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구사 Dec 14. 2020

내 불합격의 원인 2

2. 형광팬 캠프

조명이 준비되자 멤버와 스태프들은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에도

저녁 7시인 것처럼 움직였다. 캠프파이어를 시작으로 재석형의

깜짝 생일파티, 야외에 차려진 바비큐를 맛깔나게 먹는 모습까지

촬영했을 때는 이미 새벽 5시가 다 되었다. 재석형은 마지막 사

람인 내가 잠자리에 눕는 모습까지 카메라로 찍어주었다. 잘 자

라는 인사에 대꾸하고 눈을 감자마자 아침이었다. 눈을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벌써 7시였다. 억지로 눈을 뜨자 옷을 갈아입은 재

석형이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아니 철인이 아니고서야

사람이 저럴 수 있단 말인가? 2시간밖에 못 자서 몸이 무거웠지

만, 저렇게 열심히 하는 재석형을 보니 피곤한 기색을 보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저 배려에 보답하고 싶어서 기운을 끌어냈다. 다

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배려가 나의 120%를 끌어냈다.

이런 배려가 촬영 현장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고, 서로의 에너

지를 북돋아서 매주 사랑받는 방송을 만드는 힘이 되는구나 싶

었다. 재석형뿐만 아니라 멤버들과 스태프들 모두 카메라가 돌아

갈 때보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더 멋있는 사람들이었다.

출연자와 스태프가 서로 배려하며 에너지를 주고받는 사이, 좋은

기운은 점점 더 커졌고, 그 결과 준비했던 것들이 촬영에 들어가

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재석형과 형광팬 팀원들이 따로 만난

식사 자리에서도 재석형은 4시간 내내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면

방송이 더 재미있을까’에 대하여.


나는 죽었다 깨도 저렇게 못 할 거라 생각했다. 저런 노력과 최

선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공부했고 불합격했다.


형광팬 캠프는 그냥 잘 놀다 온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했는

데 아니었다. 그 경험은 내 안의 노력과 최선에 대한 기준을 바꿨

다. 내 수험 생활에는 군더더기가 많았다.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

도 많았고, 챙겨야 할 것과 걱정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불합격하

고 나서 주변 탓을 할 때는 동생과 같이 살면서 설거지, 청소 같은

집안일에 쓴 시간도 원망스러웠다.


‘동생이 나 대신 다 했으면 내가 붙었을 텐데...’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만약 그랬어도 난 합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점수는 더 형편없었을 것이다. 배려는 시간 낭비

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일이니까. 더군다나 진짜 노

력하지도 않고서 애꿎은 남을 탓하는 사람이 무슨 합격을 바랄

자격이 있을까.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재석형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방송을 만들까를 매일 고민하는데, 나는 그 절반이라도

노력을 했던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서야 형광팬 캠프가 정말 내 인생을 바

꾸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유명한 연예인들이랑 놀러 갔다 와서가

아니라, 순도 높은 노력이 무엇인지를 옆에서 봤기 때문에. 배려

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

이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스마트폰을 없애고, SNS 계정을 삭제

하고, 공부에 집중하는 데 불필요한 것들을 치워버렸다. 온종일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밥 먹는 방법도 바꿨고,

잘 때도 합격에 도움이 되도록 자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동

생을 대신해서 장을 보고 청소하고 설거지할 때면 나는 나를 예

뻐할 수 있었다. 사소한 일들이지만 수험 공부를 하면서도 가족

을 배려하는 자신을 기특하게 여겼다. 동생도 그런 오빠를 생각

해서 수험 생활 내내 나를 챙겨주었다. 서로 맛있는 걸 나눠 먹고,

무거운 짐을 나눠 들고, 잘 마른빨래를 개면서 나는 의자에 더 오

래 앉아있을 힘을 얻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불합격의 원인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