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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밭 Oct 24. 2023

안녕하세요 담당의입니다.

R1 _2022. 10. 2. 23:39


안녕하세요. 담당의 ___입니다.



신환이 왔을 때 가장 먼저 환자에게 드리는 인사말이다.


인턴일 때 내 판단으로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질문밖에 없었다. 어떠한 오더나 행위도 내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항상 하는 말은 “담당의 선생님께 말씀드릴게요.”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인턴 시절엔 ‘내가 의사이긴 한가?’ 란 회의적인 생각이 많았다. 그런 마음을 간파해서인지 몇몇 분의 환자들은 나를 의사로서 존중하지 않았고 그런 사람들에겐 앙심 따위도 품었다. 하지만 그건 자기혐오를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였을 수도 있겠다. 스스로 인정하기에도 인턴은 이제 막 졸업한 학생-의사 그 중간 사이 어딘가의 어리숙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끔찍했던 인턴 생활이 끝났을 때, 이제 진짜 의사가 된다는 생각에 꽤 신이 났다. 인턴 때 액팅과 라운딩을 하면서 환자분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오히려 레지던트가 되어서야 환자와의 유대가 더 강해졌다. 진짜 의사가 된 것 같았다.




이제는 내 담당의 환자들은 모두 나를 의사로 보았고, 나는 의사로서 적절한 설명과 처치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 되었다. 나의 말 한마디에 무게와 책임이 따랐다. 양가적이게도 이 무게와 책임은 나를 더 자신 있게 해 주면서도 두렵게 만들었다.


인턴에겐 시큰둥하던 환자들이 담당의에겐 쉬이 수긍하고 신뢰를 표하는 것에 자신감과 짜릿함이 생겼다. 하지만 나조차 확신할 수 없는 부분과 확답을 줄 수 없는 상황 앞에선 나의 부족함을 들킬까 두려웠다. 쾌히 적절한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도 잦았다. 결국 회피책으로 “교수님께 말씀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순간에는 한없이 초라해지고 심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아무튼 그런 담당의를 하고 있다. 아빠가 돌아가셨던 본과 2학년 시절엔 의사 따윈 절대 못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무색하게도 어떻게든 해내가고 있는 느낌이다. 환자들 마주하고, 그들을 치료하는 이 생활이 지루하거나 괴롭지가 않다. 종종 퍽 즐겁다고도 느낀다.


현재 나의 담당 환자는 10명이다. 상반기에 많을 때는 25명의 환자를 담당했다. 그때에 비해 그 숫자가 확연히 줄었다. 그땐 업무에 치여서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기울기도 쉽지 않았고, 이런 글을 쓰는 건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물론 인턴 때보단 훨씬 낫다. 인턴은... 정말... 지옥 그 자체)

담당 환자는 딱 10명 정도일 때가 가장 적절히 바쁜 것 같다. 환자들의 경과를 꼼꼼히 살피기에도, 업무를 함에도, 치료 방향을 고민하는 것에도 이 정도가 좋다.



요즘 가장 신경 쓰는 환자분이 한 분 계신데, 불안감으로 인해 바이탈에 이상이 없는데도 자꾸 산소 적용을 원하시는 분이다. 그 불안감을 덜어내 보고자 하루에도 생각날 때마다 오늘은 어떤지 경과를 묻곤 하고 아시혈이나 사암침이나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보고 있다. 오늘은 꼭 산소를 빼보자고 격려해도 환자는 싫다고 하여, 몇 주간 계속 실랑이를 했다. 사실 나도 포기하고 그냥 원하는 대로 산소를 투여하면 그만이다. 괜한 나의 욕심으로, 당신의 불안을 내가 없애겠단 알량한 마음으로, 용기를 내야 한다고 다그치고 있다.


무엇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아빠가 처음으로 두발자전거를 알려줄 때가 생각났다. 균형을 잡지 못해 무서움에 벌벌 떨던 내게 아빠는 아빠가 꼭 잡고 있으니 힘차게 페달을 밟으라 했다. 사실 아빠가 뒤에서 잡고 있지 않았단 사실을 모른 채 어린 나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었고 그렇게 자전거를 배웠다.


넘어질지도 모르는 연약한 아이를 과감히 놓아줄 수 있었던 아빠의 용기를 꾸어 내 환자에게 주고 싶다.


물론 내 환자는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기어이 자전거를 타게끔 하려는 내 이기적인 욕심이다. 그래도 이 욕심이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거란 옹졸한 생각으로 나를 합리화한다.


이런 우스운 생각 따위를 하며 담당의를 하고 있다.

두서없는 이야기들이다. 당직 중 새벽 감성에 취해서 끄적여본다. 


과연 산소 제거에 성공할 수 있을까?

환자분의 퇴원까지 5일이 남았다.

핸들을 잡은 두 손이 초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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