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진이서울에서주말을보내는법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서울 안에서도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사대문 안 번화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회성 수준이 잘 쳐줘야 평균이 될까 말까 했던 나로서는 여러 친구 무리와 함께 울고 우는 그런 하이틴 소설 같은 학창 시절이라는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면 운 좋게도 그리 유난스럽지 않은 반 친구들을 만나 무탈하게 졸업을 했고 나는 그렇게 친구는 많지 않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어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 때 그 2000년 초반의 공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학교가 집에서 멀어 7시 반부터 시작하는 0교시를 위해서는 6시에는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고 시내버스에 타야 했다. 자율출근제의 혜택으로 인해 8시가 훌쩍 넘어야 일어나는 게으른 어른이 된 나는 그때의 내가 너무나 대견해 엉덩이라도 두들겨 주고 싶은 마음이다. 피곤한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학교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있다는 것은 감수성 풍부한 고등학생에겐 큰 장점이었다. 정식 수업이 끝나고 야자가 시작하기 전까지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영양사 선생님이 정성 들여 만들어준 건강한 석식을 포기하고 교보문고 근처까지 걸어가 기름이 줄줄 흐르는 버거킹 와퍼를 먹었다. 와퍼를 먹고는 교보문고로 들어가 괜히 사지도 않을 책을 뒤적거린 뒤 그 당시 신식 음료 문화였던 퀴클리 버블티를 사 야자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들어왔다. 잠시나마 맡은 바깥 공기는 10시까지 이루어지는 지루한 야자시간을 버티게 해주었다. 교보문고에서 흐르는 잔잔한 클래식 소리와 먼지 가득한 책 냄새를 귀와 코에 잔뜩 묻혀오고 나면 야자시간이 그리 답답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야자 시간 멍하니 앉아 나중에 커서 나도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 광화문 커리어우먼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꿈을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비슷한 것이 되어버린 어른의 나를 그때 그 고등학생 윤수진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한달에 한번 토요일마다 CA라 불리었던 클럽활동 시간이 있었다. 내가 들어간 영화감상부에서는 매 달 마지막 주 토요일이 되면 정동극장에서 다 같이 영화를 관람했다. 불필요한 사회생활이 없다는 점에서 나에게 딱 맞는 CA였다.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는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CA활동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시간은 영화를 보고 나와 정동극장에서 삼성본관까지 걸어가는 그 덕수궁 돌담길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놀토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 토요일도 당연히 이른 아침부터 등교하던 그때에는 한달에 한번씩 주어지는 영화관람시간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집과 학교밖에 모르던 그림으로 그린듯 한 모범생이었던 내게는 학교에서 티켓을 쥐어주며 영화감상을 허락하는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주어지는 건전한 일탈이었다. 토요일 오후가 주는 나른함과 여유에 젖어 돌담길을 걸었다. 돌담길에서 몇 걸음 내딛으면 갈 수있는 미술관이나 덕수궁은 들어가볼 생각도 못한채 집으로 직진하던 재미없는 고등학생이었지만 그 길만으로 충분했다. 파란 하늘과 나무와 예쁜 돌담으로도 쉽게 행복해지는 쉬운 고등학생이었나보다.
고등학교를 떠난 지 오래된 지금도 자주 그 동네를 찾는다. 워낙 걷기 좋고 놀기 좋은 지역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고등학교 추억이 묻어있는 그 길을 자주 걷게 된다. 높은 돌담길만 그대로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졸업하고 한참 뒤에 새로 생긴 와플집은 그사이에 유명세를 단단히 얻어 사람들이 와플을 먹기 위해 100미터나 줄을 서기 시작했다. 잘생긴 알바생이 있던 퀴클리는 없어졌고 교복에 냄새를 잔뜩 묻혀가며 먹던 학교 앞 즉석 떡볶이집도 없어졌다. 추억의 가게들은 없어졌지만 새로운 가게들은 끊임없이 생겨나 동네의 균형을 유지해간다. 나의 활동 반경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넓어졌다. 정동길을 걷다가 시립미술관에 들어가기도 하고, 덕수궁도 한 바퀴 돌고 새로 생긴 수제맥주집에서 땀을 식히기도 한다. 큰 기대 없이 100미터나 줄을 서서 산 와플은 예상외로 굉장히 맛있었다. 고등학교 때 이 집이 있었다면 살이 5킬로는 더 쪘을 것 같다. 나이를 열 살 넘게 먹으면서 고등학교 때보다는 훨씬 둥그런 사람이 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넉살 좋게 말을 걸고 아는 것도 많아지고 덩달아 모르는 척하는 것도 많아졌다. 돌담 밖의 낯선 길은 갈 생각도 못하던 그때와는 달리 서울 시내 발이 안 닿은 곳이 없어진 노련한 어른이 되었다. 하나도 그립지 않은 고등학교 시절이지만 그때의 내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교복을 입고 동그란 눈으로 정동길의 따뜻한 바람을 쐬며 걷는 그때의 나와 손을 잡고 그 길을 걷고 싶어졌다.