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부터 목이 붓고 아팠어요. 지금은 맑은 콧물이 주룩주룩 흐릅니다. 눈이 쪼금 뻑뻑하고 열감이 느껴지지만 머리는 아직 안 아파요. (감기겠죠?)"
병명을 스스로 진단 내리는 환자는 되지 말자며, 의사 선생님 앞에서 증상만 말하고, 말꼬리에 '감기겠죠?'는 삼켰다.
"감깁니다."
"목이 많이 아파요."
"어디 한 번 봅시다....... 어이쿠 많이 부었네요. 이 정도면 엄청 아팠을 겁니다. 항생제랑 진통제 좀 처방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어어엄청 아팠을 거예요.' 의사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지만 내 귀에는 목소리의 속도와 크기를 조절한 특수효과처럼 느리고 선명하게 처리되었다. 괜히 콧물이 핑 돈다. 이해받은 느낌.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선생님이 지어준 약은 한 봉지만 먹어도 툴툴 털고 일어날 비법처럼 느껴진다. 아프면 마음이 약해지는 법이지 암.
약국에 가니 약사님이 빠르게 약봉지를 내주시며 말씀하신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약이 달라요. 잘 구분하여 드세요."
이런 세심함이라니. 콧물감기약은 졸음이 많이 와서 아침, 점심 약에는 빠져 있는 모양이다. 그동안 걸려 온 감기와 먹어 온 감기약에 비례하여 쌓인 경험지식이 있어,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약봉지를 받아보면 아침, 점심 약과 저녁 약 개수가 다른 것을 보고 구별을 할 터였다. 그렇지만 그런 걸 꼼꼼히 살펴보지 않는 환자들도 있다. 환자들을 배려하여 약을 줄 때, 복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친절함이 감동이다. 콩나물해장국을 들이켠 것처럼 속이 뜨끈해진다.
집에 돌아와, 며칠 전에 사 둔 만감류, 진지향 잘 벗겨지지 않는 껍질을 조각내 알맹이를 요령껏 발라 먹었다. 감기엔 비타민 C가 풍부한 과일이 그만이지~! 감기에 걸릴 것을 미리 알아챈 것일까? 한라봉 외에는 잘 사지 않는 만감류를 샀으니. 진지향이 처음 듣는 이름이라 새로움에 끌려 샀다가, 실망하고 말았다. 한라봉이 '티오피(T.O.P)'라면 진지향 넌 그냥 귤. 맹숭맹숭한 당도에 혀끝을 아리게 훑는 미묘한 쓴 맛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먹는 과일 편애하는 거 아니라 했지만, 간사한 세 치 혀가 기막히게 감별해 내는 것을 어쩌란 말이야.
그런데 가만! 내가 진지향을 처음 맛본 때가 감기 기운이 막 돌던 때잖아. 어쩌면 진지향을 내 혀가 오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맛이 깔깔해져 맛을 제대로 감별할 수 없는데, 솜씨 없는 가수가 MR 반주가 형편없다고 불평하는 것처럼 과일 탓을 한 것이 수도 있어.
이럴 때는 다수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스토어 구매 후기를 찾아보았다.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장금이의 후예들이 부지런히 그네들의 혀가 맛보고 뇌가 생각한 것을 소상히 남겨두었다.
"상큼하네요."
"많이 달지는 않아요."
"오렌지처럼 새콤달콤해요."
"올해는 좀 신맛이 강하네요."
"한라봉 끝나고, 가성비 좋아 주문해요. 식구들이 워낙 감귤을 좋아해서"
아, 원래 단맛보다 신맛이 강한 과일인 모양. 제철이 지난 뒤까지 찾을 정도로 이 과일 종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 과일이구나. 가성비에 고개를 떨궜다. 한라봉이 프리미엄이면, 진지향은 그냥 만감류인 것이다. 모양새도 그렇다. 일반 감귤 상품과 모양이나 크기가 비슷하다. 감기로되, 아직 입맛을 잃지는 않았네. 그렇다고 해도, 진지향은 콧물 쿨쩍이는 환절기 감기 환자가 비타민C와 수분을 보충하기엔 충분하다.
환절기고, 감기가 유행하고 있어요. 일상생활 속에서 마스크 착용을 잘 지키시어 감기를 예방하길 빌어요. 더불어 즐거운 저녁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