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무서운 저주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렸을 때 엄마가 “꼭 너 같은 딸 낳아봐라.” 라고 말씀하셨을 때만 해도 나 정도 쯤이야. 라고 생각했었다. 대학 들어가서 일탈을 해서 그렇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완전 모범생이었다.
집--학교--독서실을 셔틀하며 챗바퀴같은 일상을 보냈고 고교시절 야간 자율학습 빼고는 저녁 7시 이전에는 집에 들어갔다. 어쩌다 걸려오는 반팅( 건너편 남고와 같은 반끼리 미팅) 전화 혹은 다른 남학생이 만나자고 전화왔을 때도 “전 그런 거 관심없어요.” 라며 쿨내 진동하는 통화를 했더랬다. 내 미모가 출중해서가 아니라 삐삐도 없던 시절, 막무가내로 여고생 전화번호를 따서 전화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회에서 성탄절 성극 준비로 어쩌다 밤 9시에 집에 들어갔다가 엄마한테 혼쭐이 나서 그 후로는 교회에서 뭔 행사를 해도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공부머리가 틔여서 성적이 조금씩 올랐지만, 전교 1, 2등을 하는 동생과 너무 비교가 되어서 엄마를 만족시키는 딸은 아니었다.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는데도 엄마는 “너만 괜찮으면 그냥 공장 다니는 건 어떠니? 아니면 상고라도?” 하셨었는데, 그 시절 우리집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엄마가 회고한 적이 있지만,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당시엔 들었었다. 그래서 죽기살기로 공부하기 시작했었다.
이런 나였는데, 엄마는 회심의 복수라도 하듯 “너 같은 딸 낳아봐야 정신차리지”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내가 엄마 속을 너무 썩혀드렸나 보다. 대학 때 연애한다고, 술 마시고 돌아다닌다고, 돈 너무 많이 쓴다고, 혼이 났었다. 누군가는 보통의 젊은 나날일 수도 있지만, 내 중심에서는 한 때, 젊은 날에 들이킨 소주 한 잔의 맛일 수도 있지만, 엄마 가슴에는 구멍이 났었나보다. 그 어떤 약으로도 보수할 수 없는 피칠갑의 구멍.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어서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생각.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걸까?’, ‘내가 잘못한 부분은 무엇일까’.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내게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너 같은 딸 꼭 낳아봐라.” 이 말이 혹시 저주로 돌아온 건 아닐까?
물론 엄마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테지만, 나 역시 내 딸에게 “너도 너같은 딸 낳아봐야 내 맘을 알지”라고 무의식적으로 말할 때가 있다. 그런 말을 꺼냈다가 다시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나는 그러지 말자. 과거의 우리 엄마처럼 무의식적으로 상처되는 말을 내 딸에게는 하지 말자. 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입술이 내 머릿속의 의식을 잘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내 딸이 정상적인 자식은 아니어서 그런가. 저 말은 다시 내 가슴을 마구 후벼판다. 다시는 내 입에 올리지 말자. “꼭 너같은 딸 낳아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