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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Nov 25. 2024

화섭씨의 성장

엄마의 글로 적어본 화섭씨 성장 기록

2년 전, 브런치에서 알게 된 어느 아버님이 화섭씨의 성장에 대한 글을 읽어보고 싶다 하셨습니다. 그때 엄마께 부탁해 엄마가 80년대 화섭씨를 키운 기록을 쓰셨습니다. 지금과 장애인 인권 의식도 다르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희망을 가지고 키워오신 기록을 옮깁니다. 고치지 않고, 70대 엄마의 글투를 남기는게 의미 있는것 같습니다. 키보드가 익숙하지 않아 띄여쓰기도, 따옴표도, 마침표도 규칙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개성이 있는것 같습니다.


이 글을 저에게 보내주시면서, 엄마는 누가 이 글을 읽고 장애로 약점을 잡으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셨습니다. 그 걱정은 엄마의 상처지요. 그럴 일은 없다고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고 엄마를 꼭 안아 드렸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럿다. ,

어렸던  화섭이가  이제   40대  중반  

지난날  힘들었던   날 들 이  주마등  처 럼  지나  간다 ,

4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아이 .


평범한  월급쟁이  남편의  근검 절약  정신 ,  여러명의  아이라  방을 구할수  없는  처지라     5년만에  내집  마련하여   얻은 막내 , 막연히  순둥이로   여겼던   아아가  4세가  되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형제하고도  어울리려  하지  않는가  하면  엄마를  밀어내는등   눈 마주  침이  되지  않았다 ,


지금도 기억 난다 ,kbs  방송에서  보도 하는    자페아에  대한 정보.


우리아이  행동과   유사 하다 .

다음날   바로  서울대  병원   소아정신과   진료  

여러 검사   결과   자페아  진단 .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 습니다 .

그만큼  걱정과 근심이   마음에  가득하기에 입니다 .

무엇이드  붇잡고  매달리려는  심정 , 자신의  목 숨까지도  자식을 위해서는  하찮게   여기는 것이  부모  입니다.

그 때  만난       박성숙 박사님.

아이를  구해줄수  있는  구세주를  만난   마음 이었 습니다 ,(1) 

매주  한번식    진료 ,

한달쯤   되는날 .

엄마의,   가르침이 좋은  변화를  보요  주고  있다며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될것  갇다는    그 말이  얼마나  좋았느지  모름니다 ,

소아정신과  진료비는  시간과  연계되어   높았 거든요 ,

4자녀와   아이 아버지의  수입은  넉넉하지  못 했으니까요 ,


아이가  다닐수  있는  유치원에   보낼것과  엄마와의  스킨쉽과  가족들과의  유대  관계  등를  일러  주셨어요 ,

처음  시 외각에   있는  장애인  학교를   회섭이와   방문 .

대화가  않되는   아이    였는데   이곳  다닐수  있겠니    하고  물엇더니   완강히   거부  하였어요 ,

국립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운영하는 버스가  있엇어요 .


그래서   , 집 근처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입학  했 습니다.


천박지축   화섭이를   받아준  목사님  ,5살때 조금식  적응  해가는   아이 

무사히  1년과정  졸업 


두번째   유치원   은  절에서  운영 하는곳 6살때 .

적응도  그런대로  해주고 

기억력이  좋아저서   배운것을  암기  하여   모두르  놀라게   하였어요 ㅡ

그런데  친구  들을  밀고   물고 한다는  선생님이   전해주는   소식이  두렵고  죄송 햇 습니다 .

그렇게  엄마의  마음  앎이를     하며  무사히   졸업 ,

감사  했습니다 


세번째  사립 유치원   7살때

잘 적응   하길   바라며   입학한   결과  원장님의  단호한  퇴학  통지 .

 그 날 일은  하늘이   보이지  않은   아품이었  습니다 .

그리고 옛한미 병원  자리에서  운영하는   정신지체아  시설에  등록 

전문적인  교육을 받앗 습니다 

그때   아동심리학  교수님  아들  도 있엇지요 . 아이 엄마와  친하게  지냇어요 .증증아이  였어요 .

그 당시  화섭이는   괴성를  질러  엄마를 힘들게   햇 습니다 .

집에  오는 길엔   복권 사는 것을  좋아 해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곤    햇 습니다 .

지금  도  복권을  소중히  사모으고   화 섭이 .


