔 인플루언서가 되었으며, 얼마후엔 외국인 남자친구를 보여줬고, 몇년 후 학점이 바닥이라는 본인의 변과는 다르게 초엘리트들만 간다는 곳에 입사했으며, 이듬해 갑자기 퇴사를 선언하고 그 다음해엔 해외에 공부하러 갔으며, 몇년후 소문만 무성한 모 나라에서 갑작스런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고, 얼마후 해외에 사는 친구들을 한국에 대동하여 결혼을 했다. 그 역사를 돌이켜보니, 사실 언니의 충격발언은 내가 언니를 알게된 다음부터 끊임없이 지속되어왔던 것이다. 이번 발언은 인생 2,3막장 수준이 아니라 10막장이 될수도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언니가 내일 당장 전화를 걸어와 요트를 한채 샀다고 말한대도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다(이미 샀을지도 모른다). 혹은 내후년쯤에 한국에서 부대를 이끌로 다시 이역땅으로 전격해나간대도 너무나 그녀같을 것이다.
반면 나는 어떤가. 앞서 말한대로 나는 그저 그렇게 살아왔다. 대학입학서를 받았을때도 "역시나", 대학생때 이것저것 프로젝트를 할때도 "역시나", 취업했을때도 "역시나". 그냥 예상되는답변에서 살아온 인생이였다. 조금 의외인 부분이 있다면 갑툭튀로 인도행을 하게된 것인데, 이조차도 해외근무경험이라는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에서 약간 다른 방향으로 삐져나왔 뿐이다. 나는 위대한 도전에는 항상 따르기 마련이라는 위험부담을 질만한 용기도 없고, 용기와 위험이 주는 피로를 감당하고 싶지 않다. No risk, No return이라지만 애초부터 굉장히 눈에띄는 부와 명예같은 수확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큰 기대도 계획도 없는 인생 2막장, 또는 그 이후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게 어떤 모습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거나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아주 조금 다른앵글로 전진한 이 걸음이, 점진적으로 나를 아주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역시나"처럼 소리소문없이 새로운 막장에 접어들어 있을 것이다. 혹은 나중에 돌이켜본다면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사실 어떠한 변곡점에 이르게 한 또 다른 막장이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지난 3일간은 나만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였던 것 정도로 정리하기로 했다.
정말 웃긴 사실 하나.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어렴풋이 언니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거같다는 얘기를 1-2년전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저 "남의 일"로 넘겼던것같은데. 인간의 선택적 정보 취사력과 자의적 해석 응용력이란 정말이지...
(혹시나 이 글을 언니가 보게된다면, 언니에 대한 내 사랑의 헌정글 정도로 이해해주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