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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늘 Mar 01. 2020

좋아하는게 딱히 없는 마케터

Geeks가 아니어서 걱정인가요? 취향이 미적지근해도 괜찮아요.   

* 단상은 빠르게 글로 옮기기 위해 말이 짧.. 습니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없는 마케터이다.

타 마케터들의 브런치/소셜미디어를 탐색하다 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취향이 뚜렷하다는 것. 실제로 나의 인턴 기간 첫 사수님은 맥주를 좋아해서 웬만한 세계 맥주는 꿰뚫고 있으시고,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팀장님은 V6 두산베어스의 찐팬이시다. 혹은 어떤 아이템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스타그램 피드의 색감이 통일적이거나, 다들 무언가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스트레스를 풀고 일에 활력을 얻는다.


하지만 나는 그 흔히들 떠올리는 Soul Food도, 덕업일치가 될 브랜드도 없다. 더 나아가 (사람이 아닌) 어떻게 무언가를 오래토록 깊이 사랑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마케터는 "브랜드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와 일에 그 진심이 어울러져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양심이 콕콕 찔린달까. 그래서 나는 어떠한 브랜드가 내 광고주가 되면, 최대한 사랑에 빠지려고 하는 … 노력형 마케터다.



햇수로 4년, 만으로 27개월 다닌 회사는 직원들의 취향과 커리어에 대해 소통하려고 하는 곳이다. 그래서 반기마다 있는 팀장님/본부장님/대표님 면담의 공통 질문이 "원하는 광고주가 있니?"인데, 나는 매번 시원하게 대답을 하지 못 해왔다. 당연히 나에게 배려를 해주시려고 하는 질문이고, 그것을 난 기회로 잡고 열심히 어필해야 할 타이밍인데 항상 쭈뼛쭈뼛. 그리고 아래 대화는 매번 데자뷰된다.


"하늘아, 하고 싶은 광고주가 있니?"

"음 … 아니요, 딱히 없어요. "
"그럼 특별히 해보고 싶은 업종은 있니?"
"음 … 아니요, (그 와중에 힘든 건 싫어서) ㄱ, ㅂ, ㄱ 이 업종만 아니면 돼요. "


혹여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인해 걱정을 하는 마케터가 있다면 조금의 긍정적인 소스를 나눠줄까 한다. 나는 줏대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이 없고 당장에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건, 어쩌면 어떤 것이라도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드릴 수 있는 자세임을 밝혀 본다. 특별히 다양한 산업군을 접하는 대행사 마케터라면 오히려 평소 팬심이 있던 것에 대한 실망감이 덜 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볼매'라는 말도 있지 않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어느 한 시인도 얘기했던 것처럼 당신도 당신의 광고주와 사랑에 빠질 것이니 괘념치 말길.


여행/생일/음식/행사/책/스쿠버다이빙/강아지

셀피와 예카(예쁜 카페의 줄임말, 요즘말이라고 한다), 성장 일기 등 중구난방의 인스타그램 피드도, 바이젠-IPA를 왔다갔다 하는 맥주 취향도 뭐 어때. 좋아하는 것을 찾는 속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딜 뿐, 잘 찾는 성공 확률이 낮을 뿐. 의무적으로 나의 취향을 수렴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개'를 조금씩 좋아하는 나의 성향 자체가 내 취향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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