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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구사냥 Jan 13. 2019

메이저리그 속 괴짜 열전

메이저리그 대표 괴짜 5명에 관한 이야기

메이저리그 역사에는 좋게 표현하면 ‘개성이 강한’ 정확히 표현하면 ‘도저히 보통사람으로 볼 수 없는’ 괴짜들이 우글거렸다. 이러한 괴짜들은 특히 1900년대 초중반 이전에 많았는데 당시에는 교통과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아 도시에서 자란 사람과 시골에서 자란 사람의 차이가 크고, 지금과 달리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기 힘들던 시절이다 보니 사람들의 개성이 강하고 괴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거의 없어지고 선수들 대부분이 고등 교육을 받은 데다 에이전트를 통해 제 앞가림을 똑바로 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이러한 괴짜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 졌다. 결과적으로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은 획일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야구장에서도 괴짜들이 사라진 셈이다. 어찌됐든 매사에 제멋대로고 계획성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던 이들과 함께한 감독들은 정신이 몽롱해지고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며 머리털은 죄다 빠질 지경이었지만 동료나 팬들은 이들 덕분에 배꼽을 움켜쥐고 웃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야구가 없었다면 이들은 과연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라는 부질없는 가정을 해볼 정도다. 메이저리그 역사 속 많은 괴짜들 중에서 보통 괴짜들도 하루만 함께 있으면 두 손을 바짝 들게 만들었던 대표 괴짜 5명을 꼽아 봤다. 명예의 전당이 첫 해 타이 콥, 베이브 루스, 호너스 와그너, 크리스티 매튜슨, 월터 존슨이라는 슈퍼스타 5명을 회원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괴짜의 전당’이 있다면 이들 5명이 처음으로 입성하지 않을까 싶다.      


첫 번째 루브 워델. 야구가 없었다면 정신병원에 처박혔을 것이다. 강속구와 기막힌 커브를 주무기로 삼았던 워델은 명감독 코니 맥으로부터 ‘자신이 본 투수 중 최고의 투수’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생각과 행동은 어린 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야구 이외에  소방차, 과자, 낚시, 술 등 다방면에 지나칠 정도의 흥미를 갖고 있던 그는 소방서 인근에서 살기를 고집했으며, 경기 중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다가도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소방차를 정신없이 쫓아갔고 소방대원들과 함께 불을 끄기도 했다. 선발 등판이 예정되어있음에도 낚시를 하다가 경기에 지각을 하는가 하면 야구장으로 가는 길에 본 동네 야구에 선수로 뛰다가 늦게 온 경우도 있었다. 과자를 엄청 좋아했던 워델과 원정경기를 떠나면 숙소의 룸메이트들이 그가 밤새 부스럭거리며 먹는 과자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자 구단에서는 워델과 연봉 계약 시 ‘과자를 침대에서 먹지 않는다.’는 독특한 조항을 넣기도 했다. 어느 시범경기에서는 자기가 얼마나 뛰어난 투수인지 보여주겠다며 외야수들을 내야로 불러들인 후 한 이닝 동안 상대 타자 모두를 삼진으로 처리해낸 적도 있었다. 은퇴 후 1912년 겨울에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는 일을 하다가 차가운 물에 오랜 시간 있었던 탓에 폐결핵에 걸린 워델은 그 후유증으로 1914년 4월 1일에 세상을 떴다.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나 만우절에 세상을 떠나 삶의 시작과 끝마저도 신비스러운 워델이다.     


