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숲 May 06. 2019

정규직 권하는 사회

비정규직이 뭐 어때서

얼마 전, 독신주의자인 친한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새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그런데 표정이 썩 밝지가 않았다. 연애를 하는 건 좋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결혼을 염두에 둔 질문을 해대서 짜증 나고 화가 난다고 했다. 자신이 '독신주의자'라는 사실을 누누이 밝혀왔는데도,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면 모두들 '혹시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내비친다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언니의 다짐은 꽤 단단한 것이었지만, 그런 자신의 뜻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서글프다고 했다. 결혼을 해야 인생이 완성되는 것도 아닌데, 왜 다들 결혼을 권장하는 거냐며.

언니는 화풀이하듯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는 언니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독신주의의 삶과 프리랜서의 삶은 어딘가 닮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스로 선택한 하나의 삶의 방식일 뿐인데, '불안정한 반쪽짜리 삶'으로 취급받는다는 것. 단순히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별종'이라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는 것. 결혼을 한(정규직으로 입사한) 또래 사람들에 비해 금융, 복지 부분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도 적다는 것. 그리고 다수가 선택하는 삶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그로 인해 상처 받는 순간들이 때때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자니 떠오르는 일화가 하나 있었다.


지난겨울, 옛 직장 동료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그와 나는 첫 직장이었던 교육회사에서 만났다. 우리는 동갑에 같은 고향 출신이라 금세 친해졌다.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퇴사 후 방송작가로 전향했고, 그는 그 회사에서 얼마간 경력을 쌓아 다른 교육회사로 이직했다. 그러다 다른 업계로 이직하고 싶다며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어학연수를 떠났다.  

어학연수를 떠나기 직전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이후 거의 1년 만의 연락이었다.


한국에 언제 왔느냐고 물으니 그는 서너 달 정도 됐다고 했다. 그간 일자리를 구하느라 돈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 연락을 못 했다는 거였다. 그런데 최근 새 직장을 구했다며, 첫 월급을 받았으니 이번엔 자신이 밥을 사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와 나는 그의 새 직장 주변의 한 고깃집에서 만났다.

그는 이번에 금융회사에 들어가게 됐다며, 이전 회사보다 연봉도 높고, 워라밸도 좋다고 했다. 새 직장이 만족스럽다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내 안부도 얘기하게 됐다. 그즈음 나는 방송 일을 쉬는 중이었다. 홍보영상과 사보 일을 하고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은 별로 없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니 몸도 마음도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젠 슬슬 방송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이번에 어떤 프로그램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어느 분야에서 일할지
결정될 것 같아.
신중하게 생각하다 보니
쉬는 기간이 점점 더 길어지네.
이제 슬슬 결정을 해야지."


그런데 대화의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그는 어학연수 이후 몇 달간 백수로 지내며 느꼈던 불안감을 한참 이야기하더니, 내게 큰 호의를 베푼다는 듯 말했다.


"우리 홍보팀에
보도자료 쓰는 업무가 꽤 많거든?
너도 우리 회사 들어오고 싶으면 말해.
내가 널 추천하면
내 밑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
나만큼 연봉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조건이 나쁘지는 않을 거야."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외주로 하는 일이라면 좋지."

 

그러자 그가 답했다.


"우리 회사는 외주로 사람을 쓰지 않아.
정규직만 뽑지."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방송작가로서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대뜸 금융회사 홍보팀 정규직 입사를 권하는 친구. 대체 그에게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나는 방송 일 계속해야지.
그리고 난 정규직 입사는 싫어.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좋아."


그런 나를,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높은 연봉과 여유로운 삶이 정말 부럽지 않냐는 듯.


나는 집에 돌아와 그가 한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았다.

그는 백수의 불안감에서 막 벗어난 기쁨, 그리고 전보다 훌쩍 뛰어오른 연봉을 그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로 입사한 회사 내의 자신의 입지와 영향력을 드러내며 허세를 부리고 싶었을지도.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선택한 직업과 일에 대한 존중은 잊고 만 것이다.

한편으로, 그의 마음속에는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보다는 정규직으로 일을 하는 것이 더 좋고 우월하다는 편견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고민을 제대로 들었다면,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는 과연 그런 제안을 할 수 있었을까? 난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날 그 친구와의 만남은 꽤 불쾌한 기억으로 남고 말았다.


그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때로 프리랜서를 '비정상의 삶', '부족한 삶'으로 보는 시선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남들처럼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가게를 차린 것도 아니기에. 노트북 속에 존재하는 나의 성과와 결과물들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마치 한쪽 다리의 길이가 달라 흔들거리는 의자를 봤을 때처럼. 두툼한 종이를 괴어 균형을 잡아주듯 '정규직 입사'를 권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기준으로만 판단한 것일 뿐이다.


내가 처음 회사를 그만뒀을 때 내 부모님도 그랬다. 그냥 남들처럼 일반적인 회사에 다니면 좋으련만, 왜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냐고. 그런데 난 '멀쩡히' 잘 다니지 못했다. 매일 퇴사를 고민했고, 겉돌기만 하는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해 괴로웠다. 남들은 그럭저럭 회사 생활을 하는데, 나만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스스로가 미웠다. 지금 하는 일이 내 소질에 맞지 않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일을 못 하는 사람인 건지 고민하며 자존감을 잃어갔다.

하지만 비정규직자로 사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 원고 청탁이 늘어 바쁜 시기가 되면 잠도 잘 못 자면서도 자존감이 절로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내 능력을 인정받을 때, 예전에 일을 맡겼던 사람이 또다시 나를 찾아줬을 때 가장 큰 희열과 기쁨을 느낀다.

일 욕심도, 돈 욕심도 많은 내게는 프리랜서가 최적의 고용형태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인생의 방식을 함부로 선택하지 않는다.

그 선택의 가치를 타인이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할 권리는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간과한 채, 자신의 기준대로 남의 삶을 판단하려 들곤 한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또 누군가는 '너무 예민하다'라고 하겠지?"
"마음대로 생각하라 그래"


언니와 나는 잠시 성토대회를 그만두고 두 번째 잔의 생맥주를 들이켰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무례를 범한 적이 없었던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 여러 번 실수를 했겠지. 그러나 앞으로는 예전보다 조심하게 될 것이다.

나와 다른 방식의 삶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적어도 차별하는 태도로 상처 주는 사람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속'은 존재가 입는 옷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