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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이 될 씨앗 Nov 06. 2021

나를 기쁘게 하는 덕질

구교환 아니고 이옥섭이더라고요

몇 년 전 우연히 본 독립영화 <메기>라는 작품에서 구교환 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배우는 이주영 배우의 상대역으로 지질한 남자 친구 역할이었는데,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도 '아, 이런 배우가 있구나.' 했을 뿐 내가 독립영화를 자주 보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독립영화 <메기>

그리고 얼마 전, 어렸을 때 봐서 스토리와 결말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는 기억만 남아있는 영화 <김 씨 표류기>가 문득 다시 생각났다. 이용 중인 OTT 플랫폼에 영화가 있어 다행스럽게 다시 볼 수 있었는데, 영화 후반부 아주 짧게 등장하는 공익근무요원 역의 조연이 구교환 배우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임에도 뇌리에 콕 박혀있었던 터라 단번에 그가 메기에 출연했던 지질한 남자 친구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독립영화에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상업영화에도 나오네 하면서 구교환 배우가 다른 작품에서는 어떤 캐릭터로 등장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한 나는 그가 요즘 핫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유명한데 나만 몰라? 하하버스에 살던 내가 밟게 될 다음 단계는 너무도 당연하게 구교환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훑는 것이었다.

영화 <김씨 표류기>

구교환 배우는 특유의 연기 스타일이 있는데, 그의 연기를 보다 보면 그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만든다. 원래 어떤 사람이길래 연기를 이렇게 할까? 하는 궁금증이랄까. 그래서 그의 필모를 훑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인터뷰나 GV 직캠을 더 많이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그가 연기하는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실제 그는 귀여움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때 귀여움이란 아이돌 덕질을 하면서 느껴지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니 놀라지 마시길.


일반적으로 배우라고 하면 인터뷰나 제작발표회 등에서 이야기를 할 때도 조금씩은 꾸며진 느낌이 나기 마련인데, 이런 느낌 덕분에 배우는 다른 연예인에 비해 조금 더 신비롭고 베일에 싸인 듯한, 뭔가 일반인과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구교환 배우는 신기하게도 그런 꾸며진 느낌이나 가면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는데, 이 점이 이 배우를 더 친근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그 지점이 그를 귀엽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았다.


원래 덕질을 할 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외모도 성격도 아니고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가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귀엽게 느껴지면 그것은 찐사랑이고, 헤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에 빠지는 것과도 같다. 하필 구교환 배우는 귀여움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라 흔히 덕통사고를 당하기 아주 좋은 배우이다. 게다가 연기에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는데 이 배우가 맡은 역할들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어서, 이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까 하면서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살펴보게 만든다. 원래 덕질을 하게 되면 대상을 나노 단위로 분석하게 되는데 구교환 배우는 나노 단위로 분석하는 재미도 있는, 그야말로 덕질 대상으로 최상인 배우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이렇게 뜬금없이 구교환 배우가 덕질을 부르는 존재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덕질하던 것이 사실은 이옥섭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구교환 배우를 알게 되었던 <메기>라는 작품을 연출한 이옥섭 감독 말이다. <메기>에서 구교환 배우의 임팩트가 굉장히 컸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구며들었다고 생각했었으나, 알고 보니 나는 이옥섭 감독의 연출력에 옥며들어 있었다. 그 사실은 구교환 배우의 필모를 훑으면서 반도, 모가디슈, 킹덤:아신전 등에서는 크게 임팩트를 느끼지 못했다는 점을 의심하면서 알게 되었다. 구며들었다면 자연스럽게 모든 연기가 궁금하고 캐릭터가 흥미로울 텐데 이상하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덕질은 마음이 동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존재로 하건만!


그렇게 필모를 훑다가 덕심에 대한 의심을 품고 초심으로 돌아가 <메기> GV 직캠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 영상에 나오는 이옥섭 감독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차분한 목소리부터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영화의 깊은 의미, 그리고 관객을 대하는 그 마음까지! 그 직캠을 보고 난 후에는 약간 홀린 듯이 이옥섭 감독을 찾아봤는데, 이럴 수가! 이옥섭 감독과 구교환 배우가 함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유튜브 채널에서 기가 막힌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내 취향이 미친 듯이 반영된 삼성 비스포크 광고가 이옥섭 감독 연출&구교환 배우 출연이었다는 것이었다.

삼성전자 비스포크 광고 <너를 위해 문을 열어 놓을게>

김향기 배우가 출연하는 삼성 비스포크 광고는 일반적인 광고와 다르게 환경오염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있는 단편 영화이다. 그 사실 역시 흥미로웠지만 구성과 연출, 음악, 대사, 배우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내 취향이었다. 기업의 광고/홍보 영상을 찾아본 것은 <고래먼지> 이후로 두 번째였는데, 한 광고 영상을 이렇게 많이 본 것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냥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다 좋았고 진짜 삼성이 일냈네 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했는데, 그게 독립영화감독의 연출이었다니! 그 사람이 이옥섭 감독이라니!(약간 이때부터 구교환 배우의 출연은 나에게서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정말 천년의 사랑을 만난 것 같은 기쁨에 사로잡혔다.

삼성전자에서 만든 웹드라마 <고래먼지> ep.1

애초에 내가 좋아했던 것은 이옥섭 감독의 연출력이었지만, 슬프게도 아직 편협한 시각에 사로잡힌 나는 그 사실을 바로 깨닫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았더라면 이옥섭 감독의 부산 스케줄에는 모두 따라다니고 가까운 독립영화 상영관을 찾아다니며(슬픈 지방러의 한계 있는 움직임) 최소한의 덕질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감독에게 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늦게 깨달았을까. 덕분에 아직 미처 관람하지 못한 이옥섭 감독의 작품도 있지만, 유튜브 채널이 있음에 감사하며 마음이 뻐렁칠 때마다 유튜브를 기웃거리고 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 존재 덕분에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좋겠지만,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에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반드시 이유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결국 '그것을 좋아하는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구교환 배우에게 구며들었다고 속단해버린 것도 지쳐있었던 내가 스스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져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나를 잘 아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생 필수 과제이다. 나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가다 보면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고,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주변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할 것, 늘 가슴속에 품고 있으려고 하지만 자주 잊게 되는 생각. 그러니까 더 의식적으로 나를 사랑할 것!그러니까 오늘은 <로미오:눈을 가진 죄> 한 번 보고 자야지.

독립영화 <로미오:눈을 가진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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