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서림 Apr 19. 2023

엄마 미안해요. 2만 원만 보내주세요

엄마 미안해요. 2만 원 만 보내주세요


전세 사기를 당하고 절망 속에 죽어간 사람이 남긴 마지막 문자다. 이가 사는 현관 앞에는 수도요금이 밀려 단수 예정이라는 계고장이 붙었고 아래쪽에 고지서가 수북이 쌓였다. 살인은 한,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가지만 사기는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했던가.


청년들을 상대로 수백억 원 대 전세자금 사기를 치고 롤렉스 시계를 짤랑거리며, 값비싼 양주를 제 입으로 털어 넣는 사기꾼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이의 부고장 앞에서도 그들은 어떤 표정일까. 이런 아픔을 느끼는 감수성이라면, 남의 곤궁함을 살피는 자라면 애초에 의 돈을 증발시킬 신축분양 계획은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세간에 '전세사기' 관련 뉴스 제목만 보아도 처음 전세 계약을 하던 날의 공포에 가까웠던 상황이 떠오른다. 이십 대 초중반 즈음, 오래 발품을 팔아 알아보고, 중개인도 문제없다고 하여 계약 한 집이 근저당 설정이 된 상태였다. '이만한 조건 없다.' 하여 당시 1백만 원 정도 금액으로 가계약을 했다. 깔끔한 투룸에 거실과 주방이 분리된 단정한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이만한 조건'은 집의 상태 대비 가격이 싸다는 말이다.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어, 만약의 경우 집주인이 채무이행을 다하지 못할 경우, 집이 경매에 넘어갈 수 있고, 전세자금을 날릴 수도 있다는 '근저당' 뒤에 숨은 사실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금이야 그럴 사람 있겠냐만, 이것저것 물어보려는 나에게 공인중개인은 '아유, 학생이 뭘 그렇게 따져. 괜찮아. 나 믿고 해. 학생이 뭘 몰라서 잘 모르는데'라는 말로 내 질문을 얼버무리게 했다. 내가 정말 뭘 잘 모르는 걸까, 전문가니 믿고 따라도 되는 걸까. 오히려 스스로를 의심했던 그날의 기억. 




살던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 가, 보증금의 절반도 못 건지고 화병으로 몸이 고장 나버린 지인이 있었다. 대학 선배였다. 선배는 4년제 서울 소재 대학을 장학생으로 다녔고, CAD 자격증도 단 번에 합격한 수재였다. 실리와 이재에도 밝아 어떤 일을 할 때, 정보를 최대한 모아 득실을 따져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조 섞인 목소리로 스스로를 '나무에서 미끄러진 원숭이'라 부른 선배는 전세 사기에 휘말려 집주인과 피 말리는 권리 찾기를 하다 탈모에 디스크까지 터져 앓아누웠다. 문안을 가니 빳빳한 허리 보호대를 하고 어느 때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등기부등본에 근저당 있는지 꼭 확인하고. 그날로 바로 동사무소 달려가서 확정일자부터 받아야 돼. 모르면 무조건 인터넷 검색해" 스물두서넛 살의 나는 암호 같은 말에 순간 머리가 멍했다.


"어, 저 그 등기부등본이라는 곳에서 근저당이라는 단어를 봤던  같아요. 어떻게 해요. ... ... 나 계약해 버렸는데."

비명 같은 내 말에 선배는 디스크가 다시 터진 듯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앗! 너마저...... 안 돼. 도대체 이 나라의 부동산은 왜 이 모양이야!"


병원을 나와 부동산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허파가 터지도록 서둘러 달려갔다. 백 만원의 가계약금을 포기하더라도. 이 계약만큼은 파기해야 해. 나 자신과 선뜻  돈을 빌려주신 부모님의 노고에 대한 미안함과 재산손라는 절제절명의 순간에 눈물이 나왔다.


부모님과 상의하지 그러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경우는, 자가인 고향 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쭈욱  집에서 살았다. 나도, 부모님도 도시의 임대차 계약에 대해서는  몰랐다. 믿고 상담을 할 어른이 주변에 없었다.


'여기, 말소되었다고.' 공인중개인이 황당하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가계약한 전셋집 등기부등본에는 '근저당권 설정'이라는 단어는 있었지만 취소선이 죽 그어져 있었다. 소선이 그어진 것을 보고도 과연 이것이 믿을 만한 것인가 반신반의했던 날들이 며칠 더 이어졌다. 그전까지 다뤄보지 못했던 큰돈이 오가는 계약을 하며 진땀을 빼는 순간을 겪고 나니,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믿기 어려웠다. 




지금이야 '근저당''말소' 계약 대상 부동산을 담보로 금융권 부채가 있고, 그 부채를 다 갚았는지를 확인하라는 말인 줄 알지만,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듣기 어려웠다. 온통 생소한 한자어라 단어의 뜻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그 의미를 맞춰보고,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 감을 잡아가는 과정이 능을 다시 치르는 것처럼 어려웠다.


작정하고 사기 치는 사람한테는 국내 최고 로펌의 변호사도 당한다고 했던가. 부동산 사기, 주가 시세조작과 같은 지능형 범죄는 수 백 명의 생계를 위협하고 영혼을 말살한다. 얘기를 들으니 이번 경기지역 전세사기 건은 건축주와 임대인, 중개인이 삼각편대를 형성하여 철옹성 같은, 사기 성을 쌓아 올린 경우였다. 일단 임차인에게 계약 당시 보여주는 등기부등본은 깨끗하다. 즉 근저당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임차인이 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하면, 확정일자 효력 발생은 다음 날 0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근저당권 설정은 대출이 이뤄지는 시점에 효력이 발생한다. 임차인이 전세계약을 맺은 날, 몇 시간 사이로 매매가 이뤄져, 임대인에 의해 은행권 담보가 설정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없던 근저당이 생기는 법(?)'이 한다. 이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임차인보다 은행이 대항력 우선순위를 가지게 된다. 이런 물건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런 물건을 '깡통전세'라고 부른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자기들이 새 집에 살고 싶으니까 무리해서 계약을 해서 그렇지"라는 말은 사기의 악랄함을 모르고 하는 소리고 남의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다. 작정하고 속이는 사람을 '똑똑한 한 사람'이 당해내기 어려운 것이 사기다. 그래서 주변에 많이 알리고,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것인데, 사회 초년생에게 부동산이나 금융 등에 대해 믿을만한 정보를 주고받을 네트워크는 약하기 쉽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jtbc)에서 박동훈 부장이 장애가 있는 할머니를 모시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주인공 이지안에게 요양복지서비스를 알려주는 행동은 어른다운 행동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혹시 내가 잘 모르고, 주변에 알만한 어른이 없으면 인터넷에라도 물어봐라 조언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물론 옥석을 가리는 지혜가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바른 정보가 전달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 이슈로 드러난 전세사기처럼 법의 맹점을 이용하여 재산을 증식할 방법으로 뛰어든 사람들의 역학이 복잡하게 꼬여 있는 경우는 정보나 복지만으로는 해결이 나지 않는다. 부당하게 취한 이들로부터 적극적인 환수, 부당하게 빼앗긴 이들에게 적극적인 구체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감기에도 간사한 세치 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