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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Apr 16. 2024

엄마와 길냥이

대를 이어 사는 고양이 가족, 그를 느슨하게 보살피는 엄마

애완견이나 애완묘의 시대다. 나 어릴 적엔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기도 했지만, 헤어질 때 펫로스(pet loss) 증상을 크게 겪어 다시는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쌍문동 골목에 사는 들고양이들은 우리 집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바로 정 많은 엄마 때문이다.


지금은 개조했지만, 지하실에 보일러가 있었다. 한겨울이 되자 온기가 있는 이곳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은 것이다. 엄마는 이걸 발견하고 먹이도 주고, 겨울을 지내도록 배려해 줬다. 새끼고양이들은 자라 엄마고양이들을 따라다닐 정도로 컸다. 앞집 지붕 위로 엄마를 따라다니던 아기고양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엄마가 시골에 가 집을 비웠다. 직장에 다녀온 후 마당에 들어서니 쥐를 잡아 내 방 창문 앞에 둔 것이다. 난 왠지 밥 달라고 조르는 것 같아 냥이를 위해 참치캔을 사다 열어두었다.


그렇게 몇 대를 거쳐 길냥이들은 우리 집을 편히 여겼다. 가끔 부엌에서 고기를 구우면 부엌 쪽 창문 밖에 길냥이가 운다. 엄마는 "알았어-" 하고 대화하는 듯 창문을 탁 열고 고기를 던져준다.


지난 주말, 내가 차방에 앉아 사주공부를 하고 있으니 엄마가 나를 부른다. 창밖 바로 앞에서 검은 고양이가 자고 있다고. 다가가 보니 제법 큰 녀석이다. 뮤지컬 캣츠에서 메모리를 불러도 될만하다. 내가 다가가 냥이야- 라고 부르니 눈을 뜬다. 샛노란 눈을 가진 녀석이다. 내 소리에 느리게 일어나 가버린다.


엄마에게 이야기하니 길냥이는 모른 채 해야 한다 하신다. 모른 채 보살펴주고, 모른 채 곁에 있으라 하는 게 길냥이식 소통법인가보다. 우리 엄마는 길냥이하고도 잘 지낸다.


언젠가는 뮤지컬 캣츠를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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