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브런치에 접속한 이유
책만 내면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다. 투고를 하고 출판사에게 합격점을 받아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 벽 너머의 환상의 세계라도 믿지 않으면 버텨낼 재간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내도 변하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나에게 또 다른 책 출간의 기회는 요원했고, 어찌어찌 고군분투해야만 다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어느새 책 4권을 낸 작가가 되어있었고, 책을 내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떠는 일은 없어졌다. 여러 출판사와 일하면서 동화 문법에 대해 어렴풋이 익혔고, 그것이 내 작품의 성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신 다른 종류의 불안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판매 지수와 실적이다.
둘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목매게 되는 내가 싫었다. 남들과 비교당하는 일이 싫어 공무원이 된 내가, 아이들에게 비교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내가, 비교가 수치로 보이는 업계에 스스로 발을 들이다니… 참으로 웃긴 노릇이다.
선생님, OO 책은 출간과 동시에 알라딘 어린이 TOP100에 들었대요, XX책은 판매지수가 10000을 훌쩍 넘고요….
책 시장의 사정을 잘 아는 작가님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가슴이 따끔따끔 거리기도 했다. '나도 한 번쯤은 그렇게 떵떵거리면서 내 책의 실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걸 바라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결코 아닌데도 말이다.
어떻게 하면 잘 나가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라는 비틀린 욕구가 싹터버린 순간, 더 이상 글 쓰는 게 즐겁지 않아 졌다. 그때부터였다. 브런치에 글 쓰기를 멈춘 것이. 브런치는 투고, 즉 실용적인 어떤 것을 위해 글을 쓰는 공간이 아니다. 내 마음속 꿈틀거리는 상념들, 그 순간의 단상들, 조각조각 흝어져있는 마음들을 모아 자유롭게 풀어내는 공간이다. 브런치에 글 쓰기를 멈췄다는 것은, 더 이상 자유로운 글을 쓰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지난 몇 년은 브런치에 글을 쓸 만큼의 마음속 여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소용이 있는 글쓰기에 몰두하자, 글과 낯을 가리게 된 것이다. 잘 써지지 않을 것 같은 날은 아예 글쓰기를 외면해 버렸고, 그나마 잘 써지는 날에는 계약된 글만 주야장천 썼다. 정말 '좋아서', '그냥' 무용한 쓰는 날들이 사라졌다. 고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날에 글로 해소했던 지난날의 나는 없어졌다. 그런 날들은 결코 내 인생에서 좋은 순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브런치에 접속했다.
글을 그냥 좋아했던 나를 찾고 싶다.
문장력이 좋든, 나쁘든. 생각이 깊든, 얕든. 남들이 내 글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없이.
좋아서 글을 쓰던 나로 돌아가고 싶다. 판매지수나 실적 대신, 내 의지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변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