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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Feb 20. 2022

01. 퇴직금으로 '명품'을 산 이유

명품의 가치를 알고 싶었습니다

저는 명품 회사에 다니는 관계자가 아닙니다. 이 말은 명품을 사라고 홍보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어서입니다. 또 명품에 환장한 여자도 아닙니다. 언젠가 소개팅남이 샤넬 사이트를 종종 구경하는 게 취미라고 본인을 소개하던데, 그때 첨 명품 사이트를 둘러본 것 포함, 지금껏  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접속했네요. 그때 아마 제 가방 중 가장 고가인 발렌시아가 모터백을 들었던 거 같은데, 그래서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 그럼 너 부자니?, 라는 질문 떠올릴 텐데요. 대학 다닐 때부터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 용돈은 제가 책임졌어요. 영화관 스태프, 초밥집 서빙, 학원 강사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했고요. 그럼 왜 명품을 해마다 그것도 10년 넘게 꾸준히 사게 되었는지가 궁금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 얘기부터 시작할게요.


출처 샤넬 페이스북

저는 은평구에서 거의 자라고, 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은평구의 이미지가 강남구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죠. 저는 그곳에서 명품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순진무구한 삶을 살았습니다. ‘3초 백’으로 불리는 가방을 몇 번 길거리에서 본 적은 있지만 ‘뭐지, 저 가방 자주 보이는 데 이쁜 거 같진 않은데...’라는 생각을 했고, 나중에서야 아 저게 이비통의 스피라는 제품이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했더니 그전과 다른 세계가 펼쳐지더라고요. 같이 다니던 친구가 강남 거주자였는데, 그렇게 명품으로 휘감고 다녔습니다.  근데 말이죠. 아이 자체가 예쁜 데다 고급진 걸 이보다 고급질 수 없다로 소화해내니, 진짜 연예인 같이 예쁘더라고요. 후광이라는 걸 저는 그때 처음 경험했습니다. 근데 그 아이가 신상 명품이라는 걸 두어 번 메고, 중고로 되파는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부자의 소비인가,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감탄했더랬죠.


저는 명품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를 색안경을 끼고 보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근데 말이죠. 이런 건 있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그 아이 옆에서 작아지고 또 오징어처럼 못 생겨 보이는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런 이상한 감정을 만났습니다. 그렇더라고요. 그래도 그때까진 명품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저기 저 세상 이야기구나, 싶었거든요.



그러다 어떤 계기를 만납니다. 우연히 듣게 된 특강에서 그 생각이 변화하게 돼요. 명품에 관한 특강 아니었는데 강사님께서 “작은 머리라도 명품을 사서 직접 써 보세요. 그래야 명품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됩니다.”라고 강조하시더라고요. 당시 스타벅스보다 저렴한 점심을 먹고 점심 값보다 비싼 스타벅스 마시는 여자를 된장녀라고 비난하는 여론이 있었는데 말이죠. 머리가 ''했습니다. 명품의 가치, 대체 그게 뭘까? 왜 명품 소비를 여대생에게 권장하는 걸까, 풀리지 않는 물음표가 크게 그려졌습니다.


출처 루이비통 공식 온라인몰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그 후 신기하게도 책을 읽어도 명품에 관한 내용을 접하게 되더라고요. “해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정하고 약속을 지켰을 때 원하 가방을 사요. 명품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샤넬은 매해 가방 값이 오릅니다. 샤테크라 불리는 이유죠.” 뭐 이런 문장들이 이전이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을 텐데... 자체 볼드 처리해 버리더라고요. 또 당시 백화점에 입점한  화장품 브랜드 다수를 보유한 모 화장품의 브랜드 마케터로 활동했는데, 하루는   점심시간에 사무실찾아갔는데... 빈 사무실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3초 백이라고 불리는 그 가방이 진짜 데스크 3개마다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여자라면 누구나 입사하고 싶은 그 뷰티 브랜드 재직자들의 가방 3초 백이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에 머물던 것이 이 단계에 접어들자, 진짜 사볼까,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됐어요. 그리고 사볼까, 라는 마음이 점점 커질 때 즈음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관두게 됐어요. 그러면서 난생처음 퇴직금이라는 걸 받게 됩니다. 공짜 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액수는 크지 않았는데, 딱 에트로 트백 정도 살 가격이었고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근데 말이죠. 그 이후에도 사기 전까지 그렇게 고민을 했어요. 지금 내 분수에 맞는 소비인가, 아닌가? 스무 해를 살면서 저를 위해 그렇게 고가의 무언가를 사본 적이 없었던 것도 소비를 감행하는데, 큰 영향을 줬어요. 살까, 말까. 그래 사보자, 까지 갔다가 다시 굳이로 돌아오는 무한 반복 궤도에 올랐습니다.


그러다 결심을 합니다. 친구 만나서 만원, 이만 원 흔적 없이 퇴직금 탕진하지 말고, 그래, 사보자,라고. 강사님이 말한 그 명품의 가치가 뭔지 알아보자,  설령 못 알아 내도 적어도 가방 하나는 내 곁에 남겠지, 라는 마음으로   질렀습니다. 그것이 저의 첫 명품 가방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1년 근무하고 퇴직금으로 일시불로 긁은 에트로 트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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