어느날  물 었어요 ,

당첩되지  않는  복권  돈낭지  않느냐고 햇더니    자신의  유일한 낙이며  자신은  수입  적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노후  병원비와    생활비가  할것이기 때문에 그 때  당첨이  되면  사용거라니 

손벽을  치며  칭찬 해   주었 습니다 .

지금도  매주  화요일 은   복권 사는 날 


1년후  초등학교  입학  .

그리고   1년 휴학 경고   

도봉구에서   고덕 지구  까지는  먼 거리 

 고덕 지구있는   종합  복지관 ,에  언어 치료   등록 .

6개월  쯤  담당 선생님께서   이정도 면 될 것  갇다고 하신다 .


이곳  1주에   한번식  순회하시는  박사님이  계신다고  하시길래 

종합적인  수준을  점검해  보는  좋은 기화라    면담  신청 .


아침  9시 상담 예약 

집에서 7시 출  발 

 박사님 께서   상담하신 결과   걱정하지  않아도  될것 갇다 는  결과

얼마나 감사 햇는지   지금도  생각 난다 . 


그때   처음  접한  책이   딥스   .

전형적인  자페아의  여러  행동과  지도  방법들 ,

지금  생각  해보면  좌절하지 않고  이상하리  만큼  의연하게   받아 들임 과  인정했던  마음 가짐을 자신에게  칭찬하고  싶어 지네요, 힘들때  강하게  작용하는  의지력을  발휘하는  자신 을  보게  되네요.


여러정보를  수집하고   얻은 정보는   적극 적으로  실천  했다 ,

아이와의  놀이  중  숨박꼭질과  레슬링  놀이는 즐겁고  재미  있었다   상대를  의식하고  찾는   숨박 꼭질 ,  스킨쉽을   최대한  할수  있는 레슬링 놀이 ,

언어  치료로는  말을  했을 때   주는  보상 놀이 ,

끝임 없이   종달새처럼  사물과  환경들과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  주었다 .

그 때  부터  방향어를  하기    시작.    6세 에 .

나는  생각  했다 

산천 초목의  나무들을   보며    저 나무들도     성숙의  한계가   있지  않는가  . 나의 교육 철학도  아이가   성숙  할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노력을 하기로  했다 . .

그리고 아이가  할수  있는  만큼의  자립정신을   길렂는 것을  교육  목포로  잡았다 .

거기엔  무한한  사랑 , 어뗀  상항에서도 포근하게  감사주는  아낌 없는  마음기짐이  필수  라고  생각 했다 ,

왜냐면   자페 는  자신을 페쇄적으로  문을  닫은 상항 이  아닌가 ,

그문을   열려면  따뜻한 온기와   평화로움과   포근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남들이  보기엔 무모한   교육이라   여길수  있지만   개방적  방목하는  방법을  택 했다 .


마치  어미 닭이   어린 병아리를   대리고   따듯한  봄날   외출  했을   방목한   상태에서   아무런  관섭 없이  자유롭게  놀다가  나무잎이   떨어지면   깜짝  놀라   엄마  품속으로    몸을  숨기는  보습을  보았다 

그 때도  엄마  닭은   아무런  반응  없이  품을  내주는  모습 .  보았다 

그런 모습이  확신이 되어 이름표  달고   자유롭게  놀게   밖으로   내  보냈다 .

일정한  시간이  지나  찾아  보면  집 부근에서   놀고   있으면  얼마나  반가운지 .

집에  가두는 것을   자신은  허락 하지  않았다 ,


어느날   주변에서  아이를  찾지  못했다 .날은  아두어  지고 .  파출소  신고 .  밤  12시가  되었을 때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 아이가  여기  있다고 반갑고  고맙고  감사  했는지 .

아이는  두려움과   공포에  얼마나  힘들어 했을까 긴장된 몸이  느껴젓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에게  조용히 속삭이듯 말해 주었다 .

 너를  찾지 못해    엄마와 가족들이   많이 놀라고 걱정했단다 .

 아빠는  많이  화가 났어 .    

이제부터   멀리가지 말자 . 고   다둑이며  쓰다듬어   주니  잠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자기 혼자 놀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  .

잘못을   아는   아이에게 야단치는 것다  보다   이해와   따뜻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 ,


나  자신부터  그렇지  않는가 . 잘못 했을때   자신이  잘못을   너무나  잘  알기에  불안하고  두려움에 힘들어  할때       부모님의  야단보다  따뜻하게   타일러  주실때  나의  마음은  편안했다 .