두 번째 저머니 셰퍼. 괴짜라는 표현은 아마도 셰퍼를 위해 존재하는 단어일 것이다. 1906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 2-1로 뒤지던 9회초 2사 1루에서 대타로 나선 그는 천천히 타석으로 들어가다가 돌연 뒤돌아서 모자를 벗고 흔들며 관중석에 큰소리로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 앞에 서있는 저는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대타요원 저머니 셰퍼올시다. 잠시 후 제가 좌측으로 홈런을 날릴 예정이니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일장 연설을 하고 타석에 들어섰다. 그의 연설 자체도 황당했지만 그때까지 때려낸 통산 홈런이 5개를 겨우 넘는 수준에 불과했던 셰퍼의 말에 모두들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셰퍼가 상대 투수의 2구째를 두들겨 좌측으로 홈런을 날려버린 것이다. 셰퍼는 타구가 펜스를 넘어갈 때까지 오만한 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감상하고 나서 공중으로 폴짝 뛰어오른 후 1루로 달려가더니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며 “셰퍼가 4분의 1까지 1등입니다!”라고 외친 후 2루를 향해 내달리더니 또 슬라이딩을 하며 “셰퍼가 중간까지도 1등입니다!”라고 외쳤고 3루에서도 똑같이 했다. 마지막으로 홈플레이트을 향해 슬라이딩을 하고 나서 “셰퍼가 아슬아슬하게 1등을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먼지를 털고 일어나더니 “신사 숙녀 여러분! 응원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면서 관중석을 향해 예의바르게 인사까지 했다. 셰퍼의 괴짜 행동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1루 도루사건’이다. 190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 1루에 나가 있던 셰퍼는 자신이 2루 도루를 노리는 동안 3루에 있는 주자가 홈스틸을 시도할 수 있도록 3루 주자와 더블스틸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의 전략을 꿰뚫어 본 상대 포수는 2루 송구를 하지 않았고 주자는 2, 3루가 되었다. 그런데 투수가 다음 공을 던지는 순간 셰퍼는 “다시 해보자!”라고 외친 후 괴성을 지르며 1루로 냅다 달리더니 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슬라이딩해 들어갔다. 그는 이렇게 하면 포수가 1루로 송구를 하게 될 것이고 이 틈에 3루 주자가 홈스틸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1루로 돌아간 뒤 다시 2루 도루를 시도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셰퍼의 기대와 달리 눈앞에서 벌어진 너무나 황당한 장면에 포수는 허수아비 마냥 꼼짝도 하지 못했고 1루수는 베이스를 커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역주를 금지하는 규칙이 없었기 때문에 심판들조차 셰퍼의 해괴한 짓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과적으로 처음과 같이 주자 1, 3루가 됐고 셰퍼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다시 2루로 달렸고, 화가 치밀 대로 치민 포수가 2루를 향해 높디높은 송구를 한 그 사이 3루 주자가 더블스틸로 홈플레이트를 밟을 수 있었다. 셰퍼는 이후에도 이러한 역도루를 했고 이를 계기로 야구 규칙에서 수비 보호를 위해 역도루가 1920년부터 금지됐다.     


