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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Mar 28. 2020

소비를 연습하는 중입니다.

 ㅇ소비하는 연습 중입니다. 

 올해 나는 버킷리스트로 '생애 첫 명품 가방 마련하기'를 정했다. 


 명품을 소비하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만의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회적 지위를 좀 더 멋드러지게 내보이기 위해서, 명품 트렌드 시장 조사 차원에서 등등. '그냥 예뻐서'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생애 첫 명품을 사겠다고 결심한 이후 '왜 나는 명품가방을 사려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나와 동갑에 세 개 정도의 명품가방을 가지고 있는 직장 동료는 '여행가는 대신 명품을 사는 것', '업무 미팅 시에 필요해서'라고 나름의 이유를 말했다. 

누구나 아는 구찌. 이걸 사려는 건 아니에요ㅎ

 나만의 답을 못내려서였을까. '왜 명품가방을 사려는건데?'라는 친언니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내 나이 정도 되면 업무 미팅이나 결혼식 같은 행사 때 필요한 것 같아'라고 대충 말해버렸다. 내가 명품가방을 사기로 결심한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며칠 전부터였다. 그 이유에 대해 얘기하려면 나 자신에 대해 조금은 솔직하게 말해야 할 것 같다. 



 난 넉넉치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모레내 시장과 가까웠던 3평 남짓한 반지하 집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집이 있는 건물만 제외하고 모레내 시장 주변은 현재 모두 재개발이 됐다. 그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던 하층민들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대신에 브랜드 아파트들이, 아이들의 학교 급식비나 비싼 쌀 가격 걱정 따위는 한 번도 안해봤을법한 사람들이 자리를 메꿨다. 우리 가족들이 살던 집도 재개발 투자자가 매매한 뒤 지금은 빈집으로 있다고 들었다. 얼마 전 나는 문득 모레내에 가서 예전에 살던 집의 문 앞까지 가보고 왔다. 무슨 감정으로 그 집을 다시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외할머니는 늘 썩은 과일을 떨이로 사오셨다. 


 무튼. 그 집에서 오랜 시간 나와 함께 살았던 외할머니는 참 짠순이였다. 과일은 늘 한 쪽이 썩어 나간 떨이로 샀고 욕조 물은 무릎 높이 정도도 채우지 않았다. 이혼한 딸이 주는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손녀들 학용품에 조금이라도 돈을 보태려고 그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기에게 쓰는 돈은 무척이나 아까워 했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 밑에서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자라서였을까. 어느새 나도 가족들조차 짠순이라고, 돈 좀 쓰라고 할만큼 돈을 아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짠순이로 31년을 살다보니 장점과 단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장점은 통장에 남아있는 잔고다. 학자금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래보다 훨씬 빠르게, 비교적 많은 돈을 모았다. 덕분에 지금은 시집 갈 돈을 모으느라 허덕이지 않아도 되고, 엄마께 중고차를 사드릴까 고민도 할 수 있고, 부동산 소액 투자도 꿈꿀 수 있게 됐다. 


 단점은 내 또래 여자 애들이 거의 다 아는 명품 모델 조차 나는 하나도 모르고, 여행도 실컷은 못다녀봤고, 핫한 맛집이나 카페는 전혀 모른다는 거다. 스쿠버다이빙, 스노우보드, 서핑 같은 멋있는 취미활동도 없다. 그리고 가장 큰 단점. 나 자신을 위한 소비에 소극적이라는 것.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드는 소원 언니... 

 최근 TV조선 '아내의 맛' 프로그램에서 함소원은 그런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들은 모두 '짠소원'이라며 그녀를 지독하다는 눈빛으로 봤지만, 나는 녹록치 않은 집안 형편 속에서 가장의 자리를 지키고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돈을 절약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이 눈에 선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거였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와 언니, 나의 연인에게만큼은 난 돈을 아끼지 않는다. 2,0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도 잘 사마시지 않는 내가 엄마에겐 소고기를 사드리고, 생신 때도 섭섭하지 않으실 만큼의 용돈을 드린다. 연인에게 주는 선물에도 인색하게 굴지 않는다. 그들에게 돈을 쓸 때면 그동안의 내 초라했던 삶이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사회 생활은 해야하니까 친구들, 직장 동료들에게도 적당히 돈을 쓰는 편이다. 


 결국 내가 돈을 쓰지 않는 사람은 유일하게 나 자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나를 위한 소비'를 연습한다. 일단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내가 마시고 싶은 6,900원짜리 와인을 사고 9,900원짜리 감바스 알 아히요 요리 재료를 사서 만들었다. 오직 나만을 위한, 끼니 떼우기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 만든 첫 요리였다. 처음 만들어본 요리에 와인까지 겻들이고 나니 마치 자신을 굉장히 아끼고, 사랑하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 좋은 걸 지금에야 하다니, 이건 정말 내 자신에게 미안해 마땅할 일이다. 

나를 위한 첫 요리. 감바스 알 아히요.

 짠순이가 나를 위한 소비를 하기까지는 꽤나 노력이 든다. 배우고 싶었던 요리 클래스와 요가는 가격을 알고 나서 쉽사리 등록하지 못하고 몇 달째 검색만 하고 있다. 오늘도 맛있어 보이는 고급 치즈를 사려고 들었다가 결국은 내려놨다. 결제하기 버튼을 누르려다가 결국 창을 꺼버린 쇼핑몰 페이지도 많다. 소비에 대한 내성을 기르는게 중요할 것이다. 언젠가, 나를 위한 소비는 하나도 아끼지 않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올해 명품백 살거에요!' 


 그래서 올해 나의 버킷리스트는 '명품백 마련'이다. 물론 아직은 속이 쓰려서 예산을 최저로 잡았지만ㅎ 내가 열심히 번 돈으로 나를 위한 소비를 한다는 건 멋진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다. 


 오늘도 가족들을 위해, 연인을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 쓸 줄은 알아도 나 자신에게만은 인색한 짠순이, 짠돌이에게 '나를 위한 소비'를 독려하고 싶다. 우리, 이제 멋지게 씁시다! 지금까지 열심히 모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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