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 Feb 16. 2023

청심세탁소(1)

마음을 다하여 일하면


주렁주렁 옷 열매가 열렸다


영도에 도착한 첫날 바로 눈에 들어온 세탁소가 있었다. 

숙소가 있는 언덕 위 마을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청심세탁소다.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받은 커다란 항해캠프 셔츠를 어디서 수선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숙소 호스트이신 심바님이 청심세탁소 사장님이 양복점을 오래 하셔서 수선을 정말 잘하신다고 추천해 주셨다. 


다음날 바로 항해캠프 셔츠와 집에서부터 가져온 수선할 옷들을 가지고 청심세탁소로 향했다. 

청심세탁소는 한눈에 봐도 오래된 세탁소였다. 문을 열고 들어간 세탁소 안은 여느 세탁소처럼 옷들이 천장에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인터뷰 요청에 조금은 곤란하다는 듯 내일 보자고 하셨다. 부산 분들은 정말 싫으시면 확실하게 거절한다고 들었기에 바로 ‘내일 뵙겠습니다!’ 하고 인사드렸다. 

사장님은 수락하신 거라고 속으로 굳게 믿으며 언덕을 내려왔다.


성민  선생님, 세탁소를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칠생  20년 전.


성민  20년 전이요? 그게 몇 년도쯤인지 기억나세요? 


칠생  20년이니까 89년이지요.


성민  거의 30년이 넘었네요. 그전에는 양장점을 하신 거예요? 


칠생  양복점! 그 당시 한창 양복이 안 될 때, 이제 문을 많이  닫았어요. 그러니까 양복 하는 사람이 제일 하기 쉬운 게 세탁소입니다.


성민  양복점과 세탁소가 연결이 잘 되는 부분이 있나요?


칠생  같이 옷을 다리고 그 모직과 같은 섬유에 대한 이해가 빠르죠.  그리고 수선도 양복을 했으니까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지요.


성민  세탁소 이름이 청심이잖아요. 어떤 뜻인가요?


칠생  청심. 그냥 뭐 보기 좋더라고. 청심 마음을 내 가지고 한다는 뜻으로 청심을 넣었지요.


성민  마음을 다한다는 뜻이군요.



세탁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다. 주로 이염 세탁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손님이 어디서 묻혀왔는지 모르는 얼룩을 자세히 살피고 어떤 용품을 사용해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예전에는 사용한 섬유와 지금 사용하는 섬유가 다르기 때문에 옷을 분석한 후 그에 맞는 용품도 달라져야 한다고 하셨다. 


건성이 아닌 진심이 담겨야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수 있어요.


보세공장에서 구입하신 기계를 보여주셨다. 영도에서만 볼 수 있다는 기계는 다른 일반 세탁소에서 사용하는 기계와 주름이 다르게 빳빳하게 잘 다려진다며 뿌듯해하셨다. 기계 위 후광 역시 옷먼지를 잘 빨아들여 옷을 살아나게 해 준다고 하셨다. 긴 세월 동안 사장님의 손이 되어 준 기계들을 얼마나 아껴주셨는지 반짝반짝 윤이 났다.


사장님이 자랑하신 기계로 다려주신 덕분일까? 바지 주름은 다음 드라이 때까지 주름이 살아있다는 사장님의 말씀대로 새 옷 마냥 깔끔하고 빳빳했다. 집에 돌아와 전날 맡긴 옷들을 살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올이 풀려 거추장스럽게 팔랑거렸던 바지 밑단은 단단하게 잡아주셨고 같이 맡긴 티셔츠는 길이가 애매하게 길어서 입기 꺼려졌는데 이제는 저절로 손이 간다. 


멀리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도 찾아온다며 흐뭇하게 단골손님들이 맡긴 옷들을 보여주셨다. 한 번 왔다간 고객은 오래 함께 한다는 사장님의 말에 마음을 다하였기에 손님들도 오래 함께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칠생  한 번 왔다 간 분은 좀 오래 가지. 지금 여기서 롯데로 이사 가신 분도 그래. 거기서 동삼동가 멀거든요. 
그분은 옷 주름을 다리는 걸 참 좋아하는 분이에요.  이제 뭐 거리가 뭐니까 설마 오겠나 했는데 전화가 왔어요.  ‘그래 마 맡아주세요. 내가 가겠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사 갔는데도 그분은 지금까지 몇 년을 꼭 여기서 하세요. 그런 순간이 있으면 저도 참 기분이 뿌듯하고 좋지요.


사실 여기서 하다가 인천에 이사 간 분이 있어요.  그분 옷이 여기 있거든요. 이 겨울옷입니다. 

보통 옷을 가져오면은 한 여기, 여기 있는데 한 200벌 정도 가져와요. 200벌을 그냥 한 번에 가져오세요. 

이제 머니까 와서 겨울 옷, 여름옷 한꺼번에 다 가져오고 그래요. 그래가지고 가까운 데 가서 하이소, 하이소해도 한 번씩, 1년에 한 번씩 내려오거든요. 꼭 맡겨놓고. 그런 거 있으면 참 흐뭇하지.


성민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분들이겠어요.


칠생  그렇지, 못 잊었어요.  

그 한 분 또 있어. 한의원 원장이신데 그분도 옷을 맡겼는데 옷에 냄새도 없어지고 정말 깨끗하고 좋다고 해서 한 번 오드만은 지금 한 45년을 같이 했어요. 자기 옷, 부인 옷, 자기 가족 옷을 가져오거요.

멀어도 꼭.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영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