세 번째 찰리 파우스트. 많은 사람들은 파우스트가 4차원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만약 ‘5차원의 성격’이 존재한다면 5차원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1911년 시즌 초 어느 날 검은 모자를 쓰고 우중충한 정장을 입은 삐적 마른 한 사나이가 경기를 준비 중인 뉴욕 자이언츠의 존 맥그로 감독을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찰리 파우스트라고 소개한 뒤 자신이 자이언츠에 입단해서 투수를 하면 자이언츠가 반드시 우승할 것이라는 점쟁이의 말을 전하며 거창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우승을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 맥그로 감독은 그의 실력을 테스트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맥그로 감독과 머리를 맞대며 던질 구종의 사인을 정했으나 정작 그가 풍차 돌리 듯 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던진 구종은 하나같이 아리랑 볼들이었다. 맥그로 감독이 그에게 타격 실력을 묻자 그는 타격 역시 상당히 뛰어나다고 대답했다. 그의 타격 실력이 궁금했던 자이언츠 선수들은 타석에 들어서는 그가 배트조차 제대로 쥐지 못하자 선수들은 장난기가 솟구쳤고 그에게 치기 쉬운 공을 투수가 던지게끔 했다. 파우스트가 유격수앞 땅볼을 때리자 유격수는 고의로 공을 놓치고 더듬은 후 1루에 악송구를 했다. 이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우스트는 죽어라 달려 2루까지 슬라이딩해 들어갔고 이어지는 자이언츠 선수들의 고의 실책 덕분에 파우스트는 홈까지 슬라이딩해 들어갈 수 있었다. 정장을 입고 영문도 모른 채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배꼽을 붙잡고 웃었으나 미신 추종자였던 맥그로 감독은 파우스트를 팀의 일원으로 영입하는 황당한 결정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파우스트는 마치 당장이라도 마운드에 오를 기세로 유니폼을 입고 몸을 풀었다. 사실상 팀의 응원단장이 주 역할이었던 그는 통산 2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4.50이라는 나름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는데 이는 그의 투구가 뛰어나서가 아닌 형편없는 공에 타자들이 때릴 의욕을 잃은 것이 주원인 이었다. 어찌됐든 점쟁이의 예언이 적중했는지 파우스트를 영입한 1911년도에 자이언츠는 6년 만에 내셔널리그 정상에 올랐다. 1912년과 1913년에 파우스트는 마운드에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했지만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이름은 ‘빅토리’ 파우스트로 바뀌었다. 어찌되었건 빅토리 파우스트 덕분인지 아니면 당시 미신을 믿는 선수들이 많았던 시대적 상황에서 선수들이 그 미신을 듣고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높아져서 인지 알 수 없지만 1912년, 1913년에도 자이언츠는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1914년에 빅토리 파우스트는 건강상의 문제로 요양소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해 자이언츠는 내셔널리그 우승을 보스턴 브레이브스에게 내주고 만다. 빅토리 파우스트의 건강은 계속 악화됐고 그는 1915년 6월 18일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네 번째 후보 디지 딘. 야구에 대고 미친 짓을 가장 많이 한 선수다. 본명은 ‘제이 해나 딘’이지만 군 복무 시절 ‘디지(현기증나는)’라는 별명을 얻었다. 매사가 늘 혼란 상태였던 그는 뛰어난 투구 능력만큼이나 일반인이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행동과 허풍에 가까운 약속을 지켜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린이 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내셔널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인 빌 테리를 삼진으로 처리하겠다고 약속한 후 등판한 경기의 2사 1,2루 상황에서 1할 타자 휴이 크리츠(0.187)를 고의4구로 거르고 테리(0.341)와 상대를 자청하더니 약속대로 삼진을 잡아내고 말았다. 또한, 포수 사인을 하나하나 보기가 귀찮다며 상대 팀 감독에게 “내가 오늘 패스트볼만 던질 것이니 그리 아쇼!”라고 큰소리 친 후 결국 4안타 완봉승을 거두었다. 언젠가는 조 디마지오의 형인 빈스 디마지오를 매 타석 삼진으로 잡아내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나서 첫 세 타석을 모두 삼진을 잡아낸 뒤 네 번째 타석에서 디마지오가 포수 파울플라이를 때리자 포수에게 “놓쳐! 놓쳐야해!”를 외치며 잡지 않도록 한 후 기어코 삼진을 잡아냈다. 1937년에 딘은 “세트 포지션에서 양손을 모은 후 일시 정지를 하지 않으면 보크를 선언하겠다.”는 주심의 말을 따르지 않고 던지다가 보크를 지적당하자 화가 단단히 나서 상대 타자들을 향해 수차례의 빈볼을 던졌다. 이 경기 후 다음 경기에 등판한 딘은 주심의 말을 매우 잘 따랐다. 세트 포지션에서 3, 4분간 멈춰있다 공을 던지며 심판을 향해 “이것도 보크냐“는 무언의 시위를 한 것이었다. 내성적이고 침착했던 디지의 동생 폴이 같은 팀에 들어왔을 때 동료들은 형인 디지에 대한 편견 하나만으로 폴에게 ‘대피(바보같은)’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폴의 입장에서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섯 번째 후보 지미 피어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개그맨으로 꼽힌다. 어느 날 1루 주자로 나간 피어설은 투수인 섀첼 페이지가 와인드업을 하면 똑같이 와인드업을 하는 등 투수의 모든 동작을 따라하며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 외야수로 나선 피어설은 상대팀 타자로 테드 윌리엄스가 등장하자 외야에서 이리저리 정신없이 미친개처럼 돌아다녔다. 피어설은 윌리엄스의 무시무시한 타격을 막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으나 심판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타자를 어지럽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를 퇴장시켜버렸다. 야구 실력만 놓고 보면 지극히 평범했던 피어설이 야구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만든 사건은 1963년에 일어났다. 뉴욕 메츠 소속이던 피어설은 자신의 통산 100호 홈런을 때린 뒤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1루, 2루, 3루가 아닌 반대로 3루, 2루, 1루를 돌아 홈플레이트에 도착하는 돌출 행동을 했고 이는 거꾸로 베이스를 도는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야구규칙의 도입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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