화섭이의  서울시내  교통실습교육 


초등학교  5학년때  보라매  공원내에   있는 특수교육  기간에서   여름방학때  교육프로그램이  있다고 아는   초등학교 교사  분이   알려  주셨다 .  선생님의  자녀도 교육을   받는다고   하신다 ,  

그때   수유역에서  보라매 공원까지 갈아 타기도 하는  먼거리 로  지히철  이용   했다 .


3번정도  엄마와  답습후   혼자  다닐수  있는지   물었더니  할수  있단다 .


그때부터    서울  지하철  노선을  암기하고  버스노선도  선별 해서    다닐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


갇은  특수반 아이들은   집에만  있었다 .    엄마들에게  권유 . 먼곳까지    보내기   두렵다고   하길래   언제까지  집에  있게  할거야고   우리는  나이  들어  갈 것인데   아이를  집에만  둘 거냐고 ,자립해야 하지  않겠냐고 .


공감한  엄마들  .


화섭이와 갇이  다니며 공중전화에서  집에  전화 하기   지화철 이용하기를    교육 했더니 . 엄마들 안심하고  그렇게 방학수련  무사히  마침 . 엄마들이  얼마나 고마워   하는지 .승현이  효연이   지금도  생각 난다 .


우리  화섭이의  이력는  너무  많다 .

고덕  종합 복지관  언어치료  

종함동  한미 병원  자페교육  

유치원 4년  중 퇴학  1번 

초등학교  입학  적응부족   1년휴학 후  입학 .

초등4학년때특수반  있는 학교 전학 .

6학년때  박성숙  선생님  진료 후  종합검사   

아이큐  80  

컴교육 진료  선택 

컴학원 교육 


6학년때  담임선생님 면담  부족으로 사립중학교  잘못 배정 ,

교육청 오가면   특수반 있는 중학교  전학 .

상계직업 고등  학교   

  전산과   1반 

 전자과  6반 

화섭이는  6대1의   전산과에   가야  한다 .

면접시험 .


면접 시험 전에  충분한 설명 , 전산과에  너가  좋아하는   컴을  배울수  있다고  편안하게  면접 보자고  걱정하지말고  . 면접관의 컴의 기본과  가족 관계. 거침없이  답하는  아이. 그자리에서  합격 발표 .


우리는  운동장에서  만세  불럿다. 합격후  먹는  짜장면과  탕수육 .


입학식날   

초코파이  5통  을 사들고    담임 선생님과  반 아이들을  교실에서   만나   화섭이의  시회성 부족을  말씀 드리고   아이들에    도와  달라고 ..고등학교   3년   무사이 졸업 .


반 아이들은  다  딴 자격증 

워드프로세스  3급  


졸업후  구세균복지관에서  공부  3급자격  획득 


엄마가  화섭이게  늘  들려준말 


무노동  무임금 


서울 직업 종합 복지관   취업  이력서 제출 . 취업 , 연락  

워드  입력 하는곳에  취업 ,언제나  엄마는 담당자를    찿아가  화섭이의  부족한점  양해를  구했다 .

취업후  수입  은행계좌  개설  은행 이용 할수  있는  체크카드    만들어  마트를  이요하며   좋아  했다 .

취업기간이  끝나고  북부 종합 복지관   취업 교육 .

4곳의   취업  을  이직하는   과정에서  겪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 .은  화섭이를   인내하게    만들었다 .


투잡을 하는  화섭이 

곳곳에    퀴즈를  풀고   곳곳의 응모란에   응모하여  갖가지  상품을   타 온다 .

lg  충전  청소기  . 가습기 . 공기 청정기 등   우리집에   택배가   수시로  온다 


현재  충무로   있는  인쇄소에서

성실하다는  칭찬   받으며  근무 


여기  까지  온  힘든  과정들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수  있겟는가 .

그런 과정들이 있어  지금의  화섭이가   있을 것 입니다.




코로나 이후 인쇄소가 어려워져 폐업했고, 화섭씨는 실직했습니다.

화섭씨는 바리스타를 꿈 꿨으나, 나이가 있어 적응이 안되어 현재는 발달장애인 훈련센터에서 점자입력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화섭씨의 새 직업을 새 봄에는 만날 수 있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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