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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램이 없어야 받아들임이 된다

서울둘레길(양재시민의 숲-사당역)

by 긍정태리

가을이 깊어간다. 햇살이 좋고, 바람도 차지 않아 걷기에 나섰다. 양재시민의 숲은 참 예뻤다. 단풍놀이를 여기서 하는 듯 했다. 사진도 찍어가며 가을정취 느끼며 걷는게 행복했다.

우면산에 들어서자 계단이 나왔다. 화섭씨는 힘든지 철푸덕 바닥에 주저 앉았다. 왜 계단이 많냐고 한다.


"산에 왔으니 당연히 고개가 있지. 이 코스는 큰 고개가 두개 있어."


산이 힘들다는걸 받아들이면 불평이 없을텐데 그냥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 다음부턴 화섭씨는 조용해졌다. 대신 힘들면 아무 바닥에나 주저앉는다. 바지에 먼지가 한무더기로 묻는다. 순간 의자에 앉아 쉬지라는 잔소리가 올라오다 꿀꺽 삼킨다. 나도 화섭씨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질 못하는구나.


우면산에 들어서니 새소리가 좋았다. 싸간 고구마와 키위를 먹었다. 야외에서 맛나게 먹는게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였다.


걷다 다시 고개가 나오니 화섭씨가 "두번째 고개다!" 하면서 걷는다. 뒷부분엔 몸이 풀려 걷는게 수월해졌다.


다 걷고 사당역 근처에서 쌀국수를 먹었다. 지난주에 새직장에 붙은 화섭씨다. 인사하고 면접보는것 연습하는걸 도와줬던터라 월급받으면 점심사라했다. 글쎄...하며 절대 승낙 안하는 화섭씨.


이럴땐 구두쇠 아버지를 닮았다. 그래, 내 소원 내려놓고 나도 있는그대로 받아들이자. 돈 계획없이 안 쓰니, 돈문제 없이 살아온 화섭씨니 그것에 만족하자.


서울둘레길은 이제 관악산, 호암산만 남겨두었다. 거북이처럼 걸어왔는데 산 두개만 남으니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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