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명품 가방 -에트로 토트백-을 사고 손에 닿던 그 가방의 촉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살짝 오버하면, 물건으로 이런 환희를 얻을 수 있다니, 감격이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게 진심 세상을 다 가진 거 같더라고요. 더스트백도 신세계였습니다. 가방을 보관하는 가방이라니...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가방을 두고, 애기(BABY)라고 호칭하잖아요. 그 느낌이 뭔지, 이 가방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 고민하고, 땀 흘려서 번 돈으로 산 생애 첫 명품이어서 더 감격스러웠던 거 같아요. 처음이라는 지위가 좀 특별하잖아요.
근데 그게 전부였습니다. 소유 후, 스쳐가듯 잠시 머문 기쁨이. 명품이라고 다르지 않더라고요. 근데 조금 다른 게 있었어요. 음, 그건 그 가방에 손이 잘 가지 않는 거였어요. 싫어서라기보다는 익숙하지 않아서 편하지 않아서 멀리하는 거에 가까운 거리감이었습니다.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이질감은 제가 스스로 만든 거였고요. 여기에 명품 = 특별한 날 들어야 하는 특별한 거라는 느낌도 강했습니다. 진짜 말로만 듣던 아끼다 뭐 된다는 말을 에트로 토트백을 사고 경험합니다. 그렇게 그 가방은 꽤 오랫동안 방 한구석의 장식품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물론 가끔 아주 가끔 들고나가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대학생 마케터로 활동했는데, 활동 중 하나가 매달 정기 모임을 갖는 거였어요. 근데 그 정기모임이 꽤 좋은 곳에서 진행되었습니다.63 빌딩의 그 유명한 레스토랑, 세 가지 코스가 고급지게 나오는 중식집 같은 곳이요. 그때마다 제 곁엔 항상 에트로 토트백이 있었습니다. 또 3호선 타고 출퇴근하던 공익근무원이던 남자 친구가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테이크 집에 데려가 준 적이 있는데, 그날도 에트로 토트백과 함께였습니다. 귀여운 추억이네요. 이것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에트로 토트백 하면, 떠오는 추억입니다. 에코백에선 절대 찾을 수 없는 서사와 감성이지요. 그렇게 명품의 가치를 탐색해나갔습니다.
출처 Etro
근데요. 몇 번 들고 다녔다고 명품의 진가가 '짠' 하고 모습을 드러내지않더라고요. 잘 모르겠더라고요. 거기다 아낀다고 모셔만 놓으니 더 모르겠고요.
피천득 시인의 은전 한 닢이라는 수필이 있는데, 이렇게 시작합니다."내가 상해에서 본 일이다"라고. 수필의 주인공은 늙은 거지입니다. 좀 더 부연하면, 은전 한 닢이 맹목적으로 갖고 싶어서, 열심히 모으고, 그렇게 손에 넣은 그 은닢 한 닢을 여러 전장 주인에게 확인받으며, 흐뭇해하기도 하고, 훔친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고 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수필은 이렇게 끝맺음되고요.
작가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늙은 거지의 그 후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어쩐 지 그 거지가 은전 한 닢을 종잣돈 삼아 더 큰 부자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요. 저는 에트로 토트백으로 그런 뻔한 결론을 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에트로 토트백을 시작으로 매해 가방을 사기 시작합니다. 제가 꽂히면 또 계속하는 그런 집요함이 있거든요.
두 번째 구매한 가방은 구찌백이었습니다. 두 번 째는 확실히 첫 번째와 다르게 쉽더라고요. 주식을 매도하고 수익금으로 샀습니다. 또 당시 파트타임 학원 강사로 근무했는데, 한 달 급여보다 저렴한 가방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무리가 되지 않는 소비라고 판단했습니다. 수익 실현을 기념하고, 또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 - 명품의 가치 알기 -에도 도달할 수 있는 소비라고요. 근데 그 구찌 가방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다음 해도 그다음 해도 가방을 샀습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나는 장식품을 산 게 아니다, 가방이 방 안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뭔가 잘못됐다'라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한 건 그때부터 매일 명품을 가지고 다니기로 한 것입니다. 첫 픽은 당연히 가장 만만해진 에트로 토트백이고요.
저는 그 가방을 정말 애지중지 모시고 다녔습니다. 비가 내리면, 저보다 가방님(?)을 보호할 만큼이요. 근데 주야장천 계속 들고 다니니까 손잡이 부분에 사용감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사용감이 더 진해지더라고요. 또 해마다 그보다 높은 레벨의 가방을 사들이니, 순수했던 처음 마음이 계속 이어지지 않고요. 자연스러운 마음이었죠. 그렇게 더 이상 명품 가방이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명품을 사기로 결심하기까지도 쉽지 않았고, 명품을 진짜 사기까지도 쉽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웠던 건 그 명품을 매일 들고 다니는 것이라는 걸 에트로 토트백을 통해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