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팬데믹 속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여행 금지'였다. 휴가 때마다 친구들과 배낭 둘러메고, 훌쩍 여행을 떠나는 건 힘든 학업과 직장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낙이었는데, 하늘길이 막히며 반강제로 '집콕'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금방 다시 떠날 수 있으리라 위안을 삼기도 잠시, 두 해 넘게 유행세가 사그라들지 않으며 진녹색 여권에는 부연 먼지만 쌓여갔다. 그러한 와중에 사람들의 여행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트렌드가 탄생했다. 유튜브 등 SNS 라이브 영상을 통해 해외 랜드마크를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채널이 나타난 거다.
뉴욕 타임스퀘어, 도쿄 시부야거리, 베니스 등. 주요 랜드마크에는 관광객 대신 카메라가 들어섰다. 라이브를 발견한 사람들은 "보고 듣기만 해도 대리만족이 된다"며 신기해했다. 실시간 채팅창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여행 추억을 나누고, 나중에 방문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잡담을 나눴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러한 채널이 지난한 팬데믹을 버티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여행 금지가 풀리는 대로 사라질 트렌드라고 믿었다. 하지만 엔데믹이 임박하고 공항이 여행객들로 붐비는 현재, 그들의 예상은 빗나간 걸로 드러났다.
유튜브에 'Live Cam'을 검색하면 전 세계 곳곳을 촬영하고 있는 라이브 영상 수십 편을 발견할 수 있다. 나미비아 사막의 한 웅덩이를 비추며 오가는 동물들을 보여주는 영상, 베니스 한 해변가 공원에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 등.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부터 받은 영상을 송출하는 채널도 있고, 열차 앞에 카메라를 달아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송출하는 채널도 있다. 물론 한국 채널도 있다. 반포대교 등 한강변 전경을 멀리서 비추고 있는 영상은 대충 세도 여덟 편이 넘는다.
뉴욕 타임스퀘어 전경, 노르웨이 마을 설경, 한강 반포대교 아경 라이브. 유튜브 화면 캡쳐
중요한 건 동시시청자 수다. 가장 많은 시청자들이 모이는 한강 라이브 영상에는, 평일 점심처럼 바쁜 시간에도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접속해 있다. 여의도 불꽃축제나 한여름 폭우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땐 1000명을 넘기기도 하며,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손명오 역을 맡은 배우 김건우가 TV프로그램에 나와 한강 라이브 영상을 틀자 동시시청자 수가 1만 명대를 뚫기도 했다. 해외 라이브 영상들에도 매시간 수백 명 시청자들이 몰린다. 이젠 해외여행 대리만족을 넘어,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힐링' 수단이 돼가는 모양새다.
실제로 시청차들에게 라이브 영상을 보는 이유를 물어보니 "빔프로젝터나 태블릿PC에 이런 영상을 틀어놓고 일을 하는 도중 멍때리면서 쉰다"고 답변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밖에도 시청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본인을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한 시청자는 공부가 잘 안 될 때마다 한강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 '인서울의 꿈'을 다진다고 했다. 제주여행을 즐기는 누군가에겐 날씨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커뮤니티로 기능하기도 했다. 이런 여러 이유들이 합쳐지며 독특한 문화가 탄생하게 된 거다.
얼마 전 이러한 트렌드를 취재하면서, 전문가들로부터 이런 영상이 유행한 이유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현대인들이 바쁜 일상 속 정신적인 피로를 풀고자 이런 영상을 틀어놓고 멍을 때린다는 분석이었다. 10여 년 전부터 미국 실리콘밸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마음 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이 유행했듯이 정보가 넘쳐나고 경쟁이 심화된 사회에서 이런 트렌드가 생긴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댓글창에는 "빔프로젝터로 영상을 틀어놓고 잠시 쉴 때 멍하니 보며 힐링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유튜브 라이브 멍때리기 이른바 '라멍'은 정신건강과 심신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단순히 영상을 시청하는데 그치더라도, 과거 같은 경험을 한 적 있다면 뇌의 같은 부위가 활성화된다. 라이브 영상으로도 실제 여행과 같은 정신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멍을 때리는 동안 뇌의 절반가량은 정보를 정리하는 데 사용되는데, 이는 뇌의 부하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감정은 집단적으로 공유되며 증폭되기 때문에, 동시시청자가 많을수록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는 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트렌드다. '라멍족'이 많다는 건, 반대로 현대인들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지를 방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서든 휴대폰만 있으면 손쉽게 즐길 수 있는 힐링 트렌드가 널리 알려지는 건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얼마 전부터 필자도 TV에 한강 라이브 4K 영상을 틀어놓고 멍때리기를 즐기고 있다. 정말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어 주변에 적극 권하고 있다.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현실처럼 또렷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일상 속 작은 여행, 작은 휴식을 여러분에게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