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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이 될 씨앗 Nov 17. 2021

마케터의 쓸모

브랜드 마케터가 될 거야

오늘 즐겨 입던 속옷에 구멍이 났다. 속옷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자니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떤 것의 마지막'이었다. 이 속옷을 언제 구입했었더라, 기억은 아득하지만 속옷의 구입처는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망설임 없이 다시 브랜드 홈페이지를 찾을 것이다.



우리 제품 사세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누군가는 소비를 해야 누군가는 삶을 영위할 수 있으니 소비가 없는 자본주의 사회는 곧 망할 집이 된다는 소리다. 이렇게 누군가의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언제나 "이거 사!"라고 말한다.


너 이거 필요하지 않아?
이거 지금 저렴한데 지금만 저렴한 거야!
너 이거 검색해봤네? 사려고 그랬지? 아직 안 샀어? 언제 사?



결코 강제적이지 않지만 전략적이고 치밀한 접근. 이 접근이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마음을 파고들 때 그 회사는 마케팅 잘하는 회사라 불린다.


하지만 앞선 메시지들은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아마 저런 메시지를 전하는 회사는 소비자가 제품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제품을 마지막까지 사용했다면 사용하는 동안에 추가적인 소비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사실상 회사에는 기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회사 제품을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제품의 성질에 따라 사용 기간이 달라지겠지만) 사용해주었다는 것에 감사할 수는 있으나, 대부분의 회사에서 던지는 메시지를 보면 아마 내가 한 제품을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보다는 계속해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더욱 선호할 듯하다.


모순적이게도 5년 차 마케터로 일을 하면서 항상 이런 지점에서 부딪혀왔다. 나는 내가 알리고 있는 이 제품이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회사는 계속 매출을 이야기하며 제품을 더 많이 팔리도록 만들라고 했다. 많은 회사에서 놓치고 있는 점은 마케터가 제품이 많이 팔리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제품을 사고 사용하고 버리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브랜드를 경험하는 것이고, 브랜드 경험이 만족스러웠다면 다시 그 브랜드를 찾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브랜드들 모두 특정 제품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브랜드가 떠오르는(콜라를 떠올리면 코카콜라가 떠오르듯), 소비자에게 만족스러운 경험을 선물한 회사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브랜드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들의 제품에 집중하고 있어서.



마케터의 쓸모

소비자의 경험은 연속되는 모든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광고부터 홈페이지, 고객센터, 택배, 패키징, 사후관리까지.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를 알게 된 처음부터 제품을 버리기까지 모든 과정은 경험이 되므로,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느껴질 수 있도록 기획해야 한다. 그래서 마케터는 기획자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브랜드와 만나는 모든 접점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퇴사를 고민하면서 마케터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광고 운영 담당자로서 마케터를 고용하는데, 지금 이곳을 나간다고 해서 업무가 특별하게 달라질까 고민했던 것이다. 이 시간 속에서 나는 마케터로서의 소신을 잃어가면서 일을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이 소신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마케팅을 단순히 제품을 광고하고 홍보하는 일로 정의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걷고 싶은 길이 브랜드 마케터라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사실 그곳에 입사하면서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회사가 나에게 기대하는 업무 범위를 파악하면서 내가 커리어를 쌓고 싶은 방향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이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브랜드 속으로 들어가 소비자도 그 브랜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 내가 생각하는 마케팅은 이런 것이다. 내가 소비자가 되어 자신 있게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마케터는 이런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마케터로 살아가고 싶다. 쓸모 있는 마케터로, 브랜드를 사랑하는 마케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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