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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May 14. 2022

12. 구찌 메고 게스트하우스

그럼 오천원만 주세요



제주 귤밭




그럼, 5천원만 주세요





제주도로 출장이 잡힌 적이 있어요. 일만 처리하고, 서울로 돌아오기엔 제주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비행기 티켓을 하루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호텔은 연장이 어려웠고, 그런 이유로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혼자 여행 온 여행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셋이 돼서 같이 하루를 보내요. 근데 그중 한 명이 차가 있었어요.  그녀는 제주도를 애정 해서 제주도를 1년에 수차례 찾곤 한다고 자기를 소개했고요. 다른 한 명은 취업 준비생이었습니다.



일정은 이랬어요. 차 소유주 친구가 오설록에 저 포함 두 명을 내려주면,  두 명이 오설록을 둘러봐요. 그럼 오설록 투어가 끝날 때 즈음 또 차 있는 친구가 오면 셋이 물회를 먹고, 다시 두 명이 돼서 가파도를 구경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이 합체, 흑돼지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공항까지 절 데려다주었죠. 진짜 잊지 못할 제주도 여행이 되었어요. 근데 더 잊지 못할 장면 하나가 더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공항 앞에서 “진짜 고마워요.”라고 감사 인사를 건넸는데, 그 친구가  “그럼 5000원만 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음...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공짜를 바란 건 아니지만 제 입장에선 즐거운 여행 추억이 희석되는 느낌도 있었거든요. 동남아도 아니고, 한국에서 경험한 거라 더 인상 적이게 되었고요.    



그리고 탑승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생각했어요. 아니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건 순전히 구찌 쇼퍼백 때문이다”라고요.     



1박 2일 여행이 목적이었다면 레스포색 위켄드를 들고 갔을 거예요.  가볍고, 짐도 많이 들어가거든요. 근데 출장이 메인이었고, 여행은 그냥 부록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레스포삭 위켄드를 선택할 수가  없었어요. 나 놀러 왔어요,를 공적인 자리에서 선전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제 딴에 구찌 쇼퍼백을 선택한 건데, 노트북 하나, 그리고 2박 3일 여정에 필요한 것들을 비교적 짐 없이 여행하는 저는 충분히 소화할 크기였거든요.       




그래서 구찌 쇼퍼백 하면, 그때 그추억이 떠올라요. 5천 원 달라고 하던 그분이.





 


명품의  기대치



부자의 기준이 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사립초등학교 졸업자를 부자 카테고리로 분류를 합니다. 그 친구는 그런 제 기준에선 부자였어요. 근데 그 친구가 참 많이 하는 말이 돈이 없다, 가난하다는 말이었어요. 국립 초등학교를 졸업한 제가 더 돈이 없을 거 같지만 국내에서만 공부한 제가 더 돈이 없는 거 같지만,  진짜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없다는 얘기를 차마 꺼내지 못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참 그 말이 쉽구나,를  저는 그 친구 때문에 알았던 거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는구나, 하고요. 결핍이 아닌 건  가볍구나, 하고요.




근데 그 친구가 돈이 없는 건 또 거짓은 아니었어요. 해마다 신상이 나오면 명품을 사야 했거든요. 제가 클래식한 디자인을 선호한다면 그 친구는 블링블링 트렌디한 디자인의 명품을 선호하고, 또 제가 면세가, 현지 아웃렛 매장에서 주로 명품을 산다면 그 친구는 백화점에서 구입했습니다. 물론 백화점에서 쇼핑을 자주 하니까 구매 이벤트와 같은 프로모션을 잘 알고 잘 활용하더라고요. 월급을 초과하는 소비이지만 또 그녀의 부모님 찬스를 고려하면 또 무리한 소비는 아니었어요. 가끔 사채빚을 얻어서, 명품 소비했다는 얘기가 나오면 좀 안타깝지만 - 말리고 싶지만 - 저는 부모님 찬스도 누릴 수 있다면 안 누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부럽긴 하지만 또 욕을 얻어 먹을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부모님의 동의가 수반되었다는 전제 아래요.




근데 자꾸 돈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데,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좋은 소리도 반복이 되면 안 좋은데 돈 없다는 얘기를, 그것도 고가의 명품을 구매하느라 쪼들린 친구에게 "스트레스 받으면 나도 쇼핑을 많이 하게 되더라."라는 말을 건네는 것도 지쳐가더라고요. 그리곤 알게 모르게 혼자 생각을 키워나갔는데, 그 생각 가운데엔 "저렇게 고가의 명품을 사면서 친구들에겐 참 인색하구나"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가끔 친구들에게 한 턱 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는 그런 게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 생각은 바로 "나도 매일 명품 가방을 메고 다니는데,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됐죠. 이렇게 내로남불이 되는구나, 하고요.



명품이라는 게 또 그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 기대감이 충족되지 못하면 안 얻어 먹을 욕을 먹을 수도 있구나, 하고요. 가방은 몇 백만원인데, 더치페이할 때 소소한 액수로 뭐라고 하면 당연한 본인의 권리도 삐딱한 시선이 투영돼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거든요.  논점은 더치페이인데, 명품이 변수로 더 큰 영향을 끼치고 그게 너무 자연스럽다고 할까요



드라마 검블유에 이런 대사가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사회초년생들이 왜 무리해서 명품백을 사는지 알아요."

"가진 게 많을 땐 감춰야 하고, 가진 게 없을 땐 과시해야 하거든요."




모든 부자가 자신의 부를 감추고, 또 모든 사회초년생이 과시하려는 욕구가 있는  아니지만

저는 여기에 조금 조미료를 추가하고 싶어요. 과시하는 건 좋은데, 아니 적어도 과시하는 게 욕 얻어 먹을 일은 아니지만 과시를 선택할 때 그에 수반되는 타인의 기대도 고려했으면 좋겠다고요. 명품에 대한 기대치, 명품을 들고 다니는 여유 있는 사람에 대한 기대치도 명품을 구매하기로 할 때 같이 고려했으면 좋겠다고요.






그 기대치를 깨닫고, (물론 시간이 꽤 오래 걸렸지만 )저는 에코백이 편해진 거 같아요. 적어도 에코백엔 기대치가 수반되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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