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조드푸르
조드푸르에는 도시를 입성하기 전에 시계탑 근처로 큰 시장이 존재한다. 갖가지 생필품들을 비롯해서 과일과 야채들도 즐비하다. 관광지가 아닌 실제 인도인들을 위한 재래시장으로 여느 한국 시장과 다를 바 없이 분주하다.
그 시장을 구경하다 마음에 드는 옷을 한 벌 발견했다. 100루피(1700원)면 살 수 있겠지? 란 생각에 가격을 물으니 200루피를 부른다. 인도에서 흥정은 필수기에 100루피를 계속 불러보았지만, 절대 안 된다고 한다. 괜히 제 가격에는 사고 싶지 않아 뒤돌아서서 시장을 나갔다.
그런데 자꾸 그 옷이 아른거려, 가격을 깍지 못해도 사야겠단 생각에 다시 옷집을 찾아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흥정을 시도해본다. “150루피에는 안될까요?” 그랬더니 아저씨는 특별한 제안을 한다.
네가 한국 볼펜을 준다면 150루피에 줄게. 왜냐하면 내 아들이 공부할 때 필요하거든
거절할 수 없는 로맨틱한 조건이었다. 볼펜을 받아 들고 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며 아들이 곧 학교에 들어간다고 말해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볼펜을 선물하고, 아들은 그 볼펜을 받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글자를 적어갈 테지. 그의 아들이 적어갈 수많은 활자를 선물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그 활자들에 값을 매긴 것 같아 괜스레 죄스런 마음도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볼펜을 두둑이 챙겨 오는 건데.
검정 볼펜과 맞바꾼 이 옷은 조드푸르처럼 푸르렀다. 그래서인지 이 옷을 보면 조드푸르가 더 생생히 떠오른다.
배낭의 무게 때문에 기념품을 챙기지 않는 나였지만, 이 옷만큼은 한국까지 챙겨 왔다.
왁자지껄한 시장, 옷집 아저씨와 그의 아들, 메흐랑가르성과 성을 가로지르는 짚라인, 알리바바 오믈렛과 프룻비어, 무엇보다 선셋 포인트에서 바라보는 조드푸르의 일몰까지 모두 이 옷에 파랗게 새겨져서 그렇다. 비록 옷의 색깔은 파란 단색(單色)이나, 이 옷에 물든 기억들은 다채롭기에 그렇다.
블루시티 조드푸르, 그곳은 파랗지만 다채로운 곳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