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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Aug 30. 2022

칭찬 들으러 가보자고! 90만 원 내보자고.

치과가 이런 곳이라면, 뭐 자주 와도 나쁘지 않겠어.

세상에. 이 이를 어떡하면 좋을까. 내 이 말이다. 2년 전에는 초록색 포카칩 과자에, 이제는 오징어 땅콩에 치아가 깨져버렸다.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무서운 곳인데 그깟 오징어 땅콩 하나에 지고 마는 유약한 내 몸이 정말 싫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치과에 가야지.


치과 치료도 경력이라면 경력이라고, 치과에 가는 것은 너무너무 싫지만 막상 치료를 받을 때면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처럼 덤덤히 운명을 받아들인다. 의자 넘어갑니다~~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따라 슬슬 뒤로 젖혀지는 의자에 누우면 곧 초록색 천으로 뒤덮이는 내 얼굴. 그럼, 이제 명상 같은 망상을 할 타이밍이다.


<시간은 간다, 시간은 간다.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고 있다. 자,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곳을 생각해보자. 지금 그곳이 아닌 게 어디인가.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자. 그래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곳은 어디였지?>라고 생각했다가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곳은 다름 아닌, 바로 온갖 괴상한 기계음이 가득해서 들어올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바로 이곳, 치과였다. 망했다. 망했어. 내가 바로 그 공포스러운 공간에 또 들어왔구나, 내 인생 어찌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나려는데 갑자기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왼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려주실까요?"

"네~~ 에. 아주 잘하셨습니다. 네네."


이상했다. 나는 아주 경미하게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잘했다니, 그것도 아주 잘했다니. 마지막 남은 칭찬 포도알을 얻은 아이처럼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나는 칭찬 하나에 잠들 때까지 행복했던 그 시절의 순수했던 내가 떠올랐다. 내 기억 속 최초의 칭찬은 우리 할머니가 해주었는데, 할머니는 내가 글을 참 잘 쓴다고 엉덩이를 팡팡팡팡! 오래오래 쳐주셨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칭찬을 받는 것에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몸을 베베 꼬면서도 칭찬이 끝나지 않기를 기대하곤 했었지.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선생님은 그 이후에도 약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하셨다. 내가 칭찬을 들은 이유는 이와 같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잘 돌려서, 돌린 얼굴을 정면으로 다시 잘 돌려서, 입을 벌려서, 입술에 고리를 걸었는데도 아프다고 안 해서(마취했기 때문에 걸린지도 몰랐음) 등등. 선생님은 그 자상 하디 자상한 목소리로 잘하신다, 잘하셨다고 나를 추켜세워주셨다. 이쯤 되니 내가 치과에 온 것인지, 오은영 선생님을 만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치료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무한 칭찬을 받았다. 이번에는 치료 시간이 조금 줄어들어 원하던 만큼의 칭찬세례를 받지 못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치료 비용 10,900원을 지불했다. 산뜻한 금액이었다.  


세 번째 치료 날이 되었다. 치료 날 전에는 역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치과에 가는 것이 싫어서 잠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치과에 가고 싶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차피 마취주사 한방이면 아픔도 느낄 수 없으니 치료에 대한 공포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고, 입만 벌리고 가만히 있어도 칭찬을 받을 수 있으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두려워하지 마세요, 별 것 아니에요."라는 성경구절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 선생님의 음성은 마치 내게 강 같은 평화처럼 느껴져 점차 홀리 해 지기까지 했다. 오, 주여. 대신 오, 선생님. 감사합니다! 를 마음속으로 외치다 보니 어느새 치료가 끝났다. 서서히 세워지는 의자에 따라 몸이 일으켜진 나는 오늘만큼은 선생님에게 이토록 친절하시고, 편하게 치료 잘해 주시는 분은 처음이라고, 치과 공포증 인간 그 자체인 내게 정말 은인 같은 분이시라고 주접을 떨려다 서둘러 마스크를 쓰고 조용히 데스크로 향했다.



치과에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 소리에 쉴 새 없이 끼어드는 기계 소리들마저 조화로운 하모니처럼 들렸다. 이것을 칭찬 비트로 기억해 두자. 호호. 치과가 이런 곳이라면, 뭐 자주 와도 나쁘지 않겠어.라는 미친 생각을 하며 데스크 앞에 도착했다. 데스크 직원이 내 얼굴 한번, 서류더미를 한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90만 원입니다."

"예?"


은인이고 뭐시고, 아름다움이고 뭐시고 90만 원이라는 숫자에 머리가 지끈 아파오는 나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음이 틀림없었다. 신경치료 상담을 하면서 이미 전달받은 금액이었지만, 막상 그 값을 육성으로 들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 생각보다 별로 안 나왔네요? 그 정도 돈은 문제없죠, 라는 표정으로 카드를 건넸다. 얼마 전, 광고에 혹해서 만든 신용카드였다. 90만 원을 긁었다. 무려 무이자 7개월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오직 현대카드만이 7개월 무이자가 가능했음을 과거의 내가 알았던 것인가. 놀라운 혜안을 가진 나의 총명한 모습에 또 한 번 놀랬다. 이렇게 사람이 준비성이 철저할 수 있다니, 물론 얻어걸린 것이지만 뭐 어때. 그 또한 내 모습 아닌가. 90만 원을 긁고 카드를 돌려받은 나는 서둘러 알바에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날도 4시간 동안 도망가지 않고, 열심히 파스타면을 만졌다. 참으로 책임감이 대단한 청년이 아닐 수 없다. 집에 돌아와서는 간장 계란 비빔밥을 만들어 들기름을 휘휘 둘러 꼭꼭 씹어먹었다. 참나, 왜 이렇게 맛있어. 뭐야, 나 요리도 잘하네.



돈도 안 드는데 나... 너무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나?

90만 원을 잃고 알았다. 나는 작은 칭찬 하나에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치아는 유약할지라도 마음까지 유약해지고 싶지 않아서 나는 칭찬에 미치기로 했다. 칭찬 들으려고 치과에 가고 싶어 했던  미친 생각을 끊어 내기 위하여, 작은 칭찬 하나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야박하게 굴었던 과거의 나를 매우 치며 힘차게 외쳐본다. ! 너무  살고 있어! 잘하고 있다고! 그리고 7개월 동안 12 8  갚으면서    있! ! ! > 그리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비도 오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대략 2200자의 글을 읽으셨다니 정말  해도 되실 분들이시네요.라고 칭찬을 듬뿍! 아니 근데 이 글이 브런치에 쓰게 된 200번째의 글이네요? 세상에!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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