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기록원의 역사와 요건 등에 관한 이야기
모든 스포츠가 기록을 정리하지만 ‘기록의 스포츠’로 불리는 야구는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플레이가 낱낱이 기록되는 스포츠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이 모이고 모여 야구의 역사가 만들어 진다.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득점을 체크하는 수준에 불과했던 야구 기록은 1800년대 후반 헨리 채드윅이 야구 기록법을 창안하고 신문에 박스 스코어를 게재하기 시작하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경기의 승패에 집중하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야구는 이슈가 될 만한 개인 기록이나 타이틀 경쟁이 승패만큼이나 높은 관심을 끌었고 이는 야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수십 년이 지난 경기도 어제 펼쳐진 것처럼 생생하게 복기될 수 있는 것도 야구 기록이 가진 힘이다. 이러한 기록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바로 ‘야구의 사관’으로 불리는 공식 기록원(official scorer)이다. 한동안 공식 기록원은 직업의 특성상 야구에 대한 높은 식견과 객관적인 시각을 갖춘 기자들이 주로 맡아왔으나 1980년부터 메이저리그는 기록의 공정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독립적 위치에 있는 공식 기록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은퇴한 기자, 코치, 심판들로 경기당 일정 금액의 보수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공식 기록원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투수가 던진 공을 스트라이크, 볼, 스윙, 파울로 구분하고 타자가 파울을 쳤는지 번트를 댔는지 등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플레이 하나하나를 숫자, 로마자, 부호 등을 이용하여 기록하고 경기 종료 후 리그 사무국으로 보고하는 것이다. 이 기록이 공식 기록으로 남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번복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안타와 실책, 폭투와 포일, 희생번트와 기습번트 등을 구분하고 실책의 책임 소재, 자책점 판단 등과 같이 플레이에 대한 기록을 판정하는 것이다. 이중 가장 대표적이면서 어려운 판정은 안타와 실책을 구분하는 것이다. 안타와 실책의 경계가 애매한 타구가 나왔을 때 공식 기록원이 실책으로 기록하면 타자는 타율을 손해 보지만 투수는 점수를 내줘도 비자책점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평균 자책점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다. 또한 9회 2사까지 투수가 노히터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야수가 강한 내야 땅볼 타구를 잡았다 놓쳐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지 못한 경우 공식 기록원의 판정에 따라 노히터가 유지될 수도 깨질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안타와 실책을 구분하는 판정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1941년에 나왔다. 당시 위 윌리 킬러의 44경기 연속 안타를 뛰어 넘어 56경기 연속 안타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운 조 디마지오였지만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 유격수 루크 애플링의 몸에 맞고 튄 타구를 댄 다니엘 공식 기록원이 안타가 아닌 실책으로 기록했다면 그의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은 30경기에서 끝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식 기록원이 안타와 실책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야수가 건드리면 실책이고 그냥 빠져나가면 안타? 아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공식 기록원의 눈으로 봤을 때‘보통의 수비’로 처리할 수 있는 타구였는지가 유일한 기준이다. 그래서 내야수 정면으로 빠르게 날아간 타구가 내야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갔더라도 보편타당한 기준에서 봤을 때 타구 속도가 너무 빨라 내야수가 글러브를 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하면 실책이 아닌 안타로 판정한다. 결국 안타와 실책의 기준은 공식 기록원의 재량권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 때문에 불리한 기록 판정을 받은 일부 선수들은 공식 기록원에게 “왜 소중한 내 안타를 날려버렸냐?”고 노발대발하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선수입장에서는 기록이라는 것이 연봉으로 연결되고 더 크게 보면 자신의 야구 인생을 담고 있기에 애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공식 기록원에게는 정확성과 중립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3시간 안팎으로 공에서 눈을 떼지 않는 집중력과 함께 플레이가 이루어지고 나서 수초 안에 기록을 판정하는 결단력이 요구되며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플레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 관리도 철저해야 한다. 또한 특정 팀과 선수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적인 감정을 가져서도 안 되고 방송을 보고 들으며 판정해서도 안 된다. 오직 자신이 본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공식 기록원이 잘못 써 내린 기록은 잘못된 